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학교에 갑니다 - 공립학교 교사와 대안학교 교사가 일 년간 함께 나눈 우리 교육 이야기 함께교육 4
심은보.여희영 지음 / 서유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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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택에 있는 혁신(초등)학교 교사 심슨(심은보)과 서울 마포구에 있는 대안학교 교사 에리카(여희영)가 한해 주고받은 열세 통의 편지를 모은 책. 지근거리의 이야기들이라 얼른 읽고 싶은 마음과 낯부끄러운 민낯을, 정리되고 포장된 낯간지러운 자화자찬을 마주하면 어떡하나 망설임이 교차했던 책.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이 오직 편지에 담긴 말로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씩 친해져가는 모습이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남녀가 1박2일 동안 꽉 찬 대화를 나누던 《비포 선라이즈》와 비슷하다 생각했던 책. 무엇보다 마음에 대한 책.


“아이들은 언제나 온몸으로 성장하고 있어요. 싸워도 봐야 하고, 다쳐도 봐야 하고, 때론 위험과 불편함에도 직면해 봐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p.38)”라는 심슨의 말에서 나는 우습게도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떠올렸다. 베스트셀러였으나 순식간에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책. 나 역시 분노가 섞인 이죽거림으로 대했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떠올린 건 얼마 전에 우리나라가 ‘청년’을 40세까지 포함하려 한다는 얘길 들은 탓이기도 하고, 싸워도 보고 다쳐도 보고 위험과 불편함에 직면해 봐야 하는 게 비단 아이들뿐일까 싶어서다.


아이를 낳는다고 곧바로 부모가 되는 게 아니라 나의 유전자를 일부 갖고 태어난 타자(他者)와 함께 잘 지내는 방법을 공부하고 몸에 익히면서 부모가 되어가는 것처럼, 교사도 사람과 배움과 삶에 대한 끊임없는, 치열한 고민을 통해 만들어진다. 에리카는 “그때의 실수들, 그때의 시간들, 서툰 나의 세월들이 오늘 도은이가 찰흙을 문지르고 밟고 손바닥으로 흙도장을 찍는 순간을 애정의 눈으로 보는 마음을 키워 준 것(p.145, 에리카)”이라고 고백하고, 심슨은 “선생이랍시고 온갖 당위를 끌어와 앞 뒤 없이 ‘옮음’에만 목을 매고 있진 않은지” 고민한다.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시가 흐르는 밤 행사를 치른 후 “2학년들 왜 이렇게 대단해요?”라는 피드백을 받은 에리카의 고백이었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한 것도 아닌데 이 허전한 기분은 뭐지? 아무도 내가 물심양면 도운 줄 모를 텐데 나 혹시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걸 했나? 이 당황스러운 기분은 뭘까? 잠시 휘청했어요(p.194).” 에리카도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게 놀라웠고, 이런 감정들을 휘발되는 말이 아닌 종이에 찍힌 활자로 남기는 그 용기에 더욱 놀랐다.


교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끌어 주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기다리고 발견하는 교사가 진짜 교사(p.174)”라는 정의나 “포장지는 거칠어도 그 속에 담긴 마음을” 발견하고, 도와주고, 살피는 태도, “아이들의 행동을 긍정하고, 그 의지를 수용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돕는 것,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에리카의 이야기는 언뜻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조금은 부담스럽고 무겁게 느낄 수 있지만 그렇게 하고 있어도 으쓱할 일도, 칭찬받을 일도 아닌, ‘마땅히’ 갖춰야 하는 것들 아닐까.

전송중...

출처 : 언스플래쉬

새로 오신 선생님들로부터 끊임없이 질문들이 나오고 “그 와중에 우리가 가꿔 왔던 이야기들이 도전받는 듯 느껴질 때가 있(p.158)”다는 심슨의 고백은 현재 나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었다. 새롭게 합류한 사람들은 으레 기존의 것들에 의문을 던지고, 나도 그러한 질문들에 언짢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우리가 해왔던 것들을 돌아보고, 출발점과 지향을 다시 확인하고, 관습적으로 해오던 것들을 점검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름대로 깊이 고민하고 열심히 귀를 기울일 수 있어서 가능했던 경험이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그런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이것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싶지 않은데 왜 하고 있어야 하냐고 묻는다. “교사가 너무 힘을 주고 서 있으면 교사라는 자리와 그 자리에서 하게 되는 생각에만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아이들의 생각과 이야기는 놓치기 마련이니까요(p.212)”라는 심슨의 말처럼 우린 우리가 옳다고 믿으며 우리의 자리에만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우린 충분히 귀 기울여 듣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을까.

베테랑이라고 불려도 손색없을 이들 역시 오늘도 여전히 돌아보고,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들에서 괜한 위로를 챙기기도 하고, 반짝이는 배움의 순간들에서 깨달은 것도 적지 않았지만, “형님”이라는 호칭은 내내 불편했다. 얼마 전부터 중등은 오빠, 언니, 선배, 누나와 같은 호칭이 성(性)을 구분 짓고 위계를 만든다며 각자 별명을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내게도, 학교로서도 큰 배움이자 인상적인 전환이었다. 3년 전에 쓴 원고라지만 올해 7월에 출간했으니 그 전에 수정할 순 없었을까.

전송중...

출처 : 언스플래쉬

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 존 듀이에게 학교는 삶터여야 했다. 심슨 역시 “삶”이란 단어를 자꾸 가져온다. 그는 외발자전거를 익히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학교는 잘 모르고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 누구나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하는 곳이라는 보여 주고 싶(p32)”다고 고백한다. 교실은 “기꺼이 시도하고 기꺼이 망해도 좋은 곳(p.88)”,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서서 제 이야기들을 마음껏 나누며 깨치고 배워야 하는 곳(p.90)이어야 한다. 곱씹을수록 타당하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삶 들의 주인공이지 않은가. 삶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사는 곳이 학교라면.

때문에 공부는 우리의 삶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세상 모든 일에 나의 책임과 역할이 있다는 뜻이면서 수없이 많은 작은 사람들의 일상 덕분에 세계가 유지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생태를 공부한다는 건 주변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장애가 있으니 도와주어야 해’라는 관점이 아니라 서로 배우는 순간을, 그리하여 함께 지내는 것이 얼마나 서로의 성장에 필요한 것인가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알아주는 것(p.172, 에리카)”이라는 발견은 필연적이다.

금방 바뀌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찬찬히 그렇게 가도록 살펴야지요(p.81, 에리카)

출처 입력


"끌어 주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기다리고 발견하는 교사가 진짜 교사(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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