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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평점 :
『아웃라이어』, 『다윗과 골리앗』, 『블링크』의 저자 말콤 글레드웰의 신작이다. 책 제목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의 책을 처음 읽어봤다.(아직 출간되지 않았지만 가제본으로 받아서 읽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물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천일야화처럼 이어진다. 그렇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전혀 상관없이 따로 놀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고 충분히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한 재료로 사용된다. 목차를 따라가며 책을 정리해 본다.
이 책의 구조는 수미상관적이다. 아마 미국에서는 꽤 잘 알려진 사건 같은 샌드라 블랜드 자살 사건을 앞에 배치하고 다시 끝에서 결론으로 활용한다. 샌드라 블랜드 자살 사건은 샌드라 블랜드라는 흑인 여성이 깜빡이를 키지 않고 차선 변경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딱지를 끊으며 시작한다. 어쩌면 간단하게 딱지를 끊고 끝날 사건이었지만 블랜드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그에게 차에서 내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이 요청을 거부했다. 결국 정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블랜드는 사흘 후 구치소에서 자살을 한다. 차량에서의 대화는 블랜드의 녹음기에 녹음이 되어 큰 파장을 일으킨다. 흑인 여성이었던 블랜드와 백인 남성인 경찰의 대립 구도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말콤 글레드웰은 그 사건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기 위해 350페이지를 소모한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블랜드는 이미 수천 달러의 자동차 딱지를 끊었었고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했다. 그 첫날에 경찰에게 딱지를 끊겼으니 그녀는 매우 불안했고 이 불안에서 비롯된 행동이 경찰에게 잘못된 근거를 줬다. 마약이나 총기와 관련된 범죄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과잉 진압도 그렇게 진행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타인을 오해할 수밖에 없으며 정확하게 해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해야 한다. 타인을 파악하는데 실패하는 이유로 말콤 글레드웰이 제시하는 첫 번째는 진실 기본값 이론이다.
진실 기본값 이론이란 우리가 타인이 전하는 메시지를 항상 진실로 놓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판사들은 재범률이 높은 용의자를 보석으로 풀어주고 금융사기범은 승승장구하며 히틀러를 두 번이나 만난 영국 총리 채임벌린은 히틀러를 전쟁을 일으킬 만한 야심가로 보지 못한다. 이 모든 이유는 인간이 타인을 볼 때 항상 그가 말하는 것을 진실로 가정하기 때문이다.
진실 기본값의 근거는 타인의 표정과 행동이다. 슬프면 슬픈 표정을 거짓말을 하면 이상한 순간이 거짓말쟁이에게 찾아온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인간은 내면과 외면이 항상 투명하지 않다.
타인의 행동은 맥락과 함께 살펴야 한다. 켄자스시티의 범죄 소탕 작전은 1.7제곱 킬로미터인 144구역에서 시의 대부분의 범죄가 발생하기에 이 구역만 순찰을 매일 돌면서 일군 성과를 보여준다. 시 전체를 무작위로 순찰 도는 게 아니라 범죄율이 높은 구역만 집중한다. 적극적인 순찰은 범죄율이 높은 지역에 국한해야 한다는 게 켄자스 시티의 범죄 소탕 작전의 핵심이다. 인간 행동과 맥락은 결합한다. 켄자스 시티 순찰 모델은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그러나 핵심적인 내용은 빠뜨렸다. 바로 맥락의 결합에 대한 순찰 집중이다.
샌드라 블랜드 사건에서 경찰의 실수는 맥락을 살피지 않았다. 범죄율은 너무나도 낮고 총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문 도로에서 무작위적으로 차량 딱지를 떼던 경찰은 메뉴얼에 맞춰 블랜드를 새웠다. 파국은 그렇게 시작한다. 몸을 숙이고 안절부절하며 담배를 피는 모습에서 경찰의 의심은 극도로 증가한다. 이제 블랜드는 거의 총기와 마약 소지자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우선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는 행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 타인의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타인을 신뢰하는 속성을 조롱하고 처벌해서는 안 된다. 처벌은 보수적 선택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신뢰의 포기, 곧 불신 말이다. 온갖 의심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비극은 없기 원한다. 애초에 타인을 꿰뚫어 보는 능력 같은 것도 없다. 그러므로 필요한 자질은 기다리며 겸손하게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실패할 가능성에 말이다.
이 불완전한 우리의 시선과 판단은 가능성을 하나로 줄인다. 바로 맥락이다. 산드라 블랜드 사건은 흑인 여성과 나쁜 백인 경찰의 대결구도로 축소돼서는 안된다. 경찰은 켄자스 시티 모델을 따라 훈련 메뉴얼을 만들었고 경찰관은 그 메뉴얼을 열심히 지켰다. 그 결과 엉뚱하게도 범죄율이 낮은 지역에서 열심히 차량 검문을 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관념을 만드는 하나의 제도의 실패가 누군가를 자살로 몰아넣었다.
읽으면서 말콤 글레드웰이 왜 베스트셀러 작가인지 알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어 보이고 아주 작은 주장을 위해 굉장히 많은 양의 자세한 이야기를 제물로 바칠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재료를 아까워하지 않으며 주석으로 근거의 질도 확보한다. 그런데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 자세가 과잉되었기 때문이다. 술술 읽히긴 하지만 핵심으로 가는 길이 너무 길다. 그래도 베스트셀링 포인트로 글 쓰는 스타일을 배워서 좋긴 하다. 잘 읽히게 쓰고 싶다거나 재밌게 쓰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좋은 모델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