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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이 아이를 품은 날 - 여성의 생물학과 건강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
그라지나 자시엔스카 지음, 김학영 옮김 / 글항아리사이언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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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은 여성의 진화다

-<자궁이 아이를 품은 날>을 읽고-

 

가부장제와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던 조선시대 평범한 여성들의 삶을 생각해 보자. 가부장들은 임신한 여성의 노동력을 교묘히 착취하였다.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라고 하였다. 작게 낳으려면 가만히 있지 말고 많이 움직여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움직인다는 것은 요즘의 운동의 개념이 아니라, 바로 육체노동이었을 것이다.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던 임산부들은 부실한 식사에, 집안일과 농사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니 밭에서 일하다 밭고랑에서 출산을 했다는 둥, 논두렁에서 출산을 했다는 등의 전설 같은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옛날에는 피임법이 발달하지 않았고, 농업이 기계화되지 않아 일손이 많이 들었으며, 가부장제로 인해 남아를 선호했다. 때로는 낳은 아기마저 일찍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듯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나라 여성 조상들은 자녀를 많이 낳아야 했다.

 

이 책 <자궁이 아이를 품은 날>은 그라지나 자시엔스카가 썼다. 그는 인간 진화생물학과 진화공중보건학을 연구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위와 같은 우리 여성 조상들의 다자녀 출산과 과도한 신체노동이 여성 건강을 얼마나 해치는지를 깨달았을 때, 마음이 아팠다. 더구나 모체의 수명까지도 줄이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충격이었다. 저자는 인간 여성의 에스트로겐이 생식과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자세히 말한다. 에스트로겐이 풍부한 여성은 생식에는 유리하다. 반면에 유방암에는 위협적이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낮고 신체활동이 많은 여성의 건강이 가장 위험하다. 태아의 발육도 잘 안되고 모체에게 골다공증이나 빈혈 등에도 취약하다. 결국 인간 여성의 몸이 완벽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현대 여성은 영양 불균형과 각종 환경 변화 스트레스 등으로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개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식생활과 운동 등의 생활 습관 변화가 중요하다. 특히 여성의 건강한 몸을 위해서는 다자녀 출산과 과도한 신체활동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생물학적으로 밝히고 있다.

 

임신 전후로 과도한 신체활동을 한 여성은 저신장, 저체중의 아기를 낳을 확률이 매우 높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재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출생체중은 유럽계 미국인보다 현저히 적다. 사회경제적 요인의 차이와 위험인자 노출 빈도의 차이를 고려해도, 인종간 출생체중의 차이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더욱이 이러한 차이가 유전적 요인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은 없다. 왜냐하면 노예를 수출했던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 여성의 아기는 노예의 후손으로 미국에서 태어난 흑인 여성의 아기보다 체중이 더 나가기 때문이다.”(184) 아프리카 사람들의 저신장, 저체중이 유전적 차이로 여겨질 수 있었다. 그 원인을 추적 조사 연구해 보았더니, 오랫동안 노예로 살아오면서 과도한 신체노동을 한 여성들의 저체중 출산이 대물림되었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이를 인종 차별에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동들의 출생체중을 떨어뜨린 원인으로,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수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들이 토로하는 인종 차별에 대한 심리적 영향을 지목한다.”(187)

 

진화기의 인간과 현대인의 생리적 특징과 해부학적 구조 등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반면에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 인문환경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부조화로 인하여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각종 질병 특히 성인병 등은 피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엄마의 자궁 속에서 굶주린 태아는 생애 초기의 환경과 자신의 성인기 환경에 대한 열악한 환경에 대한 예측으로 자신의 몸을 작게 만들고 에너지 저장 능력을 키우려고 할 것이다. 만일 태아의 예측이 틀릴 경우에는 심장병, 성인 당뇨병과 같은 질병이 발현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양상 불균형 상태로 태어나서 성인기에 풍부한 영양을 취하게 되면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게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나는 여성과 운동과의 관계를 상상하였다. 여성들이 대체로 운동을 싫어하는 것은 생식에 몰입하기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함이 아닐까.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하든 안하든, 여성의 몸은 미래에 출산을 기정사실화하고 신체활동을 줄이는 것이다. 유기체 스스로가 생존과 생식을 하기 위해서 활동 에너지를 줄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완경(폐경) 이후에는 왜 운동을 싫어할까. 생식 연령기의 생활 패턴이 그대로 유지된 것일 거다. 이 생각을 뒷받침하는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에너지 소비가 섭취보다 많을 때 개인은 체중이 감소한다. 이러한 상태를 음의 에너지 균형(negative energy balance)’이라고 한다. 격렬한 운동, 흔히 직업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은 음의 에너지 균형의 결과로 월경 불순 빈도가 늘어나고, 심하면 월경주기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45) 난소는 신체활동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관으로, 신체활동이 증가하면 그 기능이 억제된다.”(165)

 

경제적 부와 빈곤은 여성의 건강에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하기가 어렵다. “경제적으로 발달한 국가보다 개발도상국의 여성들은 모유 수유를 함으로써 유방암의 발병 위험률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232) 그 이유는 모유 수유가 에스트로겐을 만들어 내는 난소의 활성을 억제해주기 때문이다. 부유한 현대 여성은 에스트로겐의 수치가 높아 생식에 유리하지만 유방암과 난소기능에 위험이 높아지고, 영양이 풍족하지 못한 빈곤층의 여성은 에스트로겐 수치가 낮아 생식에 불리하고 임신이 되더라도 태아는 저체중이 될 확률이 높아지고 산모의 건강을 해칠 염려가 많아진다. 특히 태아를 키워야 할 임산부의 칼슘이 빠져나가 골다공증에 걸릴 염려가 매우 커진다. 대신 빈곤층의 여성은 에스트로겐 수치가 낮아 유방암의 위험은 적다. 이렇듯 어느 하나라도 완벽하게 건강한 여성은 없는 듯하다. 어느 여성이라도 임신과 출산으로 여성의 몸에 이로울 것이 없는 것 같다. 임신과 출산뿐만 아니라, 육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수유기간에도 여성이 섭취한 영양을 영유아기 자녀와 함께 나누어야 한다.

 

생식의 에너지 비용을 알아보자. 여성에게 생식은 난소와 자궁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규칙적인 월경을 유지하는 데도 정상적인 대사에 요구되는 정도 이상의 유지비용이 든다. 더구나 임신한 여성은 임신유지비용을 들여 태아를 키운 후에 출산한다. 출산 시 인간 여성의 아기는 평균 체중이 3.5kg이다. 우리와 가까운 영장류인 침팬지의 새끼는 평균 체중이 2.0kg이다. 인간여성이 훨씬 더 더 많은 비용을 들여 아기를 출산한다. “임신 기간에 체중이 평균 12킬로그램 증가한 여성이 임신에 쓰는 총 비용은 약 77200킬로칼로리다.”(194)

수유에 따르는 에너지 비용은 그보다 훨씬 더 크다. 수유 비용은 신생아의 월령(月齡)과 수유 빈도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 평균 626킬로칼로리가 들며, 이 상태로 수유가 1년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195)

 

이렇듯 여성의 생식 비용이 엄청난데, 임신 유지 결정권이 여성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낙태가 불법이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여성 맘대로 무분별하게 낙태를 허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태아가 모체의 몸에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이상, 태아는 모체의 일부이다. 그럼에도 태아에 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하다. 태아가 여성의 일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탯줄을 끊고 한 인간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야 자식은 모체의 것이 아니다. 이미 한 생명으로 한 인간으로 우뚝 선 것이다. 한편 조산으로 모체로부터 이탈된 태아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다면 그 또한 여성의 일부가 아닌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탯줄로 모체와 연결된 이상은 여성의 신체 중 일부로 보아야 마땅하고 임신 유지 결정권은 여성에게 있다고 보아야 한다.

 

나는 여성의 수명이 늘어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의학기술의 발달은 남성과 여성의 수명을 모두 늘어나게 했겠지만 특히 여성의 수명이 늘어난 것은 출산율이 저하된 것이 중요한 원인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였다. 인간이 가진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한데, 생식을 하기 위해서는 생존(면역력)과 활동에 쏟는 에너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에너지 자원이 한정된 경우라면 생식 과정을 지원하는 데 우선적으로 분배되기 때문에 다른 과정들에 들어갈 에너지는 줄어든다.”(12) 또한 저자는 생식과 여성의 수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식에 비용을 더 많이 쓸수록 유기체의 수명은 단축될 것이다.”(14)

 

이 책의 제목은 <자궁이 아이를 품은 날>이다. 부제로 여성의 생물학과 건강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이다. 제목과 부제를 통합하여 다시 말하면, ‘인간 여성의 임신 출산에 관한 진화론으로 볼 수도 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몸에 대한 연구이다. 여기에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에 대한 정신적 노력과 헌신, 그리고 스트레스에 대한 부분을 보탠다면 여성이 한 생명을 자궁에 품고 출산하고 기르는 모든 과정에 따르는 에너지는 수치로 표현할 수조차 없이 엄청날 것이다.

 

현대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꺼리는 이유는 타당하다. 현대 여성의 몸이 생식 비용을 아끼려는 것은 진화로 보아야 한다. 출산율이 작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은 주로 남성들이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에 대한 남성의 기여도는 현저히 낮다. 특히 임신과 출산에 대한 남성의 기여도는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육아에 대한 복지제도를 늘려준다고 해도 자궁에서 비롯된 여성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모체가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출산율을 높이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임신 전후로 여성의 건강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해야만 한다. 여성이 건강해야 미래 세대도 건강해질 것임은 자명한 이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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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 - 시인, 호색한, 전쟁광 걸작 논픽션 15
루시 휴스핼릿 지음, 장문석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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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눈치오를 경계하라

-루시 휴스핼릿 씀, 장문석 옮김,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글항아리, 2019)-

 

단눈치오, 세상에 어찌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시인이면서 호색한, 호색한이면서 전쟁광, 시인이면서 전쟁광.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다. 좀 더 양보하여 시인이면서 호색한은 그럴 듯도 하다. 둘 다 인간의 감정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너그러이 생각해도 전쟁광은 뜬금없다. 그럼에도 시인, 호색한, 그리고 전쟁광인 바로 이 사람, 단눈치오! 단눈치오가 세 가지 별칭을 갖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삶과 더불어 그 당시 이탈리아의 사회상과 파시즘이 생성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루시 휴스핼릿이 쓰고 장문석 교수가 옮긴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글항아리, 2019)에는 단눈치오(1863~1938)에 관한 인생 역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때로는 소설처럼, 때로는 평전이나 역사서처럼 다가온다. 이 책의 저자는 문화사가, 전기작가, 소설가, 비평가로 알려진 루시 휴스핼릿(영국인, 1951~ )이다. 루시 휴스핼릿은 8년간의 취재 과정을 거쳐 이 책을 세상에 내 놓았다. 단눈치오와 연관된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 런던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단눈치오의 초기 판본, 전기 작가들의 피우메 에피소드 등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쓴 과정이 책의 에필로그, ‘감사의 말에 소개된다. 어느 때, 휴스핼릿은 새처럼 높이 올라 유럽의 역사를 조감한다. 때로는 현미경을 들이대고 단눈치오의 삶을 파헤친다.

 

이 책의 원제는 <THE PIKE>이다. <>이라고 했을까.

그는 자신의 지성에 양분을 공급해주는 어떤 것이 주위에 어른거리기만 하면, 어김없이 그것을 창()으로 꿰어 낚아채고 게걸스럽게 소화한 뒤 다시 더 나은 표현으로 세상에 내보냈다.”(23)

단눈치오의 지성의 양분은 독서와 예술체험 등으로 집약된다. 그는 75천여 권의 장서를 보유한 독서광이었다. 그는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등의 예술에도 관심이 깊었다. 특히 의상, 향수와 같이 자신을 치장하는 데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침대를 꽃으로 장식했다. 집안의 인테리어에도 대충 넘어가지 않았다. 무용, 연극 등의 공연 관람도 즐겼고, 제작에 참여했다. 비행(飛行)의 경험을 소설로 쓰기도 했다. 그의 생활 자체가 문학작품에 반영되었다. <쾌락>, <아마 그렇거나 그렇지 않을 거예요> 등이 대표적이다.

 

단눈치오가 문학 활동을 했던 시기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이다. 서양의 예술계는 낭만주의가 성행했던 때이다. 규칙보다는 파격을, 우아하게 보다는 노골적으로, 보편성보다는 개별성을 중시하는 낭만주의 시대. 예술가들은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었다. 인간의 본능을 표현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단눈치오는 창백한 얼굴, 갈라진 입술, 흐릿한 눈동자 등의 몸이 약한 여성에게서 매혹을 느꼈다. 그 매혹적인 부분을 작품에 묘사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쾌락>, <무고한 존재> 등이다. 데카당스한 그의 작품에는 죽음을 찬미한 <죽음의 승리>도 있다. 단눈치오와 같은 호색한에게 거침없는 성생활이 가능했고, 그런 문학 작품도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었다. 이 시대는 대중들의 관심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대였다. 바로 선동정치다. 대중은 지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시기였다. 이 선동정치의 정점에 연설이 있다.

 

단눈치오의 수사학은 공격적이었고 매너는 세련되었다. 때로는 종교 예배의식이나 고전 드라마에서 빌려온 수사학적 기교를 활용하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성향이 대중에게 강한 흡인력으로 작용했고 추종자들에게는 참전을 선동할 수 있었다. 단눈치오의 연설은 전쟁의 도구가 되었다. 단눈치오는 사람들에게 신()과 같았다. 단눈치오는 스스로 초인(超人)이라고 하였다. 단눈치오는 마초적이고 인간에 대한 지배욕구가 강했다. 어떤 사람에게도 굽히지 않았다. 1897, 아브루초에 지역구 의석이 공석이 되자 보궐선거가 있었다. 그 결과, “단눈치오는 의석을 얻었다. 그런 뒤 곧바로 흥미를 잃었다. 자신의 지위가 타인들의 투표에 좌우된다는 사실은 그에게 모욕적으로 여겨졌다.”(339) 이 사례는 교만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19세기 후반, 유럽은 민족주의 시대였고, 이탈리아는 각기 다른 역사를 지닌 지역들이 불안정하게 통합된 신생국이었다. 통일 이탈리아는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하였으나 안정되지 못했고 부패와 선거부정까지 더해져 사람들은 절망감을 느꼈다. 불안한 국가를 통치할 영웅을 갈망하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단눈치오는 독재의 비전을 갖고 장난을 쳤다. 그는 국가가 전능한 철학자-왕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플라톤에게 찬사를 보냈다.”(762) 그는 당시의 이탈리아 의회정치도 못마땅했다. 단눈치오가 정치에 발을 들여 놓는다.

 

1차 세계대전 때, 단눈치오는 조국 이탈리아가 중립노선을 지키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이탈리아의 참전을 정당화한 단눈치오의 가장 중요한 논거는, 한 민족은 투쟁을 통해서만 용기를 입증하고 타민족의 존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643) 이탈리아의 자존심을 지키자는 명분하에 젊은이들을 소집하여 전쟁터로 내모는 데 크게 일조하였다. 연설로만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도 비행기에 탑승하여 전단지를 뿌리고 폭탄도 떨어뜨렸다. 비행기 사고로 한 쪽 눈을 잃는다. 불편한 몸으로 문학작품 쓰기, 음악 감상 등으로 지내다가 다시 참전한다. 전쟁의 참상을 글로 남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단눈치오는 186명의 이탈리아군 출신 폭동자들을 이끌고 크로아티아의 항구도시 피우메로 향하였다. 잃어버린 옛 이탈리아 땅을 회복하고 싶은 대중의 열망(실지회복주의 운동)에 힘입었다. 피우메에 도착할 무렵에는 그의 추종자가 2천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는 피우메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 정치를 하고자 하였다. 혁신적인 정치, 세련된 문화 창출을 꿈꾸었다.

그러나 정작 거기서 창출된 문화는 회고적으로 볼 때 급속히 타락하여 아주 고약한 특성을 띠게 되었다. 예컨대 번개 표시로 장식된 검은 제복은 제복 착용자를 불길한 느낌의 초인처럼 보이게 했다. 군사적 스펙터클이 마치 신성한 제식들인 양 눈앞에 펼쳐졌다. 젊음의 숭배는 비행 청소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타락했다. 소수 종족들은 괴롭힘을 당했다.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행렬과 축제들이 지도자 숭배를 치장하기 위해 고안되었다.”(15)

단눈치오의 피오메 통치는 파시즘의 서곡이 된다. 단눈치오는 자신이 파시스트가 아니라고 하지만,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은 다분히 단눈치오적이었다. 무솔리니는 단눈치오의 정치 스타일을 상당 부분 차용하였다. 저자는 (단눈치오)가 죽은 뒤 결국 강제로 정렬되었다. 그의 영묘는 본질적으로 파시스트 기념물이다.”(893)라고 하였다. 결국 단눈치오는 파시스트의 기원이 된 셈이다.

저자는 전쟁의 참상, 그 중에서도 비행기의 폭격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썼다.

지상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자기네한테 일어나는 일을 피할 수가 없고, 조금 더 상상력을 갖춘 사람들은 입장을 약간 바꿔 자신들이 적들에게 무슨 일을 행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비행사들은 사정이 달랐다. 그들이 직면한 물리적 위험은 극단적이었지만, 그들은 지상의 수많은 병사처럼 상호 간에 학살의 공포 때문에 광분에 사로잡히지는 않았다. 그들은 전투의 광경과 냄새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만드는지, 얼마나 많은 가정을 파괴하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창공의 신선함 속에서 미랄리아처럼 무정하고도 죄의식 없이 태양빛을 받으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비행했던 것이다.”(580)

 

온고지신(溫故知新)! 사회가 혼란스럽고 살기가 팍팍해지면 사람들은 이성으로 판단하기 어렵게 된다. 미래가 불안해지면 자포자기 상태로 향락에 젖을 수도 있다. 1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의 정치는 부패하고, 경제는 전쟁 지출로 파탄이 난다. 사회는 타락하고 사람들은 불안한 삶을 산다. 많은 사람들이 폭력과 급진적 변화를 갈망했다. 단눈치오와 같은 권력욕이 강한 사람이 나타나 지배한다. 단눈치오의 통치 스타일을 눈여겨 본 무솔리니가 이를 표절하여 파시즘으로 권력을 휘두른다.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일본 제국주의. 영토 확장과 지배에 대한 탐욕은 지구상의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우리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경계의 끈을 바짝 조여야 한다. 인간의 존엄을 허투루 내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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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 - 시인, 호색한, 전쟁광 걸작 논픽션 15
루시 휴스핼릿 지음, 장문석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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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눈치오를 경계하라

-루시 휴스핼릿 씀, 장문석 옮김,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글항아리, 2019)-

 

단눈치오, 세상에 어찌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시인이면서 호색한, 호색한이면서 전쟁광, 시인이면서 전쟁광.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다. 좀 더 양보하여 시인이면서 호색한은 그럴 듯도 하다. 둘 다 인간의 감정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너그러이 생각해도 전쟁광은 뜬금없다. 그럼에도 시인, 호색한, 그리고 전쟁광인 바로 이 사람, 단눈치오! 단눈치오가 세 가지 별칭을 갖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삶과 더불어 그 당시 이탈리아의 사회상과 파시즘이 생성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루시 휴스핼릿이 쓰고 장문석 교수가 옮긴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글항아리, 2019)에는 단눈치오(1863~1938)에 관한 인생 역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때로는 소설처럼, 때로는 평전이나 역사서처럼 다가온다. 이 책의 저자는 문화사가, 전기작가, 소설가, 비평가로 알려진 루시 휴스핼릿(영국인, 1951~ )이다. 루시 휴스핼릿은 8년간의 취재 과정을 거쳐 이 책을 세상에 내 놓았다. 단눈치오와 연관된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 런던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단눈치오의 초기 판본, 전기 작가들의 피우메 에피소드 등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쓴 과정이 책의 에필로그, ‘감사의 말에 소개된다. 어느 때, 휴스핼릿은 새처럼 높이 올라 유럽의 역사를 조감한다. 때로는 현미경을 들이대고 단눈치오의 삶을 파헤친다.

 

이 책의 원제는 <THE PIKE>이다. <>이라고 했을까.

그는 자신의 지성에 양분을 공급해주는 어떤 것이 주위에 어른거리기만 하면, 어김없이 그것을 창()으로 꿰어 낚아채고 게걸스럽게 소화한 뒤 다시 더 나은 표현으로 세상에 내보냈다.”(23)

단눈치오의 지성의 양분은 독서와 예술체험 등으로 집약된다. 그는 75천여 권의 장서를 보유한 독서광이었다. 그는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등의 예술에도 관심이 깊었다. 특히 의상, 향수와 같이 자신을 치장하는 데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침대를 꽃으로 장식했다. 집안의 인테리어에도 대충 넘어가지 않았다. 무용, 연극 등의 공연 관람도 즐겼고, 제작에 참여했다. 비행(飛行)의 경험을 소설로 쓰기도 했다. 그의 생활 자체가 문학작품에 반영되었다. <쾌락>, <아마 그렇거나 그렇지 않을 거예요> 등이 대표적이다.

 

단눈치오가 문학 활동을 했던 시기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이다. 서양의 예술계는 낭만주의가 성행했던 때이다. 규칙보다는 파격을, 우아하게 보다는 노골적으로, 보편성보다는 개별성을 중시하는 낭만주의 시대. 예술가들은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었다. 인간의 본능을 표현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단눈치오는 창백한 얼굴, 갈라진 입술, 흐릿한 눈동자 등의 몸이 약한 여성에게서 매혹을 느꼈다. 그 매혹적인 부분을 작품에 묘사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쾌락>, <무고한 존재> 등이다. 데카당스한 그의 작품에는 죽음을 찬미한 <죽음의 승리>도 있다. 단눈치오와 같은 호색한에게 거침없는 성생활이 가능했고, 그런 문학 작품도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었다. 이 시대는 대중들의 관심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대였다. 바로 선동정치다. 대중은 지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시기였다. 이 선동정치의 정점에 연설이 있다.

 

단눈치오의 수사학은 공격적이었고 매너는 세련되었다. 때로는 종교 예배의식이나 고전 드라마에서 빌려온 수사학적 기교를 활용하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성향이 대중에게 강한 흡인력으로 작용했고 추종자들에게는 참전을 선동할 수 있었다. 단눈치오의 연설은 전쟁의 도구가 되었다. 단눈치오는 사람들에게 신()과 같았다. 단눈치오는 스스로 초인(超人)이라고 하였다. 단눈치오는 마초적이고 인간에 대한 지배욕구가 강했다. 어떤 사람에게도 굽히지 않았다. 1897, 아브루초에 지역구 의석이 공석이 되자 보궐선거가 있었다. 그 결과, “단눈치오는 의석을 얻었다. 그런 뒤 곧바로 흥미를 잃었다. 자신의 지위가 타인들의 투표에 좌우된다는 사실은 그에게 모욕적으로 여겨졌다.”(339) 이 사례는 교만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19세기 후반, 유럽은 민족주의 시대였고, 이탈리아는 각기 다른 역사를 지닌 지역들이 불안정하게 통합된 신생국이었다. 통일 이탈리아는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하였으나 안정되지 못했고 부패와 선거부정까지 더해져 사람들은 절망감을 느꼈다. 불안한 국가를 통치할 영웅을 갈망하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단눈치오는 독재의 비전을 갖고 장난을 쳤다. 그는 국가가 전능한 철학자-왕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플라톤에게 찬사를 보냈다.”(762) 그는 당시의 이탈리아 의회정치도 못마땅했다. 단눈치오가 정치에 발을 들여 놓는다.

 

1차 세계대전 때, 단눈치오는 조국 이탈리아가 중립노선을 지키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이탈리아의 참전을 정당화한 단눈치오의 가장 중요한 논거는, 한 민족은 투쟁을 통해서만 용기를 입증하고 타민족의 존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643) 이탈리아의 자존심을 지키자는 명분하에 젊은이들을 소집하여 전쟁터로 내모는 데 크게 일조하였다. 연설로만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도 비행기에 탑승하여 전단지를 뿌리고 폭탄도 떨어뜨렸다. 비행기 사고로 한 쪽 눈을 잃는다. 불편한 몸으로 문학작품 쓰기, 음악 감상 등으로 지내다가 다시 참전한다. 전쟁의 참상을 글로 남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단눈치오는 186명의 이탈리아군 출신 폭동자들을 이끌고 크로아티아의 항구도시 피우메로 향하였다. 잃어버린 옛 이탈리아 땅을 회복하고 싶은 대중의 열망(실지회복주의 운동)에 힘입었다. 피우메에 도착할 무렵에는 그의 추종자가 2천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는 피우메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 정치를 하고자 하였다. 혁신적인 정치, 세련된 문화 창출을 꿈꾸었다.

그러나 정작 거기서 창출된 문화는 회고적으로 볼 때 급속히 타락하여 아주 고약한 특성을 띠게 되었다. 예컨대 번개 표시로 장식된 검은 제복은 제복 착용자를 불길한 느낌의 초인처럼 보이게 했다. 군사적 스펙터클이 마치 신성한 제식들인 양 눈앞에 펼쳐졌다. 젊음의 숭배는 비행 청소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타락했다. 소수 종족들은 괴롭힘을 당했다.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행렬과 축제들이 지도자 숭배를 치장하기 위해 고안되었다.”(15)

단눈치오의 피오메 통치는 파시즘의 서곡이 된다. 단눈치오는 자신이 파시스트가 아니라고 하지만,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은 다분히 단눈치오적이었다. 무솔리니는 단눈치오의 정치 스타일을 상당 부분 차용하였다. 저자는 (단눈치오)가 죽은 뒤 결국 강제로 정렬되었다. 그의 영묘는 본질적으로 파시스트 기념물이다.”(893)라고 하였다. 결국 단눈치오는 파시스트의 기원이 된 셈이다.

저자는 전쟁의 참상, 그 중에서도 비행기의 폭격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썼다.

지상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자기네한테 일어나는 일을 피할 수가 없고, 조금 더 상상력을 갖춘 사람들은 입장을 약간 바꿔 자신들이 적들에게 무슨 일을 행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비행사들은 사정이 달랐다. 그들이 직면한 물리적 위험은 극단적이었지만, 그들은 지상의 수많은 병사처럼 상호 간에 학살의 공포 때문에 광분에 사로잡히지는 않았다. 그들은 전투의 광경과 냄새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만드는지, 얼마나 많은 가정을 파괴하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창공의 신선함 속에서 미랄리아처럼 무정하고도 죄의식 없이 태양빛을 받으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비행했던 것이다.”(580)

 

온고지신(溫故知新)! 사회가 혼란스럽고 살기가 팍팍해지면 사람들은 이성으로 판단하기 어렵게 된다. 미래가 불안해지면 자포자기 상태로 향락에 젖을 수도 있다. 1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의 정치는 부패하고, 경제는 전쟁 지출로 파탄이 난다. 사회는 타락하고 사람들은 불안한 삶을 산다. 많은 사람들이 폭력과 급진적 변화를 갈망했다. 단눈치오와 같은 권력욕이 강한 사람이 나타나 지배한다. 단눈치오의 통치 스타일을 눈여겨 본 무솔리니가 이를 표절하여 파시즘으로 권력을 휘두른다.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일본 제국주의. 영토 확장과 지배에 대한 탐욕은 지구상의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우리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경계의 끈을 바짝 조여야 한다. 인간의 존엄을 허투루 내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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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과 여신 - 여성혐오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했는가?
레너드 쉴레인 지음, 윤영삼.조윤정 옮김 / 콘체르토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문자 권력이 나아갈 길

-레너드 쉴레인 지음, 윤영삼·조윤정 옮김, <알파벳과 여신>(콘체르토, 2018)-

 

 

어렸을 적, 나는 알 수 없는 피부병에 걸려서 고생했다. 의료 시설이 없는 아주 작은 시골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민간요법을 받았다. 그래도 낫지 않자, 어머니는 동네에서 아주 나이 많은 할머니를 모셔왔다. 호호백발에 얼굴은 마른 대추같이 쭈글쭈글했다. 나는 속옷만 입은 채 마루에 쪼그리고 앉고, 어머니는 내 머리에 커다란 박 바가지를 씌웠다. 할머니는 식칼을 옆으로 뉘어서 바가지 위를 쓱쓱 문질렀다. 그러더니 한 손 가득 콩을 집어서는 뭔가 주문을 외면서 바가지에 수차례 던졌다. 바가지에 부딪치는 콩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천둥소리 같았다. 얼마 후, 피부병이 나았다. 어머니는 그 할머니의 방법이 효험을 본 거라고 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할머니의 갖가지 방법은 우리 동네 여러 사람들에게 적용되어 왔다.

위 이야기는 내 삶을 통틀어 가장 주술이 묻어나는 일인데, <알파벳과 여신>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그 할머니는 무녀도 아니었고 여신도 아니었으나 마을 사람들은 그를 믿었다. 그에게 의지했다. 마치 종교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나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 사람들은 이렇게 주술의 힘을 믿고 따랐을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알파벳과 여신>은 미국의 신경외과의사이자 발명가, 작가인 레나드 쉴레인(1937~2009)의 저서다. 이 책의 부제는 여성혐오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했는가. 선사시대로부터 역사시대 초기까지 주술의 힘은 권력이었다. 그 권력을 빼앗고 싶은 남자들이 주술을 가진 여성들을 박해한다. 여신을 몰아낸다. 나아가서 여성 전체를 하찮게 여기는 남자 집단이 출현한다. 지배욕 강한 일부 남자들이 여자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가부장제와 여성혐오를 일으킨다. 이 과정의 중심에 문자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남자들이 문자를 이용해 권력을 거머쥐게 되다니, 문자로 어떻게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일까. 이 책은 그 궁금증에 대한 저자의 연구 결과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무엇일까. 인간의 삶에 가장 영향력이 큰 발명품은 문자. 5천년의 역사를 가진 이 문자가 가져온 긍정성 말고 부정성에 대한 연구가 <알파벳과 여신>이다. 대체로, 여성이 남성보다 언어중추가 잘 발달되어 있다고 여긴다. 저자는 이 통념을 깬다. 남자의 좌뇌에서 언어, 문자가 더 발달했고, 여자의 우뇌에서 이미지가 더 발달했다고 본다. 따라서 남성적인 특성을 가진 문자가 여성적 가치를 폄훼한다. 문자를 읽고 쓰는 과정 자체가 우뇌적 가치를 희생시킨다고 말한다.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신경외과의사이기도 한 저자는 의학, 문화인류학, 종교학 등의 다양한 학문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이같이 주장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책은 문자의 역사, 종교의 역사, 여성의 수난사라고 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원시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남자는 사냥(집단사냥)을 위해 목표물에 집중하는 뇌로 진화한다. 여자는 양육과 채집을 하는 쪽으로 신경계가 재설계되고, 주변을 넓게 인지하는 능력이 탁월한 쪽으로 진화한다. 남자는 좌뇌로, 여자는 우뇌로 발달하게 된다. 여자는 자신의 아이와 함께 생존하기 위해서 남자에게 순결과 충성을 약속하게 되는데 이는 바로 가부장제를 예고한다. 원시시대를 지나 농경과 가축사육이 성행하고 사냥의 중요성이 추락하면서 여자와 여성적 신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구석기 문화유적이 있는 곳에서는 여신조각상 파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고고학이 발달하면서 이 여자조각상들은 다산을 숭배하는 소수의 유물로 치부되고 만다. 새롭게 정착생활을 시작한 인류가 여신을 숭배했다는 주장을 망상으로 깎아내렸다.

 

세계 4대 성인(聖人)을 꼽으라면, 붓다,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남자다. 넷 모두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들이 남자라고 하여 여자를 폄하하지 않았다. 인간존중, 만인의 평등, 사랑을 역설했다. 성인의 말씀은 성인의 사후에 제자들이나 사제들이 만들어낸 책에 문자로 기록된다. 성인과 동시대를 살지도 않은 사람들이 성인의 말씀을 이용해 자신들의 주장을 썼다면 과연 누구에게 유리하게 썼겠는가.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문맹이던 시절에 일부 탐욕적인 남자들이 관습을 버리게 하고 문자로 기록된 경전이나 문서 등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들었다면 이를 이겨낼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여성의 지위가 급격히 하락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자들은 문자교육을 받지도 못했다. 많은 여자들이 문맹으로 산 세월이 너무 길다. 여자들은 집에서 가정을 꾸려가는 살림살이를 배우곤 하였다. 지위하락에 머문 정도가 아니라, 여성을 신체적으로 학대하기도 하였다. 신체적 학대는 정신적 학대로 이어진다.

 

문자 권력을 가진 남성이 여성을 학대한 자세한 예를 찾아보자. 저자의 연구에 의하면, 중국에서 전족풍습이 시작된 시기는 인쇄술과 유교가 사회구조를 지배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법전이 편찬되고 문맹에서 벗어난 남자들이 늘어나면서 여자들의 얼굴에 베일을 씌운다. 베일은 다른 사람과의 대면을 불가능하게 한다. 소통을 방해한다. 우뇌의 활성화를 막는다. 여성에 대한 이런 가학은 유교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쓰개치마와 장옷이 그것이다. 이슬람의 몇몇 교파에서 실시하는 어린 여자아이의 할례의식은 여자들을 더욱 순종적으로 만들기 위함이라 한다. 이슬람의 할례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여성학대는 마귀사냥이다. 15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무수히 많은 여자들이 마귀로 몰려 고문, 신체절단, 화형을 당했다. 마귀사냥을 한 이유가 뭘까. 1484년 교황은 마법이 기독교를 위협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일부 의사들은 대중의 신뢰를 받던 치유사들을 몰아내고 싶어 이에 동조했다. “고대로부터 오랜 세월 공들여 쌓아 온 여자들의 지혜-의술을 비롯한 다양한 지식-마녀와 함께 불길 속에 사라지고 말았다.”(623)

 

이와 같이 <알파벳과 여신>은 문자(남자)가 여신(여자)을 몰아내고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경위를 밝혀낸다. 세월이 흘러, 산업혁명으로 사진술이 발명된다. 이것은 문화의 흐름을 문자에서 이미지로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우뇌의 가치를 높여주게 되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19세기에 들어서 사람들은 서서히 이미지를 통해 세상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저자는 일간지에 등장하는 정치풍자만화를 예로 들어, 장황한 사설보다 만화가 핵심을 더 잘 짚어주었다고 평가한다. 이어 20세기 초반에 텔레비전이 발명된다. 여기서 저자는 텔레비전이 사람들의 우뇌가 활용할 양을 늘려주었다고 말한다. 우뇌가 활성화되고 좌뇌의 지배력이 약화되어 감으로써 여성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현대가 이미지의 시대가 되면서 여성의 가치가 향상되었다는 말이다.

 

과연 그런가. 사람의 지식이나 정서를 문자만큼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저자가 말하는 이미지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알파벳이 여신을 몰아내고 가부장제와 여성혐오를 불러왔다는 저자의 주장이 이미지로 표현되지 않고 이 책으로 출간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이미지보다는 문자임이 확실하다. 현대에 들어 여자들이 평등을 외치고, 남자와 함께 경쟁하고, 여러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아가고 있다. 여자들이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은 여자들이 문자 교육을 받은 덕택이다. 어떻게 이미지 시대가 되어서 여성들이 평등의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가 예로 든 이미지 중에서 만화나 텔레비전을 생각해 봐도, 만화나 텔레비전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어렵다. 만화의 그림이나 텔레비전의 영상이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인간의 창의성을 저해한다는 연구결과는 차고 넘친다. 따라서 줄글로 된 책이 인간의 사고력과 상상력, 그리고 창의성을 증진시켜 주는 데에 적합하다. 읽으면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하면 쓸 수 있다. 쓰는 일은 창조다. 문자 권력은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일에 기여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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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과 여신 - 여성혐오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했는가?
레너드 쉴레인 지음, 윤영삼.조윤정 옮김 / 콘체르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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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권력이 나아갈 길

-레너드 쉴레인 지음, 윤영삼·조윤정 옮김, <알파벳과 여신>(콘체르토, 2018)-

 

                                                       

어렸을 적, 나는 알 수 없는 피부병에 걸려서 고생했다. 의료 시설이 없는 아주 작은 시골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민간요법을 받았다. 그래도 낫지 않자, 어머니는 동네에서 아주 나이 많은 할머니를 모셔왔다. 호호백발에 얼굴은 마른 대추같이 쭈글쭈글했다. 나는 속옷만 입은 채 마루에 쪼그리고 앉고, 어머니는 내 머리에 커다란 박 바가지를 씌웠다. 할머니는 식칼을 옆으로 뉘어서 바가지 위를 쓱쓱 문질렀다. 그러더니 한 손 가득 콩을 집어서는 뭔가 주문을 외면서 바가지에 수차례 던졌다. 바가지에 부딪치는 콩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천둥소리 같았다. 얼마 후, 피부병이 나았다. 어머니는 그 할머니의 방법이 효험을 본 거라고 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할머니의 갖가지 방법은 우리 동네 여러 사람들에게 적용되어 왔다.

위 이야기는 내 삶을 통틀어 가장 주술이 묻어나는 일인데, <알파벳과 여신>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그 할머니는 무녀도 아니었고 여신도 아니었으나 마을 사람들은 그를 믿었다. 그에게 의지했다. 마치 종교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나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 사람들은 이렇게 주술의 힘을 믿고 따랐을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알파벳과 여신>은 미국의 신경외과의사이자 발명가, 작가인 레나드 쉴레인(1937~2009)의 저서다. 이 책의 부제는 여성혐오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했는가. 선사시대로부터 역사시대 초기까지 주술의 힘은 권력이었다. 그 권력을 빼앗고 싶은 남자들이 주술을 가진 여성들을 박해한다. 여신을 몰아낸다. 나아가서 여성 전체를 하찮게 여기는 남자 집단이 출현한다. 지배욕 강한 일부 남자들이 여자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가부장제와 여성혐오를 일으킨다. 이 과정의 중심에 문자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남자들이 문자를 이용해 권력을 거머쥐게 되다니, 문자로 어떻게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일까. 이 책은 그 궁금증에 대한 저자의 연구 결과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무엇일까. 인간의 삶에 가장 영향력이 큰 발명품은 문자. 5천년의 역사를 가진 이 문자가 가져온 긍정성 말고 부정성에 대한 연구가 <알파벳과 여신>이다. 대체로, 여성이 남성보다 언어중추가 잘 발달되어 있다고 여긴다. 저자는 이 통념을 깬다. 남자의 좌뇌에서 언어, 문자가 더 발달했고, 여자의 우뇌에서 이미지가 더 발달했다고 본다. 따라서 남성적인 특성을 가진 문자가 여성적 가치를 폄훼한다. 문자를 읽고 쓰는 과정 자체가 우뇌적 가치를 희생시킨다고 말한다.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신경외과의사이기도 한 저자는 의학, 문화인류학, 종교학 등의 다양한 학문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이같이 주장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책은 문자의 역사, 종교의 역사, 여성의 수난사라고 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원시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남자는 사냥(집단사냥)을 위해 목표물에 집중하는 뇌로 진화한다. 여자는 양육과 채집을 하는 쪽으로 신경계가 재설계되고, 주변을 넓게 인지하는 능력이 탁월한 쪽으로 진화한다. 남자는 좌뇌로, 여자는 우뇌로 발달하게 된다. 여자는 자신의 아이와 함께 생존하기 위해서 남자에게 순결과 충성을 약속하게 되는데 이는 바로 가부장제를 예고한다. 원시시대를 지나 농경과 가축사육이 성행하고 사냥의 중요성이 추락하면서 여자와 여성적 신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구석기 문화유적이 있는 곳에서는 여신조각상 파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고고학이 발달하면서 이 여자조각상들은 다산을 숭배하는 소수의 유물로 치부되고 만다. 새롭게 정착생활을 시작한 인류가 여신을 숭배했다는 주장을 망상으로 깎아내렸다.

 

세계 4대 성인(聖人)을 꼽으라면, 붓다,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남자다. 넷 모두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들이 남자라고 하여 여자를 폄하하지 않았다. 인간존중, 만인의 평등, 사랑을 역설했다. 성인의 말씀은 성인의 사후에 제자들이나 사제들이 만들어낸 책에 문자로 기록된다. 성인과 동시대를 살지도 않은 사람들이 성인의 말씀을 이용해 자신들의 주장을 썼다면 과연 누구에게 유리하게 썼겠는가.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문맹이던 시절에 일부 탐욕적인 남자들이 관습을 버리게 하고 문자로 기록된 경전이나 문서 등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들었다면 이를 이겨낼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여성의 지위가 급격히 하락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자들은 문자교육을 받지도 못했다. 많은 여자들이 문맹으로 산 세월이 너무 길다. 여자들은 집에서 가정을 꾸려가는 살림살이를 배우곤 하였다. 지위하락에 머문 정도가 아니라, 여성을 신체적으로 학대하기도 하였다. 신체적 학대는 정신적 학대로 이어진다.

 

문자 권력을 가진 남성이 여성을 학대한 자세한 예를 찾아보자. 저자의 연구에 의하면, 중국에서 전족풍습이 시작된 시기는 인쇄술과 유교가 사회구조를 지배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법전이 편찬되고 문맹에서 벗어난 남자들이 늘어나면서 여자들의 얼굴에 베일을 씌운다. 베일은 다른 사람과의 대면을 불가능하게 한다. 소통을 방해한다. 우뇌의 활성화를 막는다. 여성에 대한 이런 가학은 유교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쓰개치마와 장옷이 그것이다. 이슬람의 몇몇 교파에서 실시하는 어린 여자아이의 할례의식은 여자들을 더욱 순종적으로 만들기 위함이라 한다. 이슬람의 할례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여성학대는 마귀사냥이다. 15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무수히 많은 여자들이 마귀로 몰려 고문, 신체절단, 화형을 당했다. 마귀사냥을 한 이유가 뭘까. 1484년 교황은 마법이 기독교를 위협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일부 의사들은 대중의 신뢰를 받던 치유사들을 몰아내고 싶어 이에 동조했다. “고대로부터 오랜 세월 공들여 쌓아 온 여자들의 지혜-의술을 비롯한 다양한 지식-마녀와 함께 불길 속에 사라지고 말았다.”(623)

 

이와 같이 <알파벳과 여신>은 문자(남자)가 여신(여자)을 몰아내고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경위를 밝혀낸다. 세월이 흘러, 산업혁명으로 사진술이 발명된다. 이것은 문화의 흐름을 문자에서 이미지로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우뇌의 가치를 높여주게 되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19세기에 들어서 사람들은 서서히 이미지를 통해 세상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저자는 일간지에 등장하는 정치풍자만화를 예로 들어, 장황한 사설보다 만화가 핵심을 더 잘 짚어주었다고 평가한다. 이어 20세기 초반에 텔레비전이 발명된다. 여기서 저자는 텔레비전이 사람들의 우뇌가 활용할 양을 늘려주었다고 말한다. 우뇌가 활성화되고 좌뇌의 지배력이 약화되어 감으로써 여성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현대가 이미지의 시대가 되면서 여성의 가치가 향상되었다는 말이다.

 

과연 그런가. 사람의 지식이나 정서를 문자만큼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저자가 말하는 이미지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알파벳이 여신을 몰아내고 가부장제와 여성혐오를 불러왔다는 저자의 주장이 이미지로 표현되지 않고 이 책으로 출간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이미지보다는 문자임이 확실하다. 현대에 들어 여자들이 평등을 외치고, 남자와 함께 경쟁하고, 여러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아가고 있다. 여자들이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은 여자들이 문자 교육을 받은 덕택이다. 어떻게 이미지 시대가 되어서 여성들이 평등의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가 예로 든 이미지 중에서 만화나 텔레비전을 생각해 봐도, 만화나 텔레비전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어렵다. 만화의 그림이나 텔레비전의 영상이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인간의 창의성을 저해한다는 연구결과는 차고 넘친다. 따라서 줄글로 된 책이 인간의 사고력과 상상력, 그리고 창의성을 증진시켜 주는 데에 적합하다. 읽으면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하면 쓸 수 있다. 쓰는 일은 창조다. 문자 권력은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일에 기여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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