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
헬레나 애틀리 지음, 이석호 옮김 / 에포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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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운명과도 같이 어느날 밤 웨일스의 작은 마을에서 클레즈머 음악과 함께 18세기 크레모나에서 만들어져 러시아까지 전해진 레프 바이올린의 선율을 만난 헬레나 애틀리는 16세기 바이올린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450년 바이올린의 역사와 레프 바이올린에 담긴 시간을 쫓아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각지를 거쳐 러시아까지 긴 여정을 떠난다.

 


스트라디바리우스, 아마티, 과르네리...바이올린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익숙한 이 바이올린들은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손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자아내며, 몇백억을 호가하는 가격에 거래된다. 이 명기들의 고향은 바로 이탈리아 크레모나라는 작은 마을이다.

 


음악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나에게는 생소한 지명인 크레모나는 17세기 현대적 바이올린을 탄생시켰다고 불리는 안드레아 아마티를 비롯해서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와 같은 바이올린의 명가들의 공방이 시작된 곳이며, 지금도 그 곳 크레모나 국제 현악기 제작학교에서 현악기 제작자를 꿈꾸는 이들이 모여 안드레아 아마티의 방식으로 바이올린 제작방법을 배우고 만들어내고 있다.

 


레프 바이올린의 역사를 찾기 위해 시작된 저자의 여정은 한 대의 바이올린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과정이 필요한지, 교회와 궁정, 재력가와 오페라, 작은 마을의 민속음악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 유럽 문화와 역사의 흐름과 함께 다양한 시간, 장소 속에 바이올린의 여러 모습을 따라간다.

레프의 바이올린 역사만큼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 과거 바이올린 앞판 재료로 사용되는 25~30미터 높이, 수천톤 무게의 독일가문비나무를 알프스의 파네베조 숲에서부터 벌목꾼 보스키에리, 나무를 산 아래까지 이동하는 콘두토리, 산 아래 강가까지 도착한 통나무를 강 하류까지 원할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통나무 몰이꾼 메나다, 뗏목꾼 차티에로라는 여러 전문가들을 통해 산과 강을 지나 베네치아까지 이동해 바이올린 제작자에게 구매될 때까지의 과정이었다. 훌륭한 바이올린은 제작가의 재능뿐만 아니라 나무의 상태, 이동과정까지 뭐 하나 빠지면 완성되기 어렵다는 사실은 나무의 여정을 통해 잘 알 수 있었다.

 


연주자 그레그에게 레프의 바이올린은 자신의 일부를 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동반자와 같은 악기지만 동시에 큰 가치가 없는 물건이라는 감정을 받은 악기이기도 하다. 과연 레프의 바이올린는 어디서 만들어져 어떤 사람들을 만나 먼 러시아를 거쳐 그레그에게까지 인도되었으며, 정말 가치가 없는 악기일 뿐일까. 저자만큼이나 나 역시 이 오랜 세월을 보낸 악기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해져 책을 손에 놓을 수 없었다.

 


유명 바이올린이 만들어진 배경부터 레프의 바이올린의 일대기까지 저자는 긴 시간 다양한 장소에서 하나 또 하나 그 흔적을 찾아간다. 물건은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시간을 통해 누군가에게 의미를 남긴다. 레프 바이올린 역시 누군가에게는 삶의 한 순간에 큰 영향을 준 악기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치 없는 물건으로 평가되었다. 책 곳곳에 표시되어 있는 QR을 통해 볼 수 있는 스트라디바리가 제작한 '메시아'를 비롯한 여러 현약기들을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보니 왠지 처음 볼 때보다 더 우아하고 유려하게 느껴진다. 크레모나에서 시작된 바이올린 기행은 나에게도 바이올린을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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