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전하며 - 헤르만 헤세 x 빈센트 반 고흐 세계문화전집 1
헤르만 헤세.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홍선기 옮김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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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성실히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개인적으로 너무도 좋아하는 두 거장에 대해 다룬 책이다. 이 책을 얼마 전 일본여행가서 이동하는 시간에 틈틈이 읽었는데, 여행을 다녀와서 책을 읽을 생각을 하니 서평 마감일이 임박해서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렇게 되면 책을 읽는 의미가 퇴색될 것 같았다. 여러 서평 책 중에 고심해서 고른 이 책과 [ 미술관에서 길을 잃은 당신에게 ] 두 권의 책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 책을 읽으면서 여행 내내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충만한 기분이었다.


두 거장은 작가와 화가라는 전혀 다른 길을 가지만, 삶의 여러 부분이 닮아있다. 우선 아버지가 신학자였으며 두 사람 다 신학의 길을 걸을뻔했으나 실패하였다. 또한 둘 다 정신질환을 앓았고, 자살 시도도 하였다. 헤세는 15살에 극단적인 선택을, 반 고흐는 여러 정신이상으로 결국 37세에 스스로에게 총을 겨누어 힘겹게 세상을 등진다. 책은 이렇게 닮은 듯 다르고,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은 모티브 출판사에서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출간한 첫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시대와 분야의 벽을 넘어 서로의 작품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두 사람의 삶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어느 한쪽만으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_ 헤르만 헤세(1877.07.02 ~1962.08.09)

대한민국이 가장 사랑하는 고전문학 작가 / 독일 출생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 했던 대문호


_ 빈센트 반 고흐 (1853.03.30 ~1890.07.29)

살아서는 한 점의 그림만을 팔고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지만, 현재는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화가

자신을 구원하고자 글을 써야 했던 불멸의 화가


_헤르만 헤세의 안부

헤르만 헤세는 평생 4만 4천 통의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수만 통의 편지를 쓰며 안부를 전한다. 낯선 독자에게도 수채화 엽서를 그려 보내기도 한다. 그에게 오는 독자들의 편지는 헤르만 헤세가 쓴 글의 가치를 증명해준다. 당신의 글이 나를 살렸다는 편지, 싯다르타를 읽고 다시 살기로 했다는 편지 등. 헤르만 헤세는 정성스런 답장으로 안부를 전하며 자신의 글과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를 모르는 이 작가가,

어떻게 이토록 나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는가? p.9



헤르만 헤세는 또 다른 이에게 안부를 전한다. 이혼한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아들 마르틴 헤세에게 쓴 편지들이다. 헤세가 직접 그린 그림들과 사랑과 염려와 자식의 시선으로 적어내려간 그리움이 묻어나는 안부들로 가득하다.


헤세와 아들 마르틴이 43년간 주고받은 편지는 약 1,500통, 반 고흐와 동생 테오가 10년간 주고받은 편지와 거의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은 양이라고 한다.


_ 빈센트 반 고흐의 안부

반 고흐의 편지는 주로 동생 테오에게 향한다. 그 편지는 생활비와 미술재료를 사야 하니 돈을 보내달라는 내용과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지만 희망을 담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반 고흐는 이런 편지를 쓰면서 안부를 전한다. 그 마음이 얼마나 외롭고 적기 힘들고 보내기 힘든 편지였을지 생각하면 반 고흐가 보내는 안부가 헤르만 헤세와는 다른 안부였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가 깊게 와닿았다. 편지를 읽고 마침표에서 나의 마음도 같이 멈춰 서서, 일본 전철에서 내릴 역을 놓칠 뻔하기도 했다. 반 고흐는 작가도 아닌데 나는 늘 그의 글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한 여자를 만났어. 프랑스인들이 말하는 우브리에르, 일하는 여자. 많은 고생을 한 게 보였어.

삶이 그녀 위로 지나간 것이. p.221


내가 못생기고, 늙고, 못되고, 아프고, 가난해질수록,

나는 더욱 눈부시고 잘 배열되고 찬란한 색채를 만들어서 복수하고 싶어. p.260


하지만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게 될 날이 올 거야.

이 그림들이 물감값보다, 그리고 우리가 쏟아부은 이 초라한 삶의 가치보다 훨씬 더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p.311


이 책에는 헤르만 헤세의 처음보는 작품 [헤르만 라우셔 ] 가 소개되고 있다. 헤르만 라우셔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헤르만 헤세 본인의 경험과 생각이 수줍게 담긴 책인데 시도 같이 들어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군터 뵈머의 일러스트가 삽입되어 있는데, 고전적인 그림에서 오는 분위기가 책을 한 층 더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눈은 낯선 달이

은빛 배를 타고 확실한 길을 가는 것을 바라보며

달처럼 외로움에 익숙해져 있다.

p.169 < 헤르만 라우셔 중 >



헤르만 헤세의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에는 반고흐에 대한 이름은 한 번도 거론된 적은 없지만 이 소설은 반 고흐의 삶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헤르만 헤세는 소설 속 주인공 클링조어의 삶 위에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겹쳐 놓은 뒤,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지나친 인류애 때문에 고독해졌고,

지나친 이성 때문에 미쳐버린 사람. p.195'


헤세는 끝내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름을 부르지 않고 건네는 안부가 있습니다. p.194


우리는 어떤 식으로 안부를 전하는가.

나는 이 책을 덮고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반 고흐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안부를 전하는가, 아니면 헤르만 헤세처럼 꾸준히 이어올 수 있는 소통의 안부를 전하는가.


빈센트의 편지에는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자기 파괴적인 에너지가 들끓습니다. 그것은 불꽃의 편지였습니다. 헤세의 편지는 다릅니다. 특히 마르틴에게 보낸 편지는, 불꽃이 아니라 촛불입니다.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켜주는 것입니다. p.335


빈센트 반 고흐에게 안부는 '빚' 이 되었습니다. 갚을 수 없는 빚. 사랑이 죄책감으로 변하고, 죄책감이 절망으로 변하고 절망이 밀밭에서의 총성으로 변했습니다.

헤르만 헤세에게 안부는 '숨' 이 되었습니다. 들이쉬고 내쉬는 것. 보내고 받는 것. 그 호흡이 62년 동안 멈추지 않았기에. p.336


이 책을 읽고 반성도 하게 되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안부는 상대에게 어떻게 전해지는지 다시 한번 고심해 봐야 할 것 같다.


이 책이 가치 있는 이유는, 몰랐고 알 수 없는 시대에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고전적인 내용이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주고 있는 점이다. 지금보다 더 중요하고 간절했게 오고 갔던 편지들에서 세심하고 다정하게 또 더욱 정성스럽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들의 편지를 읽고 있으면 마치 나에게 인생의 힘든 시절과 행복했던 시절이 언제인지 묻는 것처럼 들려서 마음이 뭉클해져온다.


여행 내내 이 책을 읽으면서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을 여행과 함께하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라 추천한다. 내용이 서정적인 면이 있어서 잔잔하면서 목가적인 느낌도 들었다. 책의 내용에서도 활자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반 고흐의 그림과 헤세의 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으며, 헤세의 시도 같이 들어가 있어서 깊은 울림이 있었다. 무엇보다 한 권의 책으로 내가 좋아하는 두 거장을 동시에 만날 수 있어서, 나에게 행운처럼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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