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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밥해먹기
김혜경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요리가 적성에 맞는 사람들은 또 다르겠지만, 나같이 먹는 것에도 먹을 것을 만드는 것에도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요리란 참으로 신경 쓰이는 것이다. 바쁜 일이라도 좀 있고 나면 거의 두세 가지 반찬으로 일주일을 돌리고 있게 되니,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사진이 많은 요리책도 두어권 사봤지만, 그런 책들은 모양만 예쁠 뿐 손이 엄청나게 가고, 또... 솔직히 별로 맛있어보이지도 않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첨보는 재료도 많고... 하다못해 아이들 간식용 책까지도 그 번거로움과 여러 가지 재료에 질려서 단 한 가지도 시도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파와 호박, 지난번에 쓰고 반 남은 양파를 모두 넣고, 남은 감자가 있으면 그것도 넣으세요' 식의 표현 때문인지, 요리라는 게 그냥 대충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사실 요리가 무슨 예술 작품은 아니지 않는가.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됐지. 그런데 다른 요리책들은 만드는 과정 자체에 중점을 두는 데 반해, 이 책은 만들기 전에 쉽게 준비하는 방법, 만들고 난 후의 먹는 즐거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어서, 요리하는 과정 전체를 좀 더 편안하게 느끼게 해준다.
이 책에 따라 '남은 양념장'에 '시켜먹고 남은 프라이드 치킨'을 넣어 양념 통닭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왠지 좀 달아야 할 것 같아서 약간 손을 보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난 프라이드 치킨 남은 건 그냥 렌지에 데워먹는 방법밖에 몰랐었다. 그렇게 하면 참 맛이 없어서, 그냥 묵혔다가 상해서 버리기도 했다. 너무 무식했다고나 할까... 어쨌든, 일단 한 발을 떼니까 좀 더 시야가 넓어지는 기분이고, 전에는 고구마를 보면 삶고 찔 줄 밖에 몰랐는데 맛탕도 해 보고 싶고 조림도 해 보고 싶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이런 일은 생전 처음 있는일이다.
결국, 이 책의 최고의 장점은, 철저한 재료 준비, 반 정도 해서 냉장고에 채워두기에 지면을 많이 할애함으로 해서, 재료를 보면 요리를 생각나게 해준다는 점이다. 김치를 보면 김치찌개를 하고 소세지는 볶기만 하고 샐러드는 마요네즈와 요플레밖에 모르던 나같은 초보자한테는 정말 무척이나 힘이 되는 책이다. 실제로 하나하나 쓸모가 있느냐를 따지면 30퍼센트 정도 쓸모가 있다고 답하겠지만, 어지간한 요리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용기를 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과감히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