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그렇지 않아?” 내가 습관처럼 많이 하는 문장이다. 나와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봤을것이다. 그것은 아이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불혹에 들어선 나도 여즉 엄마에 잔소리를 튕겨낸다. 따박따박 말대답은 물론, 어떤 날은 영혼 없는 리액션만 날리고선 정작 내 멋대로 한다. 과거에도 현재도 언저리를 맴돌며 규칙보단 내 분노가 앞세워 사는 그저그런 사람. 그래도 (지금) 행복하고, 그랬지만 (지금) 엄마도 됐고, 그럼에도 (지금) 이만하면 괜찮게 살고 있다. 양육 형태는 부모에 소신이 작용할 수 밖에 없다지만 부모의 자격 중에 자녀를 평가해도 괜찮다는 항목은 부여된 적이 없다. 본디 인간은 허점투성이다. 실수를 반복하고 다짐을 번복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미의 정점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잘못을 하고 반성을 한다. 셈하지 못할만큼 많은 밤, 잠든 아이 머리맡에서 고해성사를 하고 또 해도 변하지 못한 내가 어디 감히 아이에 잘못을 골라내어 꾸짖는지 참 하찮다. 까먹음에 빈도는 아이보다 내가 훨씬 더 조밀하다는 점을 전재에 둔다면 몇번 말했냐고 되묻지 않게 된다. 사람에게 완성형이란 없다. 그렇다면 반대로 불량도 있을 수 없다. 오늘도 코딱지를 파다가 코피를 흘리게 되어 안타깝지만, 코파지 말라는 내 잔소리보단 본능이 앞서는 우리집 꼬마는 이 책을 <완벽한 아이 팔아요/길벗스쿨> 에 긴글버전이라고 말했다. 완벽한 아이를 원한다면 백화점에 가서 로봇을 사오는게 빠르지 않겠어? 라고 던지는 해학에 뜨끔한다. 아이는 성체가 되기 전까지 안전히 보호받아야 할 인격적 존재이다. 그리고 부모에게 아이는 잘 날아갈 수 있도록 돌보아야 하는 생명이지 도구가 아니다. 도구화가 사랑이란 허울로 포장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사랑의 형태가 변질되지 않기 위해 매일 각성해야 하는 것은 부모쪽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는 책을 만났다. 고맙습니다 #불량품소년 #라임 #호수네책 #책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