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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의 의미 동문선 현대신서 16
존 버거 지음, 박범수 옮김 / 동문선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존 버거의 글은 미술, 문학, 인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대한 섬세한 직관과 깊이 있는 해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선 주목을 요한다. 그의 사상의 기반은 기실 삶에 대한 존중이나 거부를 미룬 자리에서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는데, 거기엔 글쓰기가 가진 권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과 작품 그 자체에 몰두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본다는 것의 의미>는 사진과 그림을 매개로 '보는 것'을 말하고 있는 책이다. 미술이나 사진의 차원에서 논의를 하지 않고 '보는 것'의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장르적 특성에 얽매이거나 하지 않고 다양한 관점과 의미들이 풍부히 다뤄지고 있다.

이 책의 1부인 '왜 동물들을 구경하는가?'는 한 편의 글(1부 제목과 같은)만으로 이뤄져 있는데, 책의 서두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의 핵심인 '보는 것'이 띠고 있는 다양한 의미의 시원(始原)을 암시하고 있다. 동물원에서 동물을 구경하게 된 역사적 배경, 의미 등을 짚으면서 그는 '보는 것'이 '격리' '거리두기' 등의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을 밝혀내고 있다(덧붙여 그는 강제적으로 주류 밖으로 밀려나간 '빈민가' '판자촌' '정신병원' 들의 장소도 동물원과 닮았다고 말한다. 마치 푸코의 시각을 연상시키는 부분인데, 푸코가 인간의 이성이 가진 횡포에 대한 고고학적 탐색과 야유를 보여주었다면, 존 버거는 철저히 '보는 것'의 대상으로서 동물을 한정하고 있다).

2부에서는 '체험된 순간'을 기록하는 것으로 카메라의 의미를 파악하는 한편, 시골 농부들의 정장 차림에 숨어 있는 사회적·기호적 의미를 드러내는가 하면, 전쟁 사진을 거부하는 일반인의 태도를 문제삼는 등 흥미로운 글쓰기를 이어간다. 책의 본령인 3부에서는 쿠르베, 터너, 마그리트, 로댕 등의 작품세계를 살피면서 각 화가의 개성적인 면모를 다양한 주제로 변주하며 설득력 있게 해석해내고 있다.

책의 마지막 장에 은유적으로 담겨 있는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해야 할 듯하다.

들판의 존재는 그 사건들이 결과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방식으로 발생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건들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방식에 대한 전제 조건인 것이다. 모든 사건들은, 그것들이 다른 사건들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관계 덕분에 정의될 수 있는 사건들로 존재한다. -284∼85쪽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존 버거가 '보는 이'와 대상과의 교감을 말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곧 다른 생각을 만나게 되었다. 의미는 '거기' '그대로' 있을 뿐이다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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