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의아했다. 편지가 흐른다... 무슨 의미일까? 편지를 강물에 흘렸을까? 표지에 비친 어린 소녀의 손. 물표면을 살포시 만지는 어린 소녀의 손이다.
이 소설은 작가 김숨의 첫인상처럼, 표지에 실린 어린 소녀 손짓처럼 연약하다. 그러나 그에 담긴 내용은 처절하다. 너무나 여린 약자인 소녀들도 소녀들 앞에선 악의 존재이자 가해자인 군인들도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유도 모르고 끌려온 위안소에서 불과 열다섯살 어린 소녀인 주인공은 두려움에 떨며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이름도 모르는 어머니에게 쓰는 편지. 작가 김숨은 이제 생존자가 몇명 남지 않은 일제강점기 위안소에 강제로 끌려간 할머니들을 이야기를 이번 소설에서 담았다. 허구가 아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 더 처절하다. 열다섯... 열 다섯이면 중학교 2학년이다. 어떻게 이런 어린 아이를 위안소에 데리고 가 그런 악행을 저질렀는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우리의 역사가 지닌 아픔. 잊을 수 없는 아픔을 끌어앉고 평생을 사셨을 할머니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소설 속 주인공은 열 다섯. 그녀와 같은 위안소에 있는 여인들의 나이는 십대에서 많아야 이십대다. 힘없는 아이로 힘없는 여인으로 힘없는 국가에 태어나 처절하게 짓밟혀진 여인들의 이야기.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려서 힘들었다. 그러나 피하면 안된다. 우리는 이 사실을 현실을 직시하고 외쳐야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그녀들에게 저질렀던 부당함에 대해.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본문 중에서 p7)"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 오늘 새벽에는 초승달을 보며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고 빌었어요. 변소에 가려고 마당에 나왔다가요. 초승달에 낀 달무리가 몽글몽글 떠오르는 순두부 같아 나도 모르게 입을 벙긋 벌렸어요. 그것을 먹으려고요. 어머니 나는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어요. 눈동자가 생기기 전에....심장이 생기기 전에....p65. 정월 초 금실언니의 몸에 아기가 들어선 걸 알고 오지상은 그녀를 트럭에 싣고 중국인 마을에 다녀왔다. 날이 어둑해져서야 돌아온 그녀의 얼굴은 귀기가 감돌만큼 핼쑥했다. 금실언니가 다른 데로 팔려간 줄 알고 종일 물 한모금 못마시고 속을 태운 은실은 그녀를 보고는 눈을 까뒤집으며 까무라쳤다. (중간생략)중국인 마을에 다녀온 지 닷새쯤 지나 그녀는 다시 군인을 받았다. p.186 어머니, 아기에게 손가락이 생겼을까요?어머니 나는 여전히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바라요. 손가락이 생겼어도손가락 열 개가 다 생겼어도.p.226 어머니, 꿈에 여자아이를 낳았어요. 여자아이가 아니기를 그렇게나 빌고 빌었는데...--------------1945년 전쟁의 막바지에 열다섯이었던 소녀는 현재 팔순이 넘어 구순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 아무는 상처가 있는 한편,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않고 더욱 선명해 지는 상처가 있다. 할머니가 된 어린 소녀는 그 오랜 세월 지워지지않고 더욱 선명해 지는 상처를 끌어안고 어떻게 살아왔을까. 우리가 절대 외면해서는 안되는 역사의 흔적을 작가는 여려보이는 외형과는 달리, 곧고 강한 문체로 다시 우리의 맘에 새겨넣고자 하는 듯하다. 인간은 참.... 잔인하고 나약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간을 보듬고 치유하는 것도 인간이니... 이름이 없는 어머니에게 쓴 소녀의 편지는 흘러 흘러 어디까지 닿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