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학교에 갑니다 - 공립학교 교사와 대안학교 교사가 일 년간 함께 나눈 우리 교육 이야기 함께교육 4
심은보.여희영 지음 / 서유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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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택에 있는 혁신(초등)학교 교사 심슨(심은보)과 서울 마포구에 있는 대안학교 교사 에리카(여희영)가 한해 주고받은 열세 통의 편지를 모은 책. 지근거리의 이야기들이라 얼른 읽고 싶은 마음과 낯부끄러운 민낯을, 정리되고 포장된 낯간지러운 자화자찬을 마주하면 어떡하나 망설임이 교차했던 책.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이 오직 편지에 담긴 말로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씩 친해져가는 모습이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남녀가 1박2일 동안 꽉 찬 대화를 나누던 《비포 선라이즈》와 비슷하다 생각했던 책. 무엇보다 마음에 대한 책.


“아이들은 언제나 온몸으로 성장하고 있어요. 싸워도 봐야 하고, 다쳐도 봐야 하고, 때론 위험과 불편함에도 직면해 봐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p.38)”라는 심슨의 말에서 나는 우습게도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떠올렸다. 베스트셀러였으나 순식간에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책. 나 역시 분노가 섞인 이죽거림으로 대했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떠올린 건 얼마 전에 우리나라가 ‘청년’을 40세까지 포함하려 한다는 얘길 들은 탓이기도 하고, 싸워도 보고 다쳐도 보고 위험과 불편함에 직면해 봐야 하는 게 비단 아이들뿐일까 싶어서다.


아이를 낳는다고 곧바로 부모가 되는 게 아니라 나의 유전자를 일부 갖고 태어난 타자(他者)와 함께 잘 지내는 방법을 공부하고 몸에 익히면서 부모가 되어가는 것처럼, 교사도 사람과 배움과 삶에 대한 끊임없는, 치열한 고민을 통해 만들어진다. 에리카는 “그때의 실수들, 그때의 시간들, 서툰 나의 세월들이 오늘 도은이가 찰흙을 문지르고 밟고 손바닥으로 흙도장을 찍는 순간을 애정의 눈으로 보는 마음을 키워 준 것(p.145, 에리카)”이라고 고백하고, 심슨은 “선생이랍시고 온갖 당위를 끌어와 앞 뒤 없이 ‘옮음’에만 목을 매고 있진 않은지” 고민한다.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시가 흐르는 밤 행사를 치른 후 “2학년들 왜 이렇게 대단해요?”라는 피드백을 받은 에리카의 고백이었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한 것도 아닌데 이 허전한 기분은 뭐지? 아무도 내가 물심양면 도운 줄 모를 텐데 나 혹시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걸 했나? 이 당황스러운 기분은 뭘까? 잠시 휘청했어요(p.194).” 에리카도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게 놀라웠고, 이런 감정들을 휘발되는 말이 아닌 종이에 찍힌 활자로 남기는 그 용기에 더욱 놀랐다.


교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끌어 주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기다리고 발견하는 교사가 진짜 교사(p.174)”라는 정의나 “포장지는 거칠어도 그 속에 담긴 마음을” 발견하고, 도와주고, 살피는 태도, “아이들의 행동을 긍정하고, 그 의지를 수용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돕는 것,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에리카의 이야기는 언뜻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조금은 부담스럽고 무겁게 느낄 수 있지만 그렇게 하고 있어도 으쓱할 일도, 칭찬받을 일도 아닌, ‘마땅히’ 갖춰야 하는 것들 아닐까.

전송중...

출처 : 언스플래쉬

새로 오신 선생님들로부터 끊임없이 질문들이 나오고 “그 와중에 우리가 가꿔 왔던 이야기들이 도전받는 듯 느껴질 때가 있(p.158)”다는 심슨의 고백은 현재 나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었다. 새롭게 합류한 사람들은 으레 기존의 것들에 의문을 던지고, 나도 그러한 질문들에 언짢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우리가 해왔던 것들을 돌아보고, 출발점과 지향을 다시 확인하고, 관습적으로 해오던 것들을 점검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름대로 깊이 고민하고 열심히 귀를 기울일 수 있어서 가능했던 경험이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그런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이것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싶지 않은데 왜 하고 있어야 하냐고 묻는다. “교사가 너무 힘을 주고 서 있으면 교사라는 자리와 그 자리에서 하게 되는 생각에만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아이들의 생각과 이야기는 놓치기 마련이니까요(p.212)”라는 심슨의 말처럼 우린 우리가 옳다고 믿으며 우리의 자리에만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우린 충분히 귀 기울여 듣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을까.

베테랑이라고 불려도 손색없을 이들 역시 오늘도 여전히 돌아보고,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들에서 괜한 위로를 챙기기도 하고, 반짝이는 배움의 순간들에서 깨달은 것도 적지 않았지만, “형님”이라는 호칭은 내내 불편했다. 얼마 전부터 중등은 오빠, 언니, 선배, 누나와 같은 호칭이 성(性)을 구분 짓고 위계를 만든다며 각자 별명을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내게도, 학교로서도 큰 배움이자 인상적인 전환이었다. 3년 전에 쓴 원고라지만 올해 7월에 출간했으니 그 전에 수정할 순 없었을까.

전송중...

출처 : 언스플래쉬

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 존 듀이에게 학교는 삶터여야 했다. 심슨 역시 “삶”이란 단어를 자꾸 가져온다. 그는 외발자전거를 익히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학교는 잘 모르고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 누구나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하는 곳이라는 보여 주고 싶(p32)”다고 고백한다. 교실은 “기꺼이 시도하고 기꺼이 망해도 좋은 곳(p.88)”,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서서 제 이야기들을 마음껏 나누며 깨치고 배워야 하는 곳(p.90)이어야 한다. 곱씹을수록 타당하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삶 들의 주인공이지 않은가. 삶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사는 곳이 학교라면.

때문에 공부는 우리의 삶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세상 모든 일에 나의 책임과 역할이 있다는 뜻이면서 수없이 많은 작은 사람들의 일상 덕분에 세계가 유지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생태를 공부한다는 건 주변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장애가 있으니 도와주어야 해’라는 관점이 아니라 서로 배우는 순간을, 그리하여 함께 지내는 것이 얼마나 서로의 성장에 필요한 것인가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알아주는 것(p.172, 에리카)”이라는 발견은 필연적이다.

금방 바뀌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찬찬히 그렇게 가도록 살펴야지요(p.81, 에리카)

출처 입력


"끌어 주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기다리고 발견하는 교사가 진짜 교사(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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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안도 다다오 지음, 이규원 옮김, 김광현 감수 / 안그라픽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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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골든벨>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하차한 후의 인터뷰였다. 촛불집회인지 100분 토론인진 모르겠지만, 그의 소신을 드러내는 자리에 섭외를 받았을 때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등 여러 선배들에게서 전화가 왔단다. 김제동은 인터뷰 자리에서 각 선배들의 특징을 모사하며 그들이 했던 얘기를 들려주었는데, 그 스타일은 달라도 하는 말은 같았단다. “나가면 위험해. 나가지 마” 그러나 김제동은 그 자리에 나갔고, 이후 줄줄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당했다.’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등 소위 잘 나가는 선배들이 잘 나가는 김제동을 걱정했던 것에는 ‘하차’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광고주의, PD의, 방송국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존재니까. 저들은 ‘갑’이고 그들은 ‘을’이니까.


그런데 사실 우린 모두 을이다. 얼마 전 야구 특집으로 방송된 <짝>에 출연한 한 남자는 “우리가 회사를 선택하는 게 아니잖아요. 회사가 우릴 선택해준 거지.”라는 말로 ‘을’로서의 자격지심을 드러냈다. 을은 갑이 만들어 놓은 질서 안에서 움직여야 하고 갑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중앙일보 기자들의 “사장님, 힘내세요!”나 용산참사로 이어진 김석기의 과잉충성은 우스꽝스럽거나 그로테스크한 측면은 있으나 본질적으론 대한민국 사회 우리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을’이란 측면에선.


그런데 “나에게 설계를 맡긴 이상 당신도 완강하게 살아내겠다는 각오를 해 주기 바란다.(p.95)"라는 건축가라니. 소극적으로 볼 때 건축가 역시 건축주가 의뢰하고 돈을 주면 건축주의 욕구에 맞춰 건물을 지어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갑과 을이 아닌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는 파트너로서 건축주와 관계를 맺고자 한다. 어떤 공평함. 이는 비단 사람 간의 관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안도 다다오는 첫 작품(?)인 ‘고시노주택’을 설계하면서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생활. 냉혹함과 따뜻함을 두루 가진 자연의 변화를 최대한 획득”하는 것으로 기본 원칙으로 세웠다. ”더울 땐 옷을 하나 더 벗고 추울 땐 옷을 하나 더 입는“ 집. 또한 그는 업무마다 전반을 책임지는 담당자를 한 명씩 두고 1:1로 소장과 담당자가 만난다. 업무가 5개면 5명의 담당자를 둔다. 안도 다다오 식의 공평함. 안도 다다오의 엄격함.


건축가와 건축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엄연히 설계를 하는 건축가와 실제 공사를 하는 시공사는 따로 존재하니까. 그러나 건축 역시 창조라는 측면에서 설계한 사람의 철학이 담기는 매체다. 4대강 곳곳에 만들어진 보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 있을까?


안도 다다오는 오랫동안 ‘기인(奇人)’으로 불리었다. 고등학교 때 권투를 하고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했다는 이력, 노출 콘크리트를 전면에 내세우는 독특한 건축 방식 등도 그를 기인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겠으나, 그가 기인을 넘어 한 사람의 ‘건축가’가 될 수 있었던 것에는 결국 그의 철학을 유지하고 밀고 나갔다는 점이 크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그에게 들어오는 일거리가 많아졌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한 것은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라는 디자인이며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밝고 즐겁고 편리한 현대식 주택.”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일을 가려 받기 시작했다. “양자 사이의 어긋남을 메워 나가려면 어느 부분에서는 내 생각을 억제해야 하고, 그렇게 영합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본질을 잃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스미요시 나가야 역시 마찬가지. 스미요시 나가야는 외부를 향해 전혀 창문을 내지 않는 무뚝뚝한 콘크리트 벽으로 만들었다. 이는 80년대 당시 고도경제성장이란 이름 아래 “스프롤 현상을 보이는 도시에 맞서 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자 하는 개인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인상적인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건축가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규정하는 대표적인 말은 “사회비평으로서의 건축”일 듯. 안도 다다오는 건축을 물건을 짓고, 올리는 문제가 아니라 “도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도시는 어떤 모습을 띄어야 하나? 사람들은 그 공간(혹은 건물)에 어떤 욕구를 갖고 있는가?”라는 차원의 문제로 규정한다. 그래서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에는 ‘완성’이 없다. 그가 생각하기에 건축은 사용자와 건축가 사이의 대화, 소통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이루어져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소통이 계속되고 그것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안도 다다오의 건축에는 ‘끝’이 없다.


성미산학교의 장기 프로젝트인 ‘전환학교/ 마을 만들기’의 키워드 중 ‘건축’이 있다. 안도 다다오의 오모테산도힐즈 프로젝트는 성미산마을의 ‘전환’에도 매우 좋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오모테산도힐즈는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했지만 건물 자체의 노후화로 인해 재건축이 결정된다. 하지만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닥치게 되는데, 안도 다다오는 4년간의 협의기간을 거치면서 오모테산도힐즈의 역사와 문화 아울러 메이지진구 숲까지 이어지는 생태축으로서의 가치까지 보전함을 내세워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대표적인 것이 가로수로 심어진 느티나무보다 낮게 건물 높이를 설정한 것.


성미산마을은 주민들이 성미산을 지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곳이다. 건축이 ‘생태축’, ‘도시’, ‘마을’을 고민하는 도구라면 전환으로서의 건축이 성미산마을의 미래 모습을 그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성미산까지 이어지는 ‘녹지축’을 마을 곳곳에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것이다. 나무를 심어도 좋고 직접 먹을거리를 기르는 ‘농사’를 통해 녹지(축)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선입견과 달리 안도 다다오가 권투에 몰입한 시간은 길지 않다. 그러나 권투가 안도 다다오의 인생관, 건축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두 사람이 맨몸만 갖고 1:1로 맞부닥쳐야 하는 스포츠. 그런 점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어느 스포츠보다 공평하고, 종이 울리거나 포기하기 전까지 링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엄격한 그것.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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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미늄의 역사 - 현대의 모순을 비추는 거울 역사를 바꾼 물질 이야기 1
루이트가르트 마샬 지음, 최성욱 옮김 / 자연과생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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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번 여행은 <노 임팩트 맨>이나 <재앙을 위한 레시피>처럼 지구온난화에 여행을 최대한 미치지 않는 방식으로 가기로 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 쓰레기 만들지 않기, 물 아껴 쓰기 등등. 그런데 논란. 비닐은 어떻게 할 것인가? 플라스틱은? 나아가 옷은? 김치 같은 걸 비닐로 싸지 않으면 샌다. 플라스틱이 안 되면 밀폐용기도 사용하지 못할 텐데 그럼 밑반찬은 어디다 싸 오는가? 옷도 결국 석유로 만들어진 것 아닌가? 등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합의를 보기로 했지만 흔쾌하지 않다.  

 한편 작년 4월 교토에 갔을 땐 석유를 바이오디젤로 바꿔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확인했다. 가정에서 수거한 폐식용유로 바이오디젤을 만들어 시내버스에 넣고 있는데, 이 양이 턱없이 부족한 것. 지금도 옥수수, 팜 등을 바이오연료로 만들면서 식량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지금 자동차에 들어가는 석유를 모두 식량을 모두 차에 넣으면 과연 사람이 먹을 것이 남아 있긴 한 걸까? 그러니까, 지구온난화에 맞서 '대안'에너지가 정말 '대안'일까? 

독일의 보봉, 스웨덴 말뫼, 전북의 부안, 경남의 연대도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추진되고 있는 많은 저탄소마을은 "화석연료로부터의 독립"을 핵심 과제(혹은 슬로건)로 내놓고 있다. 그런데 다시 여행 얘기로 돌아가면, 내가 입고 있는 옷, 내가 사용하는 책상, 내가 읽는 책, 냉장고, 신발 등등 석유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있는가? 아니, 석유와 (아마도 원자력이 절대적일) 전기로 돌아가는 공장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있는가? 간디나 슈마허(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이야기한 마을이나 중간기술이 하나의 대안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모두를 설득하기에는 다소 멀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멀고 어렵다는 것이 의미 없고 시도할 가치가 낮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공장을 대안에너지로 돌리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위의 대안과 같은 장애물이 남는다. 그렇다면 우린 한 가지 결론에 이른다. 공장을 '덜 돌리는 것'. 그러니까 물건을 최대한 오래 쓰고, 옷은 오래 입고, 필요 없어진 물건은 재사용이나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알루미늄의 역사(자연과생태)>는 알루미늄에 대한 다각적인 고찰을 통해 사람들이 지구온난화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구호로 그치기 쉬운 '저탄소마을'이 실현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방법을 제시한다.  

               알루미늄은 현대 철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금속이다. 캔, 통조림을 만드는 데부터 비행기, 선박까지. 그런데 알루미늄을 원자재 보크사이트에서 분리하기 위해서는 전기분해를 해야 한다. 이 방식은 전기에너지를 매우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알루미늄 1kg 생산하는데 20kW의 직류전기를 30년 동안 사용하는 전기에너지 필요) 거대한 규모의 수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가 필요하다. 브라질은 보크사이트로부터 알루미늄을 정제하는 단계부터 최종 알루미늄 제품을 생산하는 전 단계가 이루어지는 유일한 국가이다. 이를 위해서 거대한 규모의 수력발전소가 수십 개 건설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마존 열대우림이 광범위하게 벌목됐다. 브라질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순위 10위권이며, 브라질의 온실가스 배출량의 60%는 벌목에서 나온다.

그러나 알루미늄은 철 등에 비해 재활용하기가 쉽다. 기존 알루미늄을 재활용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보크사이트에서 순수한 알루미늄을 정제해낼 때 필요한 에너지의 1/3에 불과하다. 지하철을 알루미늄으로 만들면 철로 그것을 만들 때보다 에너지는 더 많이 들지만 3년만 운행하면 모두 상쇄한다. 이렇게 알루미늄으로 만든 지하철은 평균 35년 운행한다. 뿐만 아니라 건축에서도 창문과 문, 전면장식, 벽, 지붕을 알루미늄으로 시공하면 수명도 길고 실용적이며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알루미늄 용기는 재활용이 매우 쉽다.

그런데 여기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알루미늄의 가벼움에 대해 이해하고 그에 바탕하여 습관을 바꾸며, 오래 써야 한다는 것. 현대의 자동차는 알루미늄 차체 사용으로 자동차 무게를 줄여 이전보다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그러나 각종 편의시설과 안전장비를 장착하면서 되려 철로 만든 자동차보다 무거워졌고, 에너지도 더 많이 쓰게 됐다. 알루미늄이 포장재나 음료수 캔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평균 수명이 6개월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알루미늄이 갖는 긍정적 효과는 사라진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은 2007년부터 저탄소마을을 고민하고 있다. 마을 지도도 만들고 태양광발전시설의 설치를 추진해보기도 하고 어떤 에너지가 좋을 지 고민했다. 그런데 어떤 '대안'에너지도 서울이란 메트로폴리스 한 복판에 자리 잡은 성미산마을엔 딱 들어맞지 않았다.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는 데는 큰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했고 바람은 4계절 내내 평균 4m/s 를 넘지 않았다. 아스팔트로 덮인 도로와 집들이 빼곡이 자리 잡은 곳에서 농사는 커녕 작은 텃밭을 일굴 공간도 찾기 힘들다.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열과 전기를 만든다? 당장 주민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80%가 도시인 한국의 거의 모든 마을이 지구온난화 대응 모델을 고민하면서 맞닥뜨리는 공통 장애물이다. 그러나 오래 쓰고 재활용, 재사용률을 높이는 것은 모든 곳에서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지구온난화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 오히려 개인적으로 지역 먹을거리를 먹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지구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뛰어넘을 수 있다.

다만 여기엔 정교한 전략이 추가로 필요하다. 우린 '아껴 쓴다'는 행위, 재활용, 재사용이란 단어에서 어떤 궁상맞음, 귀찮음을 떠올린다. 갖고 다니는 가방,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곧 그 사람이 보여준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오래된 물건을 사용한다는 것은 곧 '능력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재사용, 재활용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하다. 알루미늄이 주류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알루미늄에 대한 이미지 만들기가 성공한 덕분이었다. 반짝반짝하는 표면에 새롭다, 신선하다, 세련됐다는 문화적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의 알루미늄에 대한 수용성을 높였다. 마치 명품백, 자동차가 그 사람을 대표하듯. 실제 나치는 알루미늄을 마그네슘, 아연과 함께 독일의 금속이라 명명하며 독일의 알루미늄 기술자들에게는 아리안족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특별한 재능과 타고난 천재성을 소유하고 있다고 이미지를 만들었다.  

분위기는 좋다. 지금 21세기에는 환경이 it item, hot item 으로 떠오르고 있다. 헐리웃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2010 헐리웃 배우 수입 1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영원한 섹시남 브래드 피트, 정치적 발언을 서슴치 않는 맷 데이먼 그리고 공효진 등등 셀레브리티들이 환경을 보호하자며 적극적으로 말을 하고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들이 환경을 보호하자고 말하고 있다. 그들이 입는 브랜드의 옷이 유행하는 것처럼 그들의 행위는 환경 보호라는 관점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이를 이용해 재사용, 재활용에 '멋지다(cool)'란 이미지를 씌운다면 사람들의 재활용, 재사용률을 높이고 도시들의 기후변화대응 모델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부가 재사용, 재활용을 보다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 역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는 또 다른 관점에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국내 아이폰이 등장한 것은 불과 2년 전인 2009년이다. 지금은 스마트폰 사용자가 2천3백만 명에 달할 정도로 스마트폰이 당연한 것이 되었지만 지금의 변화가 이루어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등장은 국내 시장을 얼마나 흔들어 놓았나. 무선 인터넷망이 개방된 것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케이스 장사, QR코드 제작자 등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또 사라졌다. 그런데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는 스마트폰이 등장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그만큼 훨씬 더 크고 다양하고 복잡하고 거대한 변화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또한 알루미늄이 20세기 중반에야 중요한 물질로 떠올랐다는 사실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알루미늄은 19세기에 발견되었지만 100년 가까이 관심 밖에 있었다. 만드는 데 비용도 많이 들고 필요성도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유 가격이 상승하고 자원이 고갈될 수록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생산하는 데 비용이 올라가고, 이는 곧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버리는 물건,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언젠가 중요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곧, 재활용, 재사용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새로운 일자리,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우리들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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