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정 -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나를 지키다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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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책을 오랜만에 읽는다. <미치면 미친다>(푸른역사, 2004)에서 보여줬던 자신의 장기를 살려 이번에는 짧은 구절을 주제로 해설과 이야기를 덧붙인 책을 내놓았다. 큰 주제는 4가지다. 1)마음의 소식 2)공부의 자세 3)세간의 시비 4)성쇠와 흥망. 각각의 주제에 맞춰서 사자를 25개 넣고 아래 글을 붙인 형태다. 정민이야 워낙 다작을 해서 책이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아 반갑다는 느낌은 거의 없다.(그만큼 열심히 쓴다는 말이다.)

천 년이 넘은 문장을 읽을 일은 잘 없는 편인데 오랜만에 읽으니 이렇게 문장에 미쳐서 읽고 쓴 사람들이 있다는 게 반가웠다. 대부분의 글이 형식에 맞추어 글자 수를 엄격히 지킨 상태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번역보다는 원문을 읽는 게 무엇보다 좋다.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정민의 번역과 해설에 의존해야 하는데 나는 그의 문장이 적절히 고전적이되 충분히 이해할만한 현대적 문장이라고 본다.

이 책은 최대 3페이지가 넘지 않는 짧은 글이 100개 모인 책이기에 글의 흐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디를 펼쳐 읽어도 상관없다. 자신이 마음에 들거나 새겨둘 몇 문장만 기록해 놓아도 충분하다. 언젠가 손봉호 교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은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이나 생각이 나타나면 즉시 책을 덮는다고 하셨다. 그 정도면 책에서 기대하는 바를 이루었다고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깊이 공감했다. 특히 이 책의 특성상 독후기를 적기보다 몇 가지 질문과 대답으로 정리해본다.

1. 누가 읽으면 좋을까?

정민의 글을 읽는 독자층은 적어도 30대 이상 남성일 가능성이 크다. 타게팅 역시 그런 독자층으로 설정했겠지만 문장은 크게 어렵지 않고 원문 역시 평이하다. 관심이 있는 누구나 읽어볼 수 있다. 워낙 방대한 인용으로 이루어져 한자에 관심이 있다면 괜찮은 문장 몇 개를 건질 수 있을 것이다.

2. 언제 읽으면 좋을까?

책의 구성이 짧은 글을 묶은 것이기에 집중력이 많이는 필요 없다. 지하철, 버스 등 이동 시간이나 잠시 시간이 나는 언제든 읽을 수 있다. 한문이 많지만 각 잡고 읽을 책은 아니다. 다소 독서에 열심히 필요한 경우 각종 연필과 펜, 포스트잇을 구비하는 편인데 이 책은 주로 자기 전에 침대에서 읽었다. 휴대폰 대신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기 좋았다.

3. 왜 읽으면 좋을까?

100편의 글이 실려있지만 마구잡이는 아니다. 제목인 습정習靜은 고요함을 익히다는 뜻이다. 왜 고요함을 익혀야 할까? 정민은 이덕무(1741~1793)의 <원한原閒>에서 "넓은 거리 큰길 속에서도 한가로움이 있다. 마음이 진실로 한가롭다면 어찌 굳이 강호나 산림을 찾겠는가?"(13쪽)라는 문장을 인용하며 마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전제를 깔아둔다. 이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습정習靜에서 중요한 것은 정靜이 아니라 습習이다.

어떻게 마음의 고요를 익힐 것인가. 이덕무는 같은 책에서 "나는 홀로 책을 읽으며 편안하다"(13쪽)고 했으며, 강석규(1628~1696)의 <차류만춘기시운次柳萬春寄示韻>에는 "늙도록 공부 힘써 무릎 닿아 책상 뚫고 몇 번의 더위 추위 지났는지 모르겠"(41쪽)다며 무릎에 수십 년간 닳아 구멍 난 책상과 샐 수 없는 시간으로 자신의 고요를 증명한다. 그런가 하면 당나라 원진(779~831)은 비파가 너무 좋아 쓴 <비파가琵琶歌>에서 비파 연주가 "한 연주 막 끝나고 또 한차례 연주하니 고요한 밤 구슬주렴 바람에 쟁글쟁글"(43쪽)하다고 말한다.

무릎에 구멍 뚫린 책상을 가질 정도로 책을 읽거나, 연주가 끝나자마자 또 연주할 만큼 비파를 좋아하거나 중요한 것은 반복적 수행이다. 그리고 그 수행 속에서 기울이는 마음의 질문이다. 고요란 그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이다. 즉 습習해야 정靜할 수 있다. 아니, 습習이 곧 정靜이다.

4. 기억에 남는 문장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어서 적는다. 하나는 천주교 교리를 한문으로 풀이한 판토하 신부의 문장이고 다른 하나는 추사 김정희와 다산의 아들 유산 정학연의 대련 글씨 이야기다. 적절한 인용과 번역, 해석이 아름답다.

"<칠극(七克)>은 예수회 신부 판토하(Didace De Pantoja·1571~1618)가 1614년 북경에서 출판한 책이다. 한문으로 천주교 교리를 쉽게 설명했다. 다산 정약용을 비롯해 조선의 많은 지식인이 이 책을 통해 천주교인이 되었다. 서양의 여러 현자의 일화를 적고, '논어' 같은 유가 경전도 인용하다가 성경 말씀 한 단락을 슬쩍 끼워 넣는다.

"쇠를 시험하려면 붉게 달궈진 화로에 넣고, 사람을 시험하려면 칭찬하는 말속에 넣는다. 가짜 쇠는 불에 들어가면 연기를 따라 흩어지지만, 진짜 쇠는 불에 들어가면 단련할 수록 정금이 된다." 이 말은 성경 '잠언' 27장 21절의 '도가니에서 금이나 은을 제련하듯, 칭찬해 보아야 사람됨을 안다'고 한 말을 한문투로 풀어 썼다. 예화가 신선하고 설명이 알기 쉬워 심신 수양서로 알고 읽다 보면 그 안에서 어느새 신앙이 싹터 있곤 했다." (147쪽, 소구적신消舊積新)

"추사의 대련 글씨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옆에 쓴 글씨의 사연이 재미있다. "유산(酉山) 대형이 시에 너무 빠진지라, 이것으로 경계한다." 유산은 다산의 맏아들 정학연(丁學淵)이다. 아버지가 강진으로 유배간 뒤, 그는 벼슬의 희망을 꺾었다. 다산은 폐족(廢族)이 된 것에 절망하는 아들에게 학문에 더욱 힘쓸 것을 주문했지만, 그는 학문보다 시문에 더 마음을 쏟았다.

추사는 그와 막역한 벗이었다. 추사가 정학연에게 써준 시구는 이렇다. "구절을 얻더라도 내뱉지 말고, 시 지어도 함부로 전하지 말게(得句忍不吐, 將詩莫浪傳)." 마음에 꼭 맞는 득의의 구절을 얻었더라도, 꾹 참고 배 속에만 간직하고, 흡족한 시를 지었다 해도 세상에 함부로 전하지 말라는 얘기다. 정색한 얘기라면 들은 상대가 대단히 불쾌했을 테지만, 글씨도 내용도 장난기가 다분하다. 샘솟듯 마르지 않는 정학연의 시재(詩才)를 따라갈 수 없어 샘이 나서 이렇게 썼지 싶다. 농담처럼 건네는 말 속에 은근히 뼈도 있다.

누구의 시인가 궁금해 찾아보니, 소동파와 두보의 시에서 한 구절씩 잘라내서 잇댄 것이었다. 소동파는 "시구 얻고 차마 토하지 않음은, 옛것 좋아 내 뜻이 빠져서라네(得句忍不吐, 好古意所耽)"라 했고, 두보는 "술을 보면 서로 생각나겠지마는, 시 지어도 함부로 전하지 말게(見酒須相憶, 將詩莫浪傳)"라고 했다. 두 시에서 한 구절씩을 따와 나란히 잇대어 붙이니, 전혀 다른 느낌의 한 짝이 되었다.(98쪽, 득구불토得句不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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