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 - 시인, 호색한, 전쟁광 걸작 논픽션 15
루시 휴스핼릿 지음, 장문석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눈치오를 경계하라

-루시 휴스핼릿 씀, 장문석 옮김,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글항아리, 2019)-

 

단눈치오, 세상에 어찌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시인이면서 호색한, 호색한이면서 전쟁광, 시인이면서 전쟁광.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다. 좀 더 양보하여 시인이면서 호색한은 그럴 듯도 하다. 둘 다 인간의 감정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너그러이 생각해도 전쟁광은 뜬금없다. 그럼에도 시인, 호색한, 그리고 전쟁광인 바로 이 사람, 단눈치오! 단눈치오가 세 가지 별칭을 갖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삶과 더불어 그 당시 이탈리아의 사회상과 파시즘이 생성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루시 휴스핼릿이 쓰고 장문석 교수가 옮긴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글항아리, 2019)에는 단눈치오(1863~1938)에 관한 인생 역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때로는 소설처럼, 때로는 평전이나 역사서처럼 다가온다. 이 책의 저자는 문화사가, 전기작가, 소설가, 비평가로 알려진 루시 휴스핼릿(영국인, 1951~ )이다. 루시 휴스핼릿은 8년간의 취재 과정을 거쳐 이 책을 세상에 내 놓았다. 단눈치오와 연관된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 런던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단눈치오의 초기 판본, 전기 작가들의 피우메 에피소드 등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쓴 과정이 책의 에필로그, ‘감사의 말에 소개된다. 어느 때, 휴스핼릿은 새처럼 높이 올라 유럽의 역사를 조감한다. 때로는 현미경을 들이대고 단눈치오의 삶을 파헤친다.

 

이 책의 원제는 <THE PIKE>이다. <>이라고 했을까.

그는 자신의 지성에 양분을 공급해주는 어떤 것이 주위에 어른거리기만 하면, 어김없이 그것을 창()으로 꿰어 낚아채고 게걸스럽게 소화한 뒤 다시 더 나은 표현으로 세상에 내보냈다.”(23)

단눈치오의 지성의 양분은 독서와 예술체험 등으로 집약된다. 그는 75천여 권의 장서를 보유한 독서광이었다. 그는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등의 예술에도 관심이 깊었다. 특히 의상, 향수와 같이 자신을 치장하는 데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침대를 꽃으로 장식했다. 집안의 인테리어에도 대충 넘어가지 않았다. 무용, 연극 등의 공연 관람도 즐겼고, 제작에 참여했다. 비행(飛行)의 경험을 소설로 쓰기도 했다. 그의 생활 자체가 문학작품에 반영되었다. <쾌락>, <아마 그렇거나 그렇지 않을 거예요> 등이 대표적이다.

 

단눈치오가 문학 활동을 했던 시기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이다. 서양의 예술계는 낭만주의가 성행했던 때이다. 규칙보다는 파격을, 우아하게 보다는 노골적으로, 보편성보다는 개별성을 중시하는 낭만주의 시대. 예술가들은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었다. 인간의 본능을 표현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단눈치오는 창백한 얼굴, 갈라진 입술, 흐릿한 눈동자 등의 몸이 약한 여성에게서 매혹을 느꼈다. 그 매혹적인 부분을 작품에 묘사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쾌락>, <무고한 존재> 등이다. 데카당스한 그의 작품에는 죽음을 찬미한 <죽음의 승리>도 있다. 단눈치오와 같은 호색한에게 거침없는 성생활이 가능했고, 그런 문학 작품도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었다. 이 시대는 대중들의 관심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대였다. 바로 선동정치다. 대중은 지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시기였다. 이 선동정치의 정점에 연설이 있다.

 

단눈치오의 수사학은 공격적이었고 매너는 세련되었다. 때로는 종교 예배의식이나 고전 드라마에서 빌려온 수사학적 기교를 활용하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성향이 대중에게 강한 흡인력으로 작용했고 추종자들에게는 참전을 선동할 수 있었다. 단눈치오의 연설은 전쟁의 도구가 되었다. 단눈치오는 사람들에게 신()과 같았다. 단눈치오는 스스로 초인(超人)이라고 하였다. 단눈치오는 마초적이고 인간에 대한 지배욕구가 강했다. 어떤 사람에게도 굽히지 않았다. 1897, 아브루초에 지역구 의석이 공석이 되자 보궐선거가 있었다. 그 결과, “단눈치오는 의석을 얻었다. 그런 뒤 곧바로 흥미를 잃었다. 자신의 지위가 타인들의 투표에 좌우된다는 사실은 그에게 모욕적으로 여겨졌다.”(339) 이 사례는 교만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19세기 후반, 유럽은 민족주의 시대였고, 이탈리아는 각기 다른 역사를 지닌 지역들이 불안정하게 통합된 신생국이었다. 통일 이탈리아는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하였으나 안정되지 못했고 부패와 선거부정까지 더해져 사람들은 절망감을 느꼈다. 불안한 국가를 통치할 영웅을 갈망하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단눈치오는 독재의 비전을 갖고 장난을 쳤다. 그는 국가가 전능한 철학자-왕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플라톤에게 찬사를 보냈다.”(762) 그는 당시의 이탈리아 의회정치도 못마땅했다. 단눈치오가 정치에 발을 들여 놓는다.

 

1차 세계대전 때, 단눈치오는 조국 이탈리아가 중립노선을 지키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이탈리아의 참전을 정당화한 단눈치오의 가장 중요한 논거는, 한 민족은 투쟁을 통해서만 용기를 입증하고 타민족의 존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643) 이탈리아의 자존심을 지키자는 명분하에 젊은이들을 소집하여 전쟁터로 내모는 데 크게 일조하였다. 연설로만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도 비행기에 탑승하여 전단지를 뿌리고 폭탄도 떨어뜨렸다. 비행기 사고로 한 쪽 눈을 잃는다. 불편한 몸으로 문학작품 쓰기, 음악 감상 등으로 지내다가 다시 참전한다. 전쟁의 참상을 글로 남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단눈치오는 186명의 이탈리아군 출신 폭동자들을 이끌고 크로아티아의 항구도시 피우메로 향하였다. 잃어버린 옛 이탈리아 땅을 회복하고 싶은 대중의 열망(실지회복주의 운동)에 힘입었다. 피우메에 도착할 무렵에는 그의 추종자가 2천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는 피우메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 정치를 하고자 하였다. 혁신적인 정치, 세련된 문화 창출을 꿈꾸었다.

그러나 정작 거기서 창출된 문화는 회고적으로 볼 때 급속히 타락하여 아주 고약한 특성을 띠게 되었다. 예컨대 번개 표시로 장식된 검은 제복은 제복 착용자를 불길한 느낌의 초인처럼 보이게 했다. 군사적 스펙터클이 마치 신성한 제식들인 양 눈앞에 펼쳐졌다. 젊음의 숭배는 비행 청소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타락했다. 소수 종족들은 괴롭힘을 당했다.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행렬과 축제들이 지도자 숭배를 치장하기 위해 고안되었다.”(15)

단눈치오의 피오메 통치는 파시즘의 서곡이 된다. 단눈치오는 자신이 파시스트가 아니라고 하지만,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은 다분히 단눈치오적이었다. 무솔리니는 단눈치오의 정치 스타일을 상당 부분 차용하였다. 저자는 (단눈치오)가 죽은 뒤 결국 강제로 정렬되었다. 그의 영묘는 본질적으로 파시스트 기념물이다.”(893)라고 하였다. 결국 단눈치오는 파시스트의 기원이 된 셈이다.

저자는 전쟁의 참상, 그 중에서도 비행기의 폭격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썼다.

지상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자기네한테 일어나는 일을 피할 수가 없고, 조금 더 상상력을 갖춘 사람들은 입장을 약간 바꿔 자신들이 적들에게 무슨 일을 행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비행사들은 사정이 달랐다. 그들이 직면한 물리적 위험은 극단적이었지만, 그들은 지상의 수많은 병사처럼 상호 간에 학살의 공포 때문에 광분에 사로잡히지는 않았다. 그들은 전투의 광경과 냄새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만드는지, 얼마나 많은 가정을 파괴하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창공의 신선함 속에서 미랄리아처럼 무정하고도 죄의식 없이 태양빛을 받으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비행했던 것이다.”(580)

 

온고지신(溫故知新)! 사회가 혼란스럽고 살기가 팍팍해지면 사람들은 이성으로 판단하기 어렵게 된다. 미래가 불안해지면 자포자기 상태로 향락에 젖을 수도 있다. 1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의 정치는 부패하고, 경제는 전쟁 지출로 파탄이 난다. 사회는 타락하고 사람들은 불안한 삶을 산다. 많은 사람들이 폭력과 급진적 변화를 갈망했다. 단눈치오와 같은 권력욕이 강한 사람이 나타나 지배한다. 단눈치오의 통치 스타일을 눈여겨 본 무솔리니가 이를 표절하여 파시즘으로 권력을 휘두른다.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일본 제국주의. 영토 확장과 지배에 대한 탐욕은 지구상의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우리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경계의 끈을 바짝 조여야 한다. 인간의 존엄을 허투루 내줄 수 없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