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사건 중심이 아닌 인물 중심의 서사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이다. 47개의 짧지만 강렬한 내용의 에피소드를 읽고 나면 각 관련 신들과 인물들의 약전(略傳: 간략한 전기 )를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것 같다. 우리에게 익숙한 제우스의 정식 아내 '헤라'편에서는 제우스와 헤라의 이야기뿐 아니라, 헤라의 자식들 이야기, 헤라가 아낀 공작새, 관련된 일화와 그 속에 담긴 의미, 단어의 유래가 알차게 들어있다.
헤라의 신성한 새는 '공작'인데 공작 깃털의 무수한 눈 무늬는 원래 '아르고스 파놉테스'라는 이름의 거인의 것이었다고 한다. 100개의 눈이 있고 잘 때도 50개의 눈은 뜨고 있으며, 헤라의 감시병이었다. 제우스의 연인 '이오'를 감시했는데, 헤라의 기척을 느낀 제우스가 이오를 암소로 만들었고, 헤라는 그 암소를 달라고 한다. 헤라는 그 암소를 자신의 감시병에게 맡겼는데, 제우스가 헤르메스를 보내고 피리 소리와 긴 이야기를 들은 아르고스의 마지막눈이 감기는 순간 그를 죽인다. 헤라는 아르고스의 죽음을 슬퍼하며, 공작의 깃털에 100개의 눈을 박아 넣었다. 18세기 영국철학자가 설계한 원형 감옥의 이름 '파놉티콘'는 여기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로마인들은 헤라를 '유노(Juno)라 불렀는데, 영어 준(June)이 결혼과 가정의 여신 헤라에서 유래했으며, 6월은 결혼의 달이 되었다. '6월의 신부'라는 말은 여기서 온 것이다.
그 외 헤라와 제우스의 이야기는 워낙 유명해서 여기서는 생략하지만, 책에는 핵심적인 내용이 모두 담겨있다.

_ 신화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시시포스'는 원래 코린토스의 왕이었다. 당대 시인들은 그를 '가장 교활한 인간'이라 했고, 호메로스는 그를 '교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교활한 자'라고 묘사했다고 한다. 후대 작가들도 그를 사기꾼, 거짓말쟁이, 약속을 어기는 자로 그렸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당대 유대한 인물들이 '시시포스'에게 너무 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시시포스'는 평생 반복해서 큰돌을 언덕 위로 밀어올리는 떨어진 바위를 다시 올리는 행위를 죽을 때까지 반복해야 했다.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는 불행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신에게 반기를 드는 행위는 영리한 인간이 아니라 교활한 인간, 약속을 어긴 자로 평가된다는 것을. 인간이 신을 거역하는 일은 용납되지 못하는 것이 신화이다. 그것도 제우스를 속이고, 죽음의 신과 저승의 여왕까지 속였다.
이 책에서 또 좋았던 점은, '시시포스'하면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를 묻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부분에 대해 책에서는 논한다. 신화에 대한 이야기와 연결지어서 유명한 고전과 만나는 시간은 개인적으로 뜻깊었다. 부조리를 논하면서 시시포스의 반복된 행위에서도 그는 행복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의견에서 나의 개인적인 견해와 비교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부조리는 동의하지만, 시시포스가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돌을 밀어야 하는 곳이 평지는 아니지 않는가. 평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언덕 위로 올린 돌이 다시 떨어지고, 다시 올려야 했다. 차라리 인생은 고통이고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불교의 진리가 더 와닿았다.

_ 여러 가지 판본에 대해서도 설명도 들어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읽다 보면, 책마다 다른 설명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여러 가지 이야기의 다양한 판본에 대해서 기술해놓았다. 예를 들어 헤라의 아들인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의 탄생 유래는 제우스없이 혼자 낳았다는 판본과, 제우스의 자식이라 여기는 판본이 존재한다.
트로이의 전쟁이 일어나게 된 시초인, 신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여신 '에리스'의 출생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는 전쟁의 신 아레스의 누이이며 제우스와 헤라의 딸이다. 하지만 다른 판본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서는 닉스가 짝없이 혼자 낳은 딸로 등장한다고 한다.
이처럼 판본이 여러가지일 경우, 그 이야기가 다 적혀있어서 더 이해가 잘 되었고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처음 책을 받았을때, 책이 다소 조그마해 보였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이 작은 책에 정말이지 방대한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밑줄을 그었는데, 사실 모든 부분이 다 중요할 만큼, 군더더기가 없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중간중간 들어있는 삽화도 인상적이었다.
신들이 막장인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더 깊은 막장의 세계를 둘러본 기분이다. 애니메이션에는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빼곡히 숨어 있다. 신들을 더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여러 부분에서 가혹해 보이는 신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기에 책은 설득력도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재미와 지식을 한 번에 얻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내가 몰랐던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와 관련 언어의 유래는 상식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주제별로 골라 읽을 수 있는 점도 좋았고, 역시나 신화는 너무도 재미있어서 금방 읽게 된다.
책은 이 한 권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다음 권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지만, 더 낯선 인물, 더 먼 별, 더 오래된 이야기로 찾아온다고 하니 다음 책도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