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세사르 바예호 지음, 고혜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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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손에 쥘때마다 언제나 드는 건 제목이 참...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이라는 제목을 본 순간 가슴 팍에 콱! 꽂혔다.
항상 내 인생이 싫은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나는 언젠가부터 내인생이 좋아졌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내 삶이 싫어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 있다.

세사르 바예호는 페루의 시인이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라틴아메리카.
(물론 스페인어 안에도 여러 방언들이 있어서 세사르 바예호는 그의 고향에서 사용하는 케추아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런 방언까지 번역한 번역가~ 와~ 정말 대단하다.

페루의 시인이라고 하면 우리는 아무래도 '파블로 네루다'를 생각하게 된다.
네루다는 파란의 세월을 견디며 제법 오래 살았고, 외교관을 지냈으며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으니 우리가 네루다에 비해 바예호의 이름이 생소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바예호의 시집이 국내에 간행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8년 같은 번역자에 의해 국내에 출간되었고 당시 제목은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였다.
1998년 우리는 IMF 금융위기라는 직격탄을 맞았기에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희망을 전하는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역시 책도 시대상을 반영한다.

이 책은 그후 20년만에 다시 추가되고 재편집되어 나온 바예호의 시집이다.
이번 시집의 제목 또한 지금 우리의 시대상을 반영한 듯하다.
IMF때보다 더 살기 힘든 시절이라 일컫는 요즘.
모두가 살기 힘든 것에 대해 이제는 알수 없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내세워 위로하기 보다는 오늘의 내 인생이 너무 힘들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이제 불명확한 희망을 강조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네루다가 엘리트코스를 밟았다면 바예호는 상당히 거칠고 힘든 소시민의 고난한 길을 걸었다.
1892년에 페루의 광산촌 산티아고 데 추코에서 태어나 고생 끝에 교사가 되었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112일동안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형, 어머니, 누나의 죽음을 보아야했던 그에게 죽음은 결코 먼 존재가 아니었다.  공산주의에 경도되어 소련을 방문했고 그러한 경력으로 프랑스에서 추방당하고, 스페인 내전때 시인이자 극작가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살해 당한 사건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결국 그의 마지막은 1938년 프랑스에서였다. 불과 46년의 삶이 참 고단했던 바예호.

이러한 지난했던 작가의 삶은 그의 시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언제나 죽음을 노래했지만 그 이면에는 삶에 대한 애착으로 죽음을 노래하고 있다.
자신이 소시민이었기에 힘든 서민들의 삶을 가감없이 그대로 표현 할 수 있었다.

그의 시집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들.

<거울 목소리> 중에서

인생은 그렇게 지나간다. 이상한 환상처럼.
엉겅퀴를 비추며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는 파란장미!
죽음을 싸는 천이라는 독단 옆에 자리잡은
선(善)과 이성(理性)의 궤변!

인생은 손에 닿는 것을 어쩌다 잡은 것일지도 모른다.
향기가 날아긴다. 그들 중에 이끼 냄새가 있다.
죽은 환영의 메마른 사과가 날아가는 도중에
그 속에서 자라난 이끼.
 
<같은 이야기> 중에서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내가 살아 있고, 내가 고생한다는걸
모두들 압니다. 그렇지만
그 시작이나 끝은 모르지요.
어쨌든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그에게 신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신을 믿기에 삶은 너무나 가혹했던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 중에서

마지막 사내의 말
"내 인생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아직 안 왔어."

이 구절은 시의 마지막 구절인데 참 공감이 갔다.
그래.... 내 인생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지. 난 아직 살아있으니...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없다> 중에서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없다.
항상 산다는 것이 좋았었는데, 늘 그렇게 말해왔는데.
내 전신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내 말 뒤에 숨어 있는
혀에 한 방을 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중간생략)

나는 산다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삶에는 나의 사랑하는 죽음이 있어야하고,
커피를 마시며 파리의 무성한 밤나무를 바라보면서
이런 말을 해야 한다.
'이거와 저거는 눈, 저것과 이것은 이마...'
그리고 이렇게 되풀이 한다.
'그렇게 많은 날을 살아왔건만 곡조는 똑같다.'
'그렇게 많은 해를 지내왔건만, 늘, 항상, 언제나...'

이렇게 삶이 힘들고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그가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또 다른 시 <오늘 나는 기분좋게 행복하고 싶다>에서 볼 수 있다.

가을이라 그런가?
요즘 주변에 시를 읽는 분들이 늘어났다. 
역시 감성을 표현하기에 시 만한 도구가 없는 것 같다.

20년만에 다시 태어난 바예호의 시를 읽으니 다시한번 20세기초 격동의 세계사가 떠오른다.
누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벌였던 전쟁이었는지.
다툼이었는지.
과연 그 안에 승자와 패자는 있었는지.
모두가 상처뿐인 전쟁인데 인간은 왜 지금도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을까.  

* 이 글은 다산문고의 서평단 나나흰으로 활동하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것입니다.

세사르바예호, 오늘처럼인생이싫었던날은,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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