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틈새 사계절 1318 문고 152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계절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된 글입니다 ]


단옥, 타마코, 올가

한 여성의 이름은 일평생, 이처럼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리웠다.


이금이 작가님의 일제강점기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세 번째 이야기는 '사할린'을 배경으로 한다.

첫 번째 이야기(2016년) :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두 번째 이야기(2020) : 알로하, 나의 엄마들

세 번째 이야기(2025) : 슬픔의 틈새


세 권의 시대적 순서는,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 일제강점기 초반,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가 그다음이고, 마지막으로 <슬픔의 틈새>가 일제강점기 후반부터를 배경으로 한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하와이 강제 이주와 남편 될 사람 사진만 보고 시집간 세 명의 여성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고,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여성의 이야기이다.


화태는 아버지가 계신 곳, 밥 세 끼를 다 먹을 수 있는 곳, 마음껏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가면 그 커다랗고 신비한 물고기가 자신을 등에 태워 더 넓고 멋진 세상으로 데려다줄 것만 같았다. p.17



이 책 세 번째 이야기인 <슬픔의 틈새>는 '화태'라는 곳으로 배를 타고 떠나는 여정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화태'는 아버지가 계신 '사할린'을 말한다. 소설은 사할린을 일본이 점령하고 있을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주인공의 아버지도 일본인의 관리 아래 탄광에서 일을 하고 있다.


엄마 덕춘, 장남 성복, 주인공 단옥, 그리고 22개월 아기인 영복까지 네 사람은 아버지가 계시는 곳으로 가는 긴 여정을 함께 한다. 그런데 가는 도중 장남 성복이 일본 본토에서 돈을 벌겠다며 종이쪽지만 남기고 사라진다. 만남에 대한 기약도 없이 그렇게 장남은 소설 속에서 사라지며, 나를 끝까지 애태우고 궁금하게 만든다.


살아는 있을까?

그러나 이런 나의 걱정은 앞으로 책을 읽어나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생사가 궁금해진다.

시대의 불운 앞에서 엇갈림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한다.


그 액자를 볼 때마다 단옥은 사진 찍던 날의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렸고,

덕춘은 사진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p.70


사할린에 도착한 가족들은 자상한 아버지 만석을 만나고 일 년 정도의 짧고 행복한 시간을 이어간다. 그사이 여동생 해옥이 태어난다.


아버지 만석이 친형제를 맺고 잘 지내는 이웃 아저씨 정만과 그의 아내 치요와도 서로 도우며 잘 지낸다. 치요는 일본 사람으로 전남편사이에 낳은 딸 유키에가 있다. 그리고 치요도 아들 용재를 낳는다.


이렇게 평화롭던 이들의 생활에 어느 날 그림자가 드리운다. 탄광 사고로 아저씨 정만이 다리를 다치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탄광 노무자들에게 느닷없이 전환배치명령이 내려진다. 아버지 정만은 일본 본토의 탄광으로 가야하는데, 한국인 가족은 같이 갈 수 없다. 결국 아버지만 떠나게 되고 남겨진 가족들은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막내아들 광복이 1945년 광복을 맞으면서 아버지 없이 태어난다.


9월 2일 일본이 항복문서에 조인함으로써 전쟁이 끝이 난다. 소련은 사할린을 완전히 점령하고, 일본군은 사할린을 떠나면서 귀환선을 보내는데, 일본인만 탑승할 수 있고, 가족이라도 한국인은 승선이 금지된다.


이제는 소련의 눈치를 봐야 한다. 소련군을 피해 피난 행렬이 줄을 이었다.

일본의 귀환선은 몇 번 더 오지만, 여전히 한국인은 탑승할 수 없었다.


일본인과 가족을 맺은 한국인들은 버림받거나, 희망을 잃어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본인이지만 치요처럼 한국 가족들과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버지와도 한국과의 소식도 끊긴 고립무원의 사람들은 이 추운 사할린에서 살아가야한다.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의형제를 맺은 정만 아저씨네와 원가족보다도 더 서로를 아끼고 위로하며 살아간다. 소설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놓치지 않고 소중히 그려낸다.


단옥은 가끔 자기 이름의 변천사를 생각해 보곤 했다.

주단옥에서 야케모토 타마코, 다시 주단옥, 그리고 올가 송.....

이름이 바뀔 때마다 한동안 헷갈렸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혼란스러웠다. 다른 한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바뀐 이름들만큼이나 굴곡진 인생이었다.

단옥은 그 길 끝에 다다른 현재의 삶에 만족했다. p.329


"앞으로 여기서 살려면 소련말을 배워야 할 거야.

그렇더라도 언젠가는 한국으로 가는 길이 열릴 테니 우리 말과 글을 잊지 말아라. " p.187

단옥과 유키에네 가족에는 북한, 소련, 무국적이 다 섞이게 됐다. 사할린에는 부부, 부모, 형제간에도 국적이 다른 경우가 흔했으며 북한 국적은 6개월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했다. p.261



이제 소련말도 배워야 한다. 사람들은 이름도 바꾸기 시작한다.

한국 이름에서 일본 이름으로 불리다가, 다시 소련 이름으로 불린다.

한국전쟁으로 남과 북이 나뉘고 국적을 소련으로 할 것인지, 북한으로 할 것인지, 무국적자로 남을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 이런 큰 결정은 자신의 기약없는 미래를 담보로 한다.

사할린에 간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무국적자로 남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북한 국적을 취득한 사람들 중에는 아직까지 소식도 모르고 헤어진 사람도 있고, 소련 국적을 우선 취득해서 소련에 정착한 사람도 있다.


주인공 단옥은, 사할린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생사도 모르는 아버지와 오빠, 동생에 대한 아픔을 껴안고 씩씩하게 살아간다. 그들의 아이들이 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사할린에서의 동포들의 이야기는 소설이 끝이 나도 지금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제목에서 말하듯이 이 책은 슬픔의 틈새에서 행복을 찾으려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슬픔에만 갇혀있지 않고, 살아가고 살아내고 그 안에서 작은 행복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 평범한 행복을 찾던 등장인물들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지만 그 행복을 지키고 벼텨냈다.

좋은 문장들


제가 아버지한테 받은 사랑은 순희님 대신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미안합니다. p.417


자신이라면 무너져 내렸을 것 같은 일들을 담담하게 견디는 유키에한테 그저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단옥은 유키에를 존중하며 스스로 말해 주길 기다리고 싶었다. (... 중략...)

아이를 낳고 한 달 만에 유키에는 다시 공장엘 나갔다. 사람들의 시선과 쑥덕거림을 꿋꿋이 견뎠다. p.217


둘 다 참 많은 일을 겪었다. 각자에게 일어난 일도 함께 겪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고생스러웠던 기억보다 치요가 꽂아 놓았던 들꽃, 부엌의 지저분한 창틀을 덮었던 수놓은 작은 보, 덕춘에게 내주던 차의 향기 같은 것들이 마음에 남았다. 전부, 먹고 살기 바쁜데 쓸데없는 짓 한다고 못마땅해하던 일들이었다. 덕춘은 삼베처럼 거칠고 소나무 등걸처럼 갈라진 자신의 삶을 어루만져 준 건 바로 그런 것들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제 누구에게서 그런 위로를 받을까. p.246



작가님은 사할린에 직접 찾아가서 매서운 바람과 눈, 그리고 주름 깊은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고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단옥'이라 짓고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작가님은 방대한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이 소설을 쓰셨는데, 그래서 이 소설이 더 깊게 와닿았다.


한국 내부에서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힘든 삶을 살고 있을 때, 사할린에서도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아픔을 겪고 있었다.


여러 번의 이름 개명과 국적을 선택함에 있어서의 무게는 이들에게 소속감을 주지 못하고 언제나 혼란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할린 이주 동포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의 지난 아픔이나마 함께하고 싶어서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았다. 영주귀국을 하신 분들의 영상을 보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백발이 다 돼서 돌아온 한국에서 적응을 못하시거나 기력이 쇠하신 분들 18명이 고국에 온 지 2년 만에 돌아가셨다.


그토록 오고 싶어 하신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의 일이라 더욱 마음이 아팠다. 조금 더 늦었다면 고국에 오고 싶다는 소망도 이루지 못하셨을 것 같지만, 어느 쪽으로든 안타까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이분들에게 헤어짐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헤어져도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나와는 달리, 그들에게 헤어짐은 다시는 볼 수 없는 헤어짐이겠지.


그저 살아내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그들의 삶은 때론 처절하고 안타깝고 슬펐다.


귀환선에 탑승하지 못해 절망과 좌절 속에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을 읽는 대목에서는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 혼자 사는 사람들의 삶은 더욱 비참했다고 한다.


가족들과 같이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서로 의지하며 이겨냈지만, 혼자인 사람들은 외로움마저 떠안아야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별에 이별이 더해지고, 슬픔에 슬픔이 덧입혀지는 무수한 세월을 이겨낸 사할린 동포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되었다.



@sakyejul /사계절출판사 인스타그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