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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와 지구별 어른
안명진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6년 11월
평점 :
생각하는 어른이 되게 하는 책.
생각해야 하는 어린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책.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그리하여, 서른여덟의 내가 읽기에 퍽 유익했던 책.
안명진 작가.
다독가도 아닌 내가 알 리가 없는 작가였고,
솔직히 처음 몇 줄을 읽으면서는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글을 왜 썼을까?' 싶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이 글은 쓰여져야 했던 글이구나.
나도 읽고, 너도 읽고, 그도 읽어야 하는 글이구나.
너무나 어른 같아서, 그러나 어린이가 되어야만 하는 우리 어른이 꼭 읽어야 할 글이구나.
'지구별 어른'
정말 딱 그렇구나. 여기까지가 겨우 36쪽까지 읽고 느낀 점이다.
1장. 지구별 어른과 어린왕자의 동행
p.22-23
수많은 지식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런 지식을 많이 가진 어른은 행복할까? 우리가 더욱 더 근원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없는 것일까?
어른은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묻지도 않고 답을 구하지도 않는다.
자신들의 세계에 의문을 갖지 않기 때문에 '왜'라고 묻지 않는다. 다만 배워서 알고 있는 것을 '외워서 대답'하는 데 익숙하다. 대답을 잘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유식함으 ㅣ증거이다. 어른은 대답할 뿐 질문하지 않는다.
p.29-30
물질만이 풍요로운 어른의 세계에 정신의 가난함을 일깨우는 목자가 필요하다. 여기에 사막에서 홀연히 나타난 목자가 어린왕자(아이)이다.
따라서 아이는 어른의 과거 모습이기도 하며 어른 그 자신이기도 하다. 아니 그 아이는 어른 본래 모습이었을 것이다.
p.33-34
파국을 향해 가는 어른의 세계는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와 조종사의 처지와 같다.
결국 비행기의 모터 고장은 바로 어른 세계의 위기와 그 위기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의미한다. 그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불행이 아닌 우리 시대의 불행이며, 어른의 세계에 대한 경고음이다. 경고음은 계속 무시했을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될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느 ㄴ소리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조치, 즉 어떤 결단을 요구하는 소리이다. 하지만 많은 어른은 그 경고음을 무시하거나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아직도 희망은 있는 것일까?
더욱이 이러한 경고음은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소리는 위기를 자각하는 자, 물음을 던지는 자에게만 들린다. 모든 사람이 사막으로 나간다고 해서 그 사막의 가치를 아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의 세계와 삶에 대하여 목말라하고 갈증을 느낀다면 우리는 사막에서 그 목마름을 해결해 줄 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p.36
이제 사막의 내면을 여행하여 보자! 사막은 도시와는 달리 대단히 메마르며 고요한 곳이다. 더는 어른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도시(마을)의 재미와 즐거움을 찾을 수 없는 곳이다. 사막은 도시와 공간적으로 단절된 곳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욕구와 삶을 되물어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막은 우리의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한다.
2장. 어린왕자의 별
p.38-39
어린왕자는 지구별 조종사(어른)의 가치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비행기를 보았을 때 '이 물건은 뭐예요?'라고 묻는다. 어린왕자(아이)는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그 대상이 가지는 가치를 모른다. 아마도 그의 세계에서는 모든 가치가 동등할지도 모른다.
비행기는 기술 시대의 상징이다. 어른의 세계에서 비행기는 자랑스러운 과학 기술의 결정체이다.
어른(조종사)은 자신이 비행기를 가지고 있고, 비행기로 대륙을 이동한다는 사실을 아이(어린왕자)에게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p.40
비행기는 순간적인 공간 이동의 마술을 부리지만, 그 사이 우리의 경험과 시간은 멈춘다. 비행기는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할 때와는 달리, 이동하는 시간 사이의 모든 경험 가능성을 앗아간다. 어른은 비행기가 은폐한 침묵의 세계를 보지 못한다. 그리고 그 은폐된 세계가 얼마나 소중할지 생각하지 않는다.
각각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어른은 감각의 눈이 은폐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고 즐기며, 그것을 가지려고 많은 시간을 보낸다. 다른 별에서 온 어린왕자의 눈에는 이것이 어리석어 보였을 것이다. 그에게는 감각을 넘어선 마음의 눈에 보이는 상자 안의 양이 더욱 소중할 따름이다.
p.41-44
오늘날 기술은 적극적으로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과정에 개입하는 힘이다. 기술은 인위적인 문명의 상징이며, 그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 자연을 개조하는 힘이다. 자연은 이제 기술이 지닌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단순한 재료로 전락한다. 땅, 동물, 식물은 모두 기술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자연은 이제 놀라움, 경외의 대상도 아니며, 어머니의 품과 같은 존재도 아니다. 인간이 활용하고 사용하기 위한 사물의 단순 집합이다.
기술이 삶과 사회를 지배한다. 인간은 더 이상 기술의 주인이 아니다. 기술의 주인은 기술 그 자신이며, 기술이 인간의 주인이다.
이것이 곧 풍요로운 기술 시대의 가난함이 아닐까!
그들은 기술 문명의 발명품이 제공하는 재미와 즐거움에 '중독되어' 인생의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우리는 어린왕자의 눈을 통해 이 시대의 가난함을 엿볼 수 있다.
어린왕자를 떠올리면, 여우를 기다리는 내용밖에 생각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내용에 이렇게 심오함이 담겨 있었던가?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속 마음으로는, 몇 쪽만 읽고 덮을 요량이었는데
읽는 내내 부끄러움과 놀라움이 교차하며 끝페이지까지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해가 지는 것을 본 적이 언제던가, 생각하고 보니
역시 나는 도시 생활자였고, 소유에 눈이 멀어
내가 이미 가진 것에 대한 가치는 알지 못한 채 살아 왔다.
'뒤로 몇 발짝 물리기만 하면' 해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뒤로 몇 걸음을 물리지를 못해, 지난 십수년간 해 지는 것 한 번 보지 못할 만큼
내 마음밭이 척박했었던가 싶어 슬픈 감정이 휘몰아쳤다.
어린왕자의 별은 매우 작고 보잘것없지만,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린왕자는 자기 별의 주인이다."
어린왕자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 책이 이렇게 깊은 내용이었던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
그것은,
내 마음이 이렇게까지 척박했었던가, 에 대한 질문이라는 것을 안다.
이 지경까지 이를 동안,
'해 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슬프다.
해 지는 것을 보고 나면, 그 슬픔이 조금은 가셔 있기를.
각각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어른은 감각의 눈이 은폐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고 즐기며, 그것을 가지려고 많은 시간을 보낸다. 다른 별에서 온 어린왕자의 눈에는 이것이 어리석어 보였을 것이다. 그에게는 감각을 넘어선 마음의 눈에 보이는 상자 안의 양이 더욱 소중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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