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복음 - 교회를 위협하는 사탄의 8가지 거짓말
제라드 윌슨 지음, 황영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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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라드 윌슨의 거짓 복음을 읽고...

 

제라드 윌슨은 서구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거짓말에 매우 공감이 된다. 어쩌면 우리네 교회와 상황이 그렇게 비슷한지! “교회를 위협하는 사탄의 8가지 거짓말이 보편적인 교회의 이곳저곳을 공격하고, 여러 형제자매를 넘어뜨리고 있다고 이해해도 좋겠다. 나는 윌슨의 책을 스프로울의 책과 함께 읽었는데, 놀랍게도 두 사람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제라드 윌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 구절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광을 최우선에 두신다는 사실이다. 계속해서 우리는 그분이 말씀하신 것과 행하시는 것들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인지, 그분의 이름을 위한 것인지 보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이 우리의 거룩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하나님 관점에서 욥기의 강조점은 욥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엄위하심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욥 자신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같은 개혁파적 입장에서 글을 쓰고, 강연을 하지만, 제라드 윌슨은 아직 살아있는 동시대인이다. 그는 문화적인 호흡은 책 읽기를 보다 다채롭게 만든다. 구체적인 예시도 나쁘지 않다. 타협하지 않고 성경구절을 자주 인용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는 가독성을 위해 편집자들이 성경구절을 빼기를 원한다는 것을 넌지시 표현했다. 윌슨은 가독성 대신 메시지를 택한 듯 보인다. 그의 고집은 이 책 면면에 잘 드러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복잡하지 않게 전달되었다. 윌슨은 파이퍼를 인용했는데, 인상적인 구절이라 표시해두었다.

 

터져 버리고 말 거품 같은 세상에 허비하기에는 생이 너무나 짧고, 너무나 소중하며, 너무나 고통스럽다. 영원의 현관만 서성이기에는 천국이 너무 위대하며, 지옥은 너무 무섭고, 영원은 너무 길다.”

 

윌슨은 전통적인 신학을 현대의 어조로 잘 표현하는 작가다. 그는 결단을 촉구한다. 마귀의 거짓말에 놀아나지 말고, 회개하고 믿을 것을 권하며, 그리스도의 형벌대속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후회 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하지만, 그는 지혜로운 사람은 후회하며 반성하고 돌이킨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사실 이러한 제목을 지닌 책들은 부정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서, 완독이 힘든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작가는 긍정적인 대안을 놓치지 않고 제시한다. “하나님이 하시게 하라는 거짓대신 성화의 능동적인 면을 제시하는 것이 그 한 예이다. 이 책에 관심이 있다면, 먼저 목차를 본 후, 가장 관심이 가는 챕터부터 읽어가는 것도 괜찮다. 제라드 윌슨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 우리는 이런 책을 필요로 한다. 필요한 주제를 흥미 있는 어조로 풀어낸 좋은 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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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으로 나아가라 -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할과 나의 역할
R. C. 스프로울 지음, 조계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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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C. 스프로울의 거룩함으로 나아가라을 읽고...

 

잘못된 칭의관을 안락의자 삼아 나른하게 게으름을 피우던 사람들을 깨우는 폭탄과 같은 책

이 책에 대한 나의 한 마디 평가이다. 특별히 1장과 6장은 압권이었다. 1장은 천천히 음독했다. 뼈에 새기고 싶었다. 6장은 밑줄을 긋고, 표시를 하고, 유튜브 커뮤니티에 사진을 찍어 올리며 읽었다. 스프로울은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아직도 세상에 남아 열일하고 있다. 그의 봉사로 인해, 나 같은 사람이 찔림과 도전을 받아 열정을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이 복음전도의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 기도하고 선물한 이 책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고, 믿음의 눈이 열리는 이가 있기를 소망한다.

 

이 책을 가로지르는 성구는 빌립보서 212, 13절이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스프로울의 논지는 분명하다. 성화는 칭의와 동시에 시작된다는 것이다. 열매 없는 칭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훈련은 이 땅을 사는 동안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포로울은 교회에 대해 염려하면서 에 대해 매우 드물게 말하는 것을 지적한다. 그는 신앙생활의 목적이 영성이나 경건, 도덕성이 아닌, 바로 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그렇다. 내가 거쳐 온 공동체를 생각해본다. 나는 복음주의 환경에서 중학생 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찬양과 요란한 기도, 큐티와 수련회로 대변되는 곳에서 배우고 자랐다. 나는 여기에 목요찬양과 기독중창단을 추가했다. 하지만 이 많은 활동들은 거룩을 증진시키고, 의를 추구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 활동들의 기저에는 일종의 반지성주의가 있었다. 나는 10년이 훨씬 지나서야 성경에 눈을 뜰 수 있었다. 하나님의 도우심 덕분이었다. 성화를 위한 의도적인 인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교회에서 노력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매우 드물었음은 물론이다. , 이제 장년이 되어서 내가 경험한 훈련을 논해보자. 그것들은 코스였다. 짧게는 4, 길면 2년이었다. 그렇게 모집해서, 반을 만들고, 모이고, 방학하고, 숙제하고, 점검한 후 수료했다. 수료 후에는 이제 훈련이 끝났다는 묘한 성취감이 따라왔다. 수업식 제자훈련은 나름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잊지 말자. 그리스도인의 성화는 코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모두가 배워야 한다. 모두가 애써야 한다. 모두가 두렵고 떨림으로 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회심한 영혼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열정을 일으키시기 때문에, 거룩을 추구하는 참된 성도는 결코 안주하지 않고 거룩을 추구하고 또 추구한다.

 

단지 인내하라는 조언에 그치지 않고, 기꺼이 고난을 받되 온유함으로 하라는 스프로울의 격려가 마음에 남는다. 이는 그의 독창적인 견해가 아니라, 성경의 메시지를 자신의 방식으로 재전달한 것이요, 예수님의 명령이기도 하다.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거룩하기 원하는가? 예수님 닮기 원하는가? 의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있는가?” 안주하지 않고 달려 나가기 원한다. 성령님,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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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와 함께 살라 - 어느 금요일의 여섯 시간에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
맥스 루케이도 지음, 박상은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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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루케이도의 부활의 주와 함께 살라를 읽고

 

올해도 여지없이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다. 의미 없이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맞이했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부활을 새롭게 공부해 볼 요량으로 루케이도의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너무 신변잡기적이다! 자기 이야기가 너무 많다! 성경 이야기는 어디 있지? 고상한 신학적 담론은 언제 나오지? 질문이 꼬리를 물고 있을 때, 생각이 났다. 맥스 루케이도는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선물해 주었던 너는 특별하단다.의 저자였다는 것을...

 

그렇다. 맥스 루케이도는 책을 이렇게 쓴다.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어렵지 않게……. 그가 제시한 허무, 실수, 죽음이라는 주제도 그렇게 낯설지 않다. 현대인치고, 허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실수를 매일 경험하지 않는 이가 누구겠는가? 무엇보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를 교묘하게 피하며 산다. 루케이도는 실오라기를 하나하나 풀어내듯, 서두르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해 나간다. 어느새 나도 매료당한다. 내 이야기다. 내 허무와 실수, 그 끝에 기다리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금요일의 여섯 시간.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인생의 허무가 해결되었다. 그 십자가에서 흘려진 피로 인생의 실수, 정확히 말하면 죄와 허물이 씻음 받았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예수 그리스도, 그분 까닭에 죽음의 문제, 그 지독한 문제에 종지부가 찍혔다.

 

사실 난 근래 매우 허무했다.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론 알고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루케이도가 잘 표현한 것처럼, “깨어진 꿈의 철썩이는 파도에 얻어맞는 데 지쳤다.”(36) 그래서 무슨 일이든 하기가 힘이 들었다. 후회하고, 또 결심하지만 물 먹은 듯한 몸뚱이를 일으키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본서에서 루케이도는 이런 내 문제를 정확히 짚어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두려움에 휩싸인 채 다락방 안에 머물러 있는가? 함께 모이기는 해도 밖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지는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문이 잠겨 있지 않아도 잠겨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락방의 허무. 약간의 믿음은 있을지 몰라도 열정은 거의 없다……당신은 그리스도에게서 등을 돌리지는 않지만, 그분을 향해 돌아서지도 않는다. 그분의 이름을 저주하지 않지만, 찬양하지도 않는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함께 모여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 이유는 확신하지 못한다. 다락방의 허무. 잠긴 문 뒤에서 혼란에 빠진 제자들.”(100-101)

 

이 단락은 지난 몇 달 동안 보았던 어떤 글보다 강력했다. 내 모습이었으니까. 나는 부활의 주님의 방문이 필요했다. 허무의 벽을 뚫고 들어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찾아오심이 필요했다. , 그거였구나. 그때 제자들은 변화의 첫 단추를 잠그고 있었겠지. 곧 성령의 충만을 받을 테지. 시작은 예수님의 방문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 사망을 이기신 분.

 

올해 부활절엔 모이기 힘들 것 같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부활의 주님을 더 소망하게 될 것 같다. 맥스 루케이도의 쉬운 문체 속에는 무겁지만 필수적인 답이 숨어 있었고, 난 그걸 찾았다. , 부활이 없었다면 허무한 인생이 어찌 감당했으리요. 어느 금요일의 십자가 처형이 없었더라면 인생의 실수는 영원히 기억되어 날 괴롭혔겠지. 6시간의 고통을 이기신 그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죽음은 현재적인 고통으로 날 옥죄였을 거야. 부활의 주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부활이 나의 부활인 줄 믿습니다. 내게 찾아와 주세요. 매일. 매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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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그 모든 것 - 천국이 실제로 어떤 곳인지 궁금한가?
로버트 제프리스 지음, 조계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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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제프리스의 천국, 그 모든 것을 읽고

 

역사를 읽어보면 내세를 가장 많이 생각한 사람들이 현세의 삶에 가장 충실했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로마 제국의 회심을 위해 헌신했던 사도들, 중세 시대를 건설했던 위인들, 노예 제도를 폐지했던 영국의 복음주의자들 모두가 세상에 뚜렷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생각이 온통 천국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토록 무기력해진 이유는 그들이 내세에 대한 생각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천국을 목표로 하면 세상을 덤으로얻게 될 테지만 세상을 목표로 하면 둘 다 잃게 될 것이다.”

 

C. S. 루이스의 말이다.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루이스는 천국에 대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내세에 대한 생각을 잊은 자들의 형편을 무기력으로 표현한다. 무기력...

 

모임에 나가기는 하지만, 힘써 복음을 전하지는 않는다.

믿음은 있지만, 열정은 글쎄…….없다고 말해야겠지.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부인하지만 않지만, 그분을 열렬히 찾지는 않는다.

그리스도를 저주하지 않는다. 절대로. 하지만 그분을 힘 있게 찬양하지도 않는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확신이 서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좀 지쳐 있다.

 

제프리스의 책을 읽으며 정신이 번쩍 났다.

나 제대로 사는 것 맞아?”

나 진짜 그리스도인 맞는 거야?”

 

저자는 물리적인 천국을 강조한다. 몸을 강조한다. 연속성을 잊지 말라 한다. 상급을 기억하며 오늘의 유혹을 물리칠 것을 권한다. 이 책을 곱씹어 읽으며 제프리스의 도전 앞에 한번 서보라. 부끄러움과 함께 도전이 있을 것이다. 성경에 나온 천국을 연구해 보고 싶을 것이며, 천국에 대한 거룩한 상상에 빠질 것이다.

 

특별히 저자에게 감사하는 것은 임사체험에 대해 한 챕터를 할애해 주었다는 점이다. 임사체험에 관한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진위여부에 대한 확인 없이 호기심과 진리의 언저리를 맴도는 이 때에, 분명한 입장을 제시해주어 고맙다. 사실, 제프리스는 소수의 사람이 구원받을 것이며, 제한적인 속죄를 강조하는 대단히, 정통적인 신학 스탠스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에 대한 이 책은 복음전도적이다. 9장에서 그는 천국에 들어가려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을 말하며, 영접기도까지 제시한다. 저자는 복음전도자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로버트 제프리스가 견지한 종말론이 어떠한 입장인지 제시해주는 서론이나 부록이 없다는 점이다. 로버트 제프리스는 전천년설을 내세운다. 그가 봉직하는 댈러스 신학교의 공식입장이기도 하다. 183쪽의 그림을 보며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제프리스는 대환난 시대의 신자를 따로 분류한다. 전천년설의 천년왕국에는 죄인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독자들을 위해 무천년설과 후천년설은 어떻게 다른지 앞이나 뒤에 한두 페이지를 추가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휴거가 있고 나서 7년 후에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교회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나타내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은 모습으로 세상에 돌아올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다.”(213)

 

나는 천국을 소망하는가? 이 책을 마무리하며 주님께 감사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기쁨과 후회가 공존할 수 있다는 인사이트를 얻었고, 무기력한 내 삶이 새로운 출구를 얻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정신없는 이때, 천국에 대한 통찰과 소망을 패키지로 안겨주는 본서를 한번 읽어보시라. 후회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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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울을 사랑하는 30가지 이유
존 파이퍼 지음, 박대영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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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이퍼의 내가 바울을 사랑하는 30가지 이유를 읽고

존 파이퍼는 많은 양의 글을 써 내는 작가이다. 한때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세상에 너무나 쓰레기와 같은 글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진리에 관한 글을 열심히, 부지런히 써내야 한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정말 그러하다. 파이퍼가 만든 디자이어링갓에는 본서를 비롯해 많은 책들을 무료로 내려 받고 열람할 수 있다. 실로 대단하다. 이러한 섬김으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고, 격려를 받으며, 생명을 얻게 되기를 소망한다.

단지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너무나 많은 양의 글을 써내다 보니, 때로는 겹치는 내용들이 종종 발견된다는 점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기독교 희락주의에 대한 내용과 그에 연관된 설명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파이퍼의 책을 1, 2권 읽는 이들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이겠지만, 그의 책을 섭렵하는 이들에겐 자칫 스킵 하고픈 충동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시각을 달리해보자. “반복하면 로이드 존스이다. 로이드 존스는 즐겁게 핵심 교리를 반복하여 강조했다. 교육에 있어 제일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반복아니던가? 우리는 망각의 동물이요, 배운 것을 까먹는 데 천재적인 능력을 지녔다. 따라서 파이퍼의 반복을 즐겁게 받아들이자. 그는 신학박사이자, 저술가이지만, 일차적이며 기본적으로 목회자 아니었던가? 파이퍼 할아버지가 바울에 대해 논하면서 성경을 길게 인용하고, 앞에서 했던 이야기, 다른 책에서 했던 말을 반복한다 해도 인내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자. 어른의 말을 들어 손해 본 일이 있었던가? 무엇보다 기독교 사역에 관계된 이들은, 33년 동안 사역을 지속해온 베테랑에게 마땅히 수업료를 지불하고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노장이 가리키는 바울, 그 사도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다. 다른 사람도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경배와 찬양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이 책을 읽으며, 기억해야 할 것은 바울을 지나치게 성인처럼 여긴 나머지, 우리와 같이 허물을 지닌 인간임을 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겠다. 바울이 만난 예수님을 우리도 만났으며, 그가 받은 은혜를 우리 역시 받아 누린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질문이 도출된다. 바울이 용서받고, 은혜 받아 변화되어 헌신한 만큼, 나도 그러한가? 내게는 변화가 있는가? 나는 진정으로 헌신되어 있는가? 이런 질문을 남기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 좁은 길로 초대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른 사도의 발자취를 조금씩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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