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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안도 다다오 지음, 이규원 옮김, 김광현 감수 / 안그라픽스 / 2009년 11월
평점 :
<도전! 골든벨>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하차한 후의 인터뷰였다. 촛불집회인지 100분 토론인진 모르겠지만, 그의 소신을 드러내는 자리에 섭외를 받았을 때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등 여러 선배들에게서 전화가 왔단다. 김제동은 인터뷰 자리에서 각 선배들의 특징을 모사하며 그들이 했던 얘기를 들려주었는데, 그 스타일은 달라도 하는 말은 같았단다. “나가면 위험해. 나가지 마” 그러나 김제동은 그 자리에 나갔고, 이후 줄줄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당했다.’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등 소위 잘 나가는 선배들이 잘 나가는 김제동을 걱정했던 것에는 ‘하차’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광고주의, PD의, 방송국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존재니까. 저들은 ‘갑’이고 그들은 ‘을’이니까.
그런데 사실 우린 모두 을이다. 얼마 전 야구 특집으로 방송된 <짝>에 출연한 한 남자는 “우리가 회사를 선택하는 게 아니잖아요. 회사가 우릴 선택해준 거지.”라는 말로 ‘을’로서의 자격지심을 드러냈다. 을은 갑이 만들어 놓은 질서 안에서 움직여야 하고 갑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중앙일보 기자들의 “사장님, 힘내세요!”나 용산참사로 이어진 김석기의 과잉충성은 우스꽝스럽거나 그로테스크한 측면은 있으나 본질적으론 대한민국 사회 우리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을’이란 측면에선.
그런데 “나에게 설계를 맡긴 이상 당신도 완강하게 살아내겠다는 각오를 해 주기 바란다.(p.95)"라는 건축가라니. 소극적으로 볼 때 건축가 역시 건축주가 의뢰하고 돈을 주면 건축주의 욕구에 맞춰 건물을 지어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갑과 을이 아닌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는 파트너로서 건축주와 관계를 맺고자 한다. 어떤 공평함. 이는 비단 사람 간의 관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안도 다다오는 첫 작품(?)인 ‘고시노주택’을 설계하면서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생활. 냉혹함과 따뜻함을 두루 가진 자연의 변화를 최대한 획득”하는 것으로 기본 원칙으로 세웠다. ”더울 땐 옷을 하나 더 벗고 추울 땐 옷을 하나 더 입는“ 집. 또한 그는 업무마다 전반을 책임지는 담당자를 한 명씩 두고 1:1로 소장과 담당자가 만난다. 업무가 5개면 5명의 담당자를 둔다. 안도 다다오 식의 공평함. 안도 다다오의 엄격함.
건축가와 건축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엄연히 설계를 하는 건축가와 실제 공사를 하는 시공사는 따로 존재하니까. 그러나 건축 역시 창조라는 측면에서 설계한 사람의 철학이 담기는 매체다. 4대강 곳곳에 만들어진 보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 있을까?
안도 다다오는 오랫동안 ‘기인(奇人)’으로 불리었다. 고등학교 때 권투를 하고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했다는 이력, 노출 콘크리트를 전면에 내세우는 독특한 건축 방식 등도 그를 기인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겠으나, 그가 기인을 넘어 한 사람의 ‘건축가’가 될 수 있었던 것에는 결국 그의 철학을 유지하고 밀고 나갔다는 점이 크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그에게 들어오는 일거리가 많아졌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한 것은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라는 디자인이며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밝고 즐겁고 편리한 현대식 주택.”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일을 가려 받기 시작했다. “양자 사이의 어긋남을 메워 나가려면 어느 부분에서는 내 생각을 억제해야 하고, 그렇게 영합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본질을 잃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스미요시 나가야 역시 마찬가지. 스미요시 나가야는 외부를 향해 전혀 창문을 내지 않는 무뚝뚝한 콘크리트 벽으로 만들었다. 이는 80년대 당시 고도경제성장이란 이름 아래 “스프롤 현상을 보이는 도시에 맞서 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자 하는 개인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인상적인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건축가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규정하는 대표적인 말은 “사회비평으로서의 건축”일 듯. 안도 다다오는 건축을 물건을 짓고, 올리는 문제가 아니라 “도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도시는 어떤 모습을 띄어야 하나? 사람들은 그 공간(혹은 건물)에 어떤 욕구를 갖고 있는가?”라는 차원의 문제로 규정한다. 그래서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에는 ‘완성’이 없다. 그가 생각하기에 건축은 사용자와 건축가 사이의 대화, 소통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이루어져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소통이 계속되고 그것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안도 다다오의 건축에는 ‘끝’이 없다.
성미산학교의 장기 프로젝트인 ‘전환학교/ 마을 만들기’의 키워드 중 ‘건축’이 있다. 안도 다다오의 오모테산도힐즈 프로젝트는 성미산마을의 ‘전환’에도 매우 좋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오모테산도힐즈는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했지만 건물 자체의 노후화로 인해 재건축이 결정된다. 하지만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닥치게 되는데, 안도 다다오는 4년간의 협의기간을 거치면서 오모테산도힐즈의 역사와 문화 아울러 메이지진구 숲까지 이어지는 생태축으로서의 가치까지 보전함을 내세워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대표적인 것이 가로수로 심어진 느티나무보다 낮게 건물 높이를 설정한 것.
성미산마을은 주민들이 성미산을 지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곳이다. 건축이 ‘생태축’, ‘도시’, ‘마을’을 고민하는 도구라면 전환으로서의 건축이 성미산마을의 미래 모습을 그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성미산까지 이어지는 ‘녹지축’을 마을 곳곳에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것이다. 나무를 심어도 좋고 직접 먹을거리를 기르는 ‘농사’를 통해 녹지(축)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선입견과 달리 안도 다다오가 권투에 몰입한 시간은 길지 않다. 그러나 권투가 안도 다다오의 인생관, 건축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두 사람이 맨몸만 갖고 1:1로 맞부닥쳐야 하는 스포츠. 그런 점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어느 스포츠보다 공평하고, 종이 울리거나 포기하기 전까지 링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엄격한 그것.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