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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지수 옮김 / 디플롯 / 2026년 7월
평점 :
[ 컬처블룸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성실히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 독자는 작가의 굵고 강인한 상상력의 팔에 덥석 붙들려 낯선 세계를 실컷 끌려다닐 것이다.
아득히 먼 미래를.
p.419 해설 중
책을 읽었다. 그리고 책을 덮지 못하고 다시 제일 앞 장으로 가서 다시 읽어나갔다.
다 읽었는데, 다시 펼치게 하는 책이었다.
위의 문장처럼 작가에게 실컷 끌려다니는 느낌도 들었다.
책을 다 읽고 컨디션이 좋지 못해, 리뷰를 곧바로 쓰지 못했다.
그런데 책의 이야기가 나를 따라다니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려졌던 이미지들이 잔상이 되어 계속 떠올랐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고, 아직도 책의 환상적인 이야기에 갇힌 기분이었다.
이 책은 도대체 뭐길래 나를 계속 따라다니는 걸까.

이 책에는 총 1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독립적인 이야기 같지만, 각 단편은 흐름을 가지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류가 멸망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다양한 등장인물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처음에는 얇은 옷을 걸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의 유래는 인간 유래이기도 하지만, 쥐 유래, 말 유래, 소 유래 등 다양하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나'가 또 다른 '나보다 훨씬 젊고 머리 긴 나'를 만난다. 그리고 '어머니'라는 존재들이 등장하는데, 친절하지만 감정의 동요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커다란 어머니'와의 사이에서는 사랑의 감정도 느끼게 된다. '관찰자'라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그들은 사람들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외에도 여러 다양한 인류가 등장하는데, 야곱과 이안이 등장하면서 소설에 대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이렇듯 기묘하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조용하고 고요하게 이어진다. 인류의 멸망은 다양한 종을 탄생시키고, 책을 읽어나갈수록 의문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은, [ 유랑 ]이었다. 자신이 보아왔던 인류와 전혀 다른 새 인류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생김새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며, 하는 행동들도 다르다. 이상한 기분과 위화감이 자꾸만 들고, 결국 관찰자인 '나'는 새 인류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보고 있는 생명체는 익숙하기에 당연한 듯 받아들이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생명체를 보면 반감이 들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상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은 종이 또 다른 종에게는 상당한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기도 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와 다른 인류를 받아들이기 힘들게 태어났으며, 그런 점은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올 것만 같았다.

소설은 인류의 멸망이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임을 전반적인 분위기로 표현한다. 인간이 사라지는 것보다 인간이 지니고 있었던 감정의 소멸이, 지구 전체를 외롭고 고독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사람만이 사랑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고,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고, 싸우기도 한다. 그런 감정들이 느슨해지고 희미해져 가기에 이야기가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아직은 인간이었음을 알기에 삭막한 마음을 뒤로하고 따스한 감정이 남아있기도 하다.
"너는 정말로 인간다운 인간이야. 넌 뭔가를 만들어내거든. 그리고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파괴하지."
p.317

인공지능에 대한 무서움도 이야기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위험성을 알고도 시행해온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 위협에서는 무엇보다도 인간성의 상실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인간의 감정은 희미해지고 옅어져가는데, 오고 가는 공허하고 기계적인 말들이 처량하게 들렸다.
당신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한마디로 말해 인공지능의 능력이 인간을 까마득히 뛰어넘어 그 결과 인공지능이 인간사회를 지배할 가능성이었습니다.
"인공지능은 제어할 수 있어."
이렇게 주장하는 당신들과,
"그건 불가능해. 폭주한 인공지능은 인간을 파멸시킬거야."
p.323

그리고 광활한 이야기 속에 한낱 작은 내가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절멸해가는 이야기 속에 살아남은 나는 여전히 방황하고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책이다. 작가의 넘쳐나는 상상력이 남다르고 독자를 다시 책 앞으로 끌어들이는 이야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마지막에는 반전도 숨어있다. 새로운 형식의 소설 세계에 발을 들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