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한 되풀이 창비시선 437
황인찬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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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의 시는 0에 닿기 위해 노력한다. 그 시는 "지워지는 시"고 그 끝에 "이미지가 없고 관념이 없고 사랑만 남는" 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좋겠다"는 기대로 쓰는 시다.(<그것은 가벼운 절망이다 지루함의 하느님이다>) 사랑이면서 사랑이 아니길 바라는 화자의 배중률은 "너를 생각하는 이 마음이 무엇인지 구분되지 않는"(<너의 살은 푸르고>) 상태다. "뜻이 있다고, 없다고 누가 자꾸 말하고"(<레몬그라스, 똠얌꿍의 재료)있는 마음, 경계를 지우는 마음. 그것은 사랑의 마음이다. 그리고 사랑은 습관 없는 사랑의 표현을 끊임없이 추심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언어화하기 쉽지 않다. 루만의 말처럼 사랑은 "반복된다는 징표를 띠지 않으면서 반복되어야 한다."(<열정으로서의 사랑> 새물결, 2009) 그래서 사랑의 표현은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찰 때 사랑한다는 말 대신 창발하는 과잉의 언어다. 사랑의 언어는 과포화 될 때 결정처럼 맺힌다. 긴 기다림 끝에, 가장 늦게, 최후방에서 온다. 그러므로 "얼른 밤이 오면 좋겠어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 시는 밤이 오기 전에 끝날" 정도로 뻔한 시다. 그저 황인찬은 영원히 되풀이 된 언어를 "씻어 왔는데 아주 달고 새콤"하다.(<남아 있는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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