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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이 아이를 품은 날 - 여성의 생물학과 건강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
그라지나 자시엔스카 지음, 김학영 옮김 / 글항아리사이언스 / 2019년 3월
평점 :
저출산은 여성의 진화다
-<자궁이 아이를 품은 날>을 읽고-
가부장제와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던 조선시대 평범한 여성들의 삶을 생각해 보자. 가부장들은 임신한 여성의 노동력을 교묘히 착취하였다.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라고 하였다. 작게 낳으려면 가만히 있지 말고 많이 움직여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움직인다는 것은 요즘의 운동의 개념이 아니라, 바로 육체노동이었을 것이다.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던 임산부들은 부실한 식사에, 집안일과 농사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니 밭에서 일하다 밭고랑에서 출산을 했다는 둥, 논두렁에서 출산을 했다는 등의 전설 같은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옛날에는 피임법이 발달하지 않았고, 농업이 기계화되지 않아 일손이 많이 들었으며, 가부장제로 인해 남아를 선호했다. 때로는 낳은 아기마저 일찍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듯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나라 여성 조상들은 자녀를 많이 낳아야 했다.
이 책 <자궁이 아이를 품은 날>은 그라지나 자시엔스카가 썼다. 그는 인간 진화생물학과 진화공중보건학을 연구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위와 같은 우리 여성 조상들의 다자녀 출산과 과도한 신체노동이 여성 건강을 얼마나 해치는지를 깨달았을 때, 마음이 아팠다. 더구나 모체의 수명까지도 줄이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충격이었다. 저자는 인간 여성의 에스트로겐이 생식과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자세히 말한다. 에스트로겐이 풍부한 여성은 생식에는 유리하다. 반면에 유방암에는 위협적이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낮고 신체활동이 많은 여성의 건강이 가장 위험하다. 태아의 발육도 잘 안되고 모체에게 골다공증이나 빈혈 등에도 취약하다. 결국 인간 여성의 몸이 완벽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현대 여성은 영양 불균형과 각종 환경 변화 스트레스 등으로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개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식생활과 운동 등의 생활 습관 변화가 중요하다. 특히 여성의 건강한 몸을 위해서는 다자녀 출산과 과도한 신체활동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생물학적으로 밝히고 있다.
임신 전후로 과도한 신체활동을 한 여성은 저신장, 저체중의 아기를 낳을 확률이 매우 높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재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출생체중은 유럽계 미국인보다 현저히 적다. 사회경제적 요인의 차이와 위험인자 노출 빈도의 차이를 고려해도, 인종간 출생체중의 차이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더욱이 이러한 차이가 유전적 요인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은 없다. 왜냐하면 노예를 수출했던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 여성의 아기는 노예의 후손으로 미국에서 태어난 흑인 여성의 아기보다 체중이 더 나가기 때문이다.”(184쪽) 아프리카 사람들의 저신장, 저체중이 유전적 차이로 여겨질 수 있었다. 그 원인을 추적 조사 연구해 보았더니, 오랫동안 노예로 살아오면서 과도한 신체노동을 한 여성들의 저체중 출산이 대물림되었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이를 인종 차별에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동들의 출생체중을 떨어뜨린 원인으로,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수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들이 토로하는 인종 차별에 대한 심리적 영향을 지목한다.”(187쪽)
진화기의 인간과 현대인의 생리적 특징과 해부학적 구조 등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반면에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 인문환경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부조화로 인하여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각종 질병 특히 성인병 등은 피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엄마의 자궁 속에서 굶주린 태아는 생애 초기의 환경과 자신의 성인기 환경에 대한 열악한 환경에 대한 예측으로 자신의 몸을 작게 만들고 에너지 저장 능력을 키우려고 할 것이다. 만일 태아의 예측이 틀릴 경우에는 심장병, 성인 당뇨병과 같은 질병이 발현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양상 불균형 상태로 태어나서 성인기에 풍부한 영양을 취하게 되면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게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나는 여성과 운동과의 관계를 상상하였다. 여성들이 대체로 운동을 싫어하는 것은 생식에 몰입하기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함이 아닐까.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하든 안하든, 여성의 몸은 미래에 출산을 기정사실화하고 신체활동을 줄이는 것이다. 유기체 스스로가 생존과 생식을 하기 위해서 활동 에너지를 줄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완경(폐경) 이후에는 왜 운동을 싫어할까. 생식 연령기의 생활 패턴이 그대로 유지된 것일 거다. 이 생각을 뒷받침하는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에너지 소비가 섭취보다 많을 때 개인은 체중이 감소한다. 이러한 상태를 ‘음의 에너지 균형(negative energy balance)’이라고 한다. 격렬한 운동, 흔히 직업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은 음의 에너지 균형의 결과로 월경 불순 빈도가 늘어나고, 심하면 월경주기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45쪽) 또 “난소는 신체활동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관으로, 신체활동이 증가하면 그 기능이 억제된다.”(165쪽)
경제적 부와 빈곤은 여성의 건강에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하기가 어렵다. “경제적으로 발달한 국가보다 개발도상국의 여성들은 모유 수유를 함으로써 유방암의 발병 위험률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232쪽) 그 이유는 모유 수유가 에스트로겐을 만들어 내는 난소의 활성을 억제해주기 때문이다. 부유한 현대 여성은 에스트로겐의 수치가 높아 생식에 유리하지만 유방암과 난소기능에 위험이 높아지고, 영양이 풍족하지 못한 빈곤층의 여성은 에스트로겐 수치가 낮아 생식에 불리하고 임신이 되더라도 태아는 저체중이 될 확률이 높아지고 산모의 건강을 해칠 염려가 많아진다. 특히 태아를 키워야 할 임산부의 칼슘이 빠져나가 골다공증에 걸릴 염려가 매우 커진다. 대신 빈곤층의 여성은 에스트로겐 수치가 낮아 유방암의 위험은 적다. 이렇듯 어느 하나라도 완벽하게 건강한 여성은 없는 듯하다. 어느 여성이라도 임신과 출산으로 여성의 몸에 이로울 것이 없는 것 같다. 임신과 출산뿐만 아니라, 육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수유기간에도 여성이 섭취한 영양을 영유아기 자녀와 함께 나누어야 한다.
생식의 에너지 비용을 알아보자. 여성에게 생식은 난소와 자궁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규칙적인 월경을 유지하는 데도 정상적인 대사에 요구되는 정도 이상의 유지비용이 든다. 더구나 임신한 여성은 임신유지비용을 들여 태아를 키운 후에 출산한다. 출산 시 인간 여성의 아기는 평균 체중이 3.5kg이다. 우리와 가까운 영장류인 침팬지의 새끼는 평균 체중이 2.0kg이다. 인간여성이 훨씬 더 더 많은 비용을 들여 아기를 출산한다. “임신 기간에 체중이 평균 12킬로그램 증가한 여성이 임신에 쓰는 총 비용은 약 7만 7200킬로칼로리다.”(194쪽)
“수유에 따르는 에너지 비용은 그보다 훨씬 더 크다. 수유 비용은 신생아의 월령(月齡)과 수유 빈도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 평균 626킬로칼로리가 들며, 이 상태로 수유가 1년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195쪽)
이렇듯 여성의 생식 비용이 엄청난데, 임신 유지 결정권이 여성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낙태가 불법이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여성 맘대로 무분별하게 낙태를 허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태아가 모체의 몸에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이상, 태아는 모체의 일부이다. 그럼에도 태아에 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하다. 태아가 여성의 일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탯줄을 끊고 한 인간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야 자식은 모체의 것이 아니다. 이미 한 생명으로 한 인간으로 우뚝 선 것이다. 한편 조산으로 모체로부터 이탈된 태아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다면 그 또한 여성의 일부가 아닌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탯줄로 모체와 연결된 이상은 여성의 신체 중 일부로 보아야 마땅하고 임신 유지 결정권은 여성에게 있다고 보아야 한다.
나는 여성의 수명이 늘어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의학기술의 발달은 남성과 여성의 수명을 모두 늘어나게 했겠지만 특히 여성의 수명이 늘어난 것은 출산율이 저하된 것이 중요한 원인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였다. 인간이 가진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한데, 생식을 하기 위해서는 생존(면역력)과 활동에 쏟는 에너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에너지 자원이 한정된 경우라면 생식 과정을 지원하는 데 우선적으로 분배되기 때문에 다른 과정들에 들어갈 에너지는 줄어든다.”(12쪽) 또한 저자는 생식과 여성의 수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식에 비용을 더 많이 쓸수록 유기체의 수명은 단축될 것이다.”(14쪽)
이 책의 제목은 <자궁이 아이를 품은 날>이다. 부제로 ‘여성의 생물학과 건강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이다. 제목과 부제를 통합하여 다시 말하면, ‘인간 여성의 임신 출산에 관한 진화론’으로 볼 수도 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몸에 대한 연구이다. 여기에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에 대한 정신적 노력과 헌신, 그리고 스트레스에 대한 부분을 보탠다면 여성이 한 생명을 자궁에 품고 출산하고 기르는 모든 과정에 따르는 에너지는 수치로 표현할 수조차 없이 엄청날 것이다.
현대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꺼리는 이유는 타당하다. 현대 여성의 몸이 생식 비용을 아끼려는 것은 ‘진화’로 보아야 한다. 출산율이 작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은 주로 남성들이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에 대한 남성의 기여도는 현저히 낮다. 특히 임신과 출산에 대한 남성의 기여도는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육아에 대한 복지제도를 늘려준다고 해도 자궁에서 비롯된 여성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모체가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출산율을 높이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임신 전후로 여성의 건강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해야만 한다. 여성이 건강해야 미래 세대도 건강해질 것임은 자명한 이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