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립군>을 보았다.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과 나라를 버리고 도망간 선조를 대신해 왕의 역할을 대신해야 했던 어린 광해와

남의 군역을 대신하는 '대립군'의 이야기다.

 

- 어린 광해는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기에 무섭고 두려운 것이 많았으며, 정작 임금인 아버지도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바빠 백성들과 세자를 두고 왜군을 피해 도망을 간 마당에 강계로 의병을 모으고자 떠나는 길 어찌 발걸음이 무겁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심지어 처음엔 그래도 세자라고 귀하신 몸이니 가마에 모셔져 다니느라 자기 발로 나설 수도 없었다. 불안하고 두렵고 부끄럽고 참담하고 그리고 이런 황당하고 참담한 상황에서 내 손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그 무력감. 그는 무엇보다도 이 무력감을 견뎌내야 했다.

 

-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간 왕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그런 왕을 마지못해 대신해야 하는 왕세자의 무력함을, 밀려오는 왜군들을, 가족들의 생사조차 정확히 알 수 없는 불안하고도 혼란스러운 이 시기를 다른 이의 이름으로 군역을 대신하며 견뎌야 했던 대립군의 모습은 광해의 처지와도 닮아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나아질 것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은 내일의 희망같은 것은 오래전에 버린 채 그냥 현재, 지금 이 순간을 버텨내기 위해 산다. 먹고, 싸우고, 잠을 자고. 그들은 진작에 염라대왕에게 양심같은 것이 있을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현재를 버텨내기 더 힘들테니까.

 

- 현재를 버티기 위한 힘은 초월적인 힘을 가진 어떤 존재를 상상하는 것에서 오지 않는다. 대신에 (이런 뭣같은) 현재 상황을 나와 함께 옆에서 겪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버티고 나아갈 힘이 생긴다.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가 이렇게 힘들고 답답하고 견디기 힘든데 대체 신은 어디있는가. 어서 날 좀 보고 구원해달라. 이렇게 마음 속으로 외치면 신이 와서 이렇게 속삭이지 않을까. 너를 구원할 것은 오로지 너뿐. 난 모두에게 공평하단다. 주위를 둘러봐. 힘들고 괴로운 것은 너뿐이 아닐테니. 난 상황에 어떤 힘도 가담하지 않을 것이고 그저 쭉 지켜만 볼 뿐. 신에게 기도하는 행위는 결국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것일테다. 모두가 나와 같다. 그러니 나도 너도 잘 좀 버텨보자. 

 

-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이후로 어떤 이야기를 접하든-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야기 속 상황이 세월호와 은유적으로 겹쳐보이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 이야기도 그러했다. 굳이 그 모든 은유를 나열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떠올렸으리라 생각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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