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의 테라스에서 쓴 편지 - 깊은 고독 속에서 건져 올린 반 고흐의 말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편역 / 청림Life / 2026년 8월
평점 :
[ 컬처블룸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성실히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우리가 아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그림으로만 세상과 소통하지 않았다. 그가 남긴 수많은 편지들은 또 다른 '글로 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담았으며, 편지를 통해 반 고흐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다준다.
편지 형식의 글이라 매일매일 조금씩 페이지를 넘겼다. 마치 반 고흐로부터 편지를 받은 것처럼, 때로는 기쁜 마음으로,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이 책을 만나게 되는 독자분들도 단숨에 다 읽지 않고 매일 조금씩 그를 만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빠르게 읽는 독서가 아닌, 조금은 느리게 시간을 흘려보내며 읽으면, 반 고흐와 나의 삶이 교차하고 편지로 친숙해질 것이다.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반 고흐의 생애에 대해 대략적으로라도 알지 못하면, 편지 내용이 뜻하는 바를 쉽게 이해하기 힘들거나 단편적으로 읽힐 것이다. 반 고흐의 일생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는다면 좀 더 다채롭고 내밀하게 읽을 수 있다.
총 3장으로 이루어졌고, 1장은 반 고흐의 예술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편지, 2장은 화가로서 그림에 대한 견해와 화가로서의 삶, 3장은 고난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려는 반 고흐의 결의와 외로움이 담겨있다. 주로 동생 테오에게 향하는 편지가 많으며, 그 외 여러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도 담겨있다.

_ 사랑에 진실함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1882년 7월 6일, 테오에게 )
말하기 어렵긴 하지만, 내가 시엔에게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네게 한 번 더 이야기하는 것이 불필요할 것 같지 않구나. 그녀와 함께 있으면 마치 그녀가 내 가정의 온기를 만들어 주는 듯하다. 집에 있다는 느낌, 우리의 삶이 하나로 짜여 있다는 느낌말이다. 그것은 진심이 담긴 깊고 진지한 감정, 그녀와 나의 우울한 과거의 그림자가 없는 감정이다. (... 중략...) 이제는 그녀를 생각하면 크나큰 평온함과 광채와 유쾌함을 느끼며 내 앞에 곧은 길이 놓여 있는 것만 같구나. p.35
반 고흐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을 당시(1882. 1~ 1883.7 ), 시엔이라는 여성과 살게 된다. 그녀는 매춘을 하는 직업을 가졌으며 반 고흐를 만난 당시 이미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반 고흐는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까지 책임지고 열심히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중산층 집안의 반 고흐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경제적으로도 동생 테오에게 의지하고 있었기에 재정적인 문제가 겹치며 둘은 1년여간 같이 지내다 헤어지게 된다. 반 고흐는 평생 평범한 가정생활을 꿈꿔왔다. 하지만 결국 이루지 못하였고, 그의 사랑도 인정받지 못했다. 첫사랑인 사촌 케이를 향한 사랑이 불꽃같은 사랑이었다면, 시엔과의 사랑은 현실적인 책임이 동반된 사랑이었다. 테오에게 쓴 위의 편지글에서 볼 수 있듯이 반 고흐는 시엔과 자신의 사랑은 진실한 사랑임을 거듭 이야기하고 설득한다.
반 고흐의 진심 어린 마음이 잘 녹아든 편지이다. 아래는 반 고흐가 사랑을 대하는 방식을 알 수 있는 편지의 한 구절이다.
사랑도 자연처럼 시들고 싹트는 일이 있겠지만, 어떤 것도 완전히 다 죽어 버리지는 않는다. 밀물과 썰물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바다는 여전히 바다로 남는 것과 같지. 그리고 여성을 향한 것이든 예술을 향한 것이든 사랑에는 고갈과 무기력의 순간이 있기 마련이지만 영원한 환멸은 없다. p.46
--------------------------

_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 (1882.07.21일 테오에게 )
나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 중략...) 인물화든 풍경화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인 우울이 아니라 진지한 고뇌다. p.88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짜에 무례한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갖지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인간. 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이 보잘것없는 괴짜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 주겠다. p.89
반 고흐는 향년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화가로서의 삶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불과 10여 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2100점이 넘는 미술 작품을 남겼다. 매일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부담을 주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하루빨리 작품으로 돈을 벌어 테오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고 행동으로 옮겼다. 편지에는 화가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당찬 포부와 마음가짐이 잘 드러난다. 그의 꿈이 죽기 전에 이루어졌다면, 반 고흐의 초상화에서 활짝 웃는 모습을 그린 자화상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

_ 가장 좋은 위안 (1889.4. 폴 시냐크에게 )
다시 한번, 나를 찾아와 주어서 정말 고마웠네, 내게 아주 큰 기쁨을 주었다네. p.69
아를이라는 남쪽 마을에 있을 때, 반 고흐는 고갱과의 다툼 이후 정신착란이 오고 자신의 귀를 자라버린다. 그 후 생레미의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다. 요양병원에 들어가기 전, 친구 폴 시냐크가 반 고흐를 찾아왔는데, 사람이 그리웠던 반 고흐에게는 큰 힘이 되는 방문이었다.
늘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고 싶어 했고, 삶의 많은 부분들에 있어서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온 화가는, 뜻하지 않게 찾아온 정신착란으로 인해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편지를 읽다 보면, 글에서 반듯함이 묻어난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시기에도 마음에는 차가움과 냉기보다 온기가 가득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동생에게 짐을 될 것을 걱정했다. 커져가는 외로운 마음과 불확실한 미래, 그리고 두렵게도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이상 증세에 괴로워했던 반 고흐.
반 고흐에 관한 책을 읽으면, 단순히 명작만을 감상하지 않는다. 현재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는 용기를 전해주고, 외로운 사람에게는 벗이 되어주어 그 외로움을 같이 느끼고 반으로 나누어 짊어지는 느낌이다.
이렇게 그의 편지를 통해 반 고흐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