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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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다.
내 인생책이 시집이 될 줄도 몰랐다.
신께서 죽기 전까지 단 한 권의 책만 가질 수 있다고 하신다면, 고민없이 이 책을 집어들 것이다.

어떤 삶을 살아야 이런 글을 쓸 수가 있는 걸까.
그의 깊이에 장을 쉬이 넘길 수가 없었다.

여기서 이 분의 필명을 먼저 얘기하자면, 박노해.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란 뜻이다.
필명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1980년대 노동운동자였다.
스물 일곱 때 시집 <노동의 새벽>을 내어 '이름 없는 시인'으로 불렸으며 당시 독재정권은 이를 금지도서로 정해 탄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100만 부가 팔려 나갔다.

그렇게 7년의 수배생활 끝에 붙잡힌 그는 1991년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 때 당시 24일간 받은 끔찍한 고문의 고통을 여전히 안고 살아가는 그이지만
두번째 사진은 그가 사형선고를 받은 직후의 웃는 모습이다.

이 책엔 그 때 당시의 글도 담겨 있다.

🏷299p.
"이 사람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키고자 사형을 구형한다"던
내 나이 서른일곱 살의 그날,
법정에는 울음과 고함이 퍼졌으나
난 환하게 웃었어요

가장 소중한 젊음을 어려운 시대의
내 조국에 바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이만하면 좋은 삶이고 죽음이라고
난 한 번 웃었어요

_<미래로 추방된 자> 중에서

그는 7년 6개월 만인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출소했다.
이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한 그가 남긴 말.

"과거를 팔아 현재를 살지 않겠다."

그렇게 그는 다시 전쟁과 기근의 여러 나라를 돌며 어려운 이들을 돕고 보살펴 왔다.

함께 울고 웃었던 동지들을 눈 앞에서 떠나 보내고
여지껏 홀로 남아 아픈 몸으로 진심을 다해 꾹꾹 눌러쓴 별빛 같은 시 301편.

환갑을 넘긴 그는 현재 어느 산골마을의 작은 집에서 꽃과 나무를 심고 여전히 글을 쓴다.

그와 30년을 함께 한 만년필과 함께.

🏷54p.
우쭐해진 만년필이 그런다
난 만 년이 지나도 계속 쓸 수 있을 테니
그대가 쓰는 시와 생각과 마음씨가
만 년이 지나도 계속 살아있게 하라고

그래, 만 년의 도구로
백 년의 글을 쓸 순 없지

_<만년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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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 상처받지 않고 사람을 움직이는 관계의 심리학
양창순 지음 / 다산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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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미개척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관계다!" _ 버즈 올드린(우주비행사)

저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수많은 상담을 통하여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분석하고 정리해 이 한 권에 모두 담아내었다.

처음엔 다 달라 보였지만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타인에게서 인정 받고 싶은 욕구,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랬다.

그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심이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무리해서 감추고 산다던지 혹은 오히려 더 오버스럽게 행동해서 결국 사람들이 떠나가게 한다던지 각자의 성향에 따른 표출 방식이 다를 뿐이었다.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겪어 왔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간도 더러 있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인간들 나름 이유는 있었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알아서 고치던지 계속 그렇게 살던지.)

다만 내가 혹시 인간관계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을지를 신경 쓰며 읽었다.
혹여나 내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싶진 않기에.

🏷25p.
음식도 날것으로 먹으면 자칫 소화장애를 일으키듯이, 인간의 감정도 서로가 날것인 채로 부딪치다 보면 불필요한 상처가 생길 수밖에 없다.

🏷84p.
바다에 파도가 거셀 때는 바닷속을 볼 수 없다.
잔잔할 때만 그 바닷속을 볼 수 있는 법이다.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92p.
세상을 구성하는 데는 모든 종류의 인간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해도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다.

🏷127p.
한마디로 말해서 머리도 나쁘고 가치관도 형편없는 위인일수록 좌충우돌하면서 스스로 품위를 떨어뜨리고 다니는 것이다.

🏷151p.
인간은 사용설명서 없이 태어난다.
따라서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나를 이용해야 하는지 알 길을 모른 채 우리 인생의 드라마가 써지는 것이다.

🏷169p.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린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다.

🏷183p.
나도 내가 항상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는데 그걸 왜 남에게 바라는가.

🏷192p.
상대방이 내 마음 같으리라고 믿고 행동하는 이상 우린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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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 호텔 스토리콜렉터 101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김미정 옮김 / 북로드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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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언, 정말 유감인데요, 당신이 맡긴 돈은 어디에도 투자된 적이 없어요. 단 한 번도요."
.
.
"당신이 맡긴 돈이 다 사라진 거예요. 사기였다고요."

💬
폰지사기 ;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뒤 나중에 투자하는 사람의 원금으로 앞사람의 수익을 지급하는 다단계 사기 수법.

이 작품은 2008년 미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메이도프 폰지 사기사건'을 모티브로 하였다.
그 때 당시 피해액은 650억 달러, 한화로 약 72조 5천억 원에 달한다.

사기의 중심 인물이었던 '버나드 메이도프'는 150년형을 받고 수감됐다.

📖
캐나다 밴쿠버섬 최북단의 오성급 호텔 '카이에트'.
이복남매인 폴과 빈센트는 이 곳에서 각자 청소일과 바텐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같은 날 둘은 그만두게 되는데,
폴은 유리창에 끔찍한 낙서를 해서 쫓겨났으며 빈센트는 전날밤 바에서 만난 호텔 소유주인 '조너선 알카이티스'의 눈에 들어 그의 저택으로 들어가게 된다.

빈센트에겐 매일이 호화스러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33살의 나이차가 나는 이들은 서로에게 확실한 역할을 해주었다.

빈센트는 그의 완벽한 '트로피 와이프'를 연기했으며 그는 빈센트에게 한도 없는 신용카드를 제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투자금 반환 요구가 빗발치자 회사는 고객의 환매 요구에 대응하지 못하고 그렇게 대국민 사기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소식을 접한 투자자들은 회사 앞에서 울부짖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면서 끝없는 지옥을 맛보게 되고, 주요 관계자들은 발빠르게 해외로 도피하거나 회사에서 체포된다.

이 책은 1999년부터 2029년까지의 시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서술한다.
개개인의 어리고 젊었던 시절의 일화부터 그 사건 이후 각자 사는 모습들까지 그야말로 드라마 같다.
이들의 공통점은 언제고 '조너선'과 엮인다는 것이다.

그 사건 이후 이들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
오성급 호텔의 강인하고 멋있는 유리창.
하지만 창이 깨지고 유리가 흩뿌려지자 그제서야 보이는 유리의 이면.

알면서도 유혹에 못이겨 당할 수밖에 없었던 사기극이었다.

실제 인물들처럼 등장하는 이 하나하나가 다 입체적이고 개성 있다.
각자 그 사건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지까지 보여주면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실제 사건을 다룬 작품이라 더욱 몰입도가 높았으며 자유자재로 시간을 넘나들기 때문에 파도에 휩쓸리듯 정신없이 따라가게 된다.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과 후회가 뒤섞인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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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인간경영
도몬 후유지 지음, 이정환 옮김 / 경영정신(작가정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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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CEO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최고 경영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화 및 경영 방식을 풀어낸 이 책은 무려 1993년도에 쓰여졌는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경영 지침서로 사랑 받고 있다.

<역사+경영>의 조합이라니 처음엔 너무 어렵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혀 문제없이 읽혔고 오히려 일화 하나하나가 너무나 흥미로웠다.

📖
최고 경영자로 일컬어지는 도쿠가와의 어린 시절은 가혹했다.
할아버지가 부하에게 살해당하고 고작 6세였던 소년 도쿠가와는 인질로 잡혀가 무려 13년이나 멸시를 받으며 지낸다.

그 때문이었는지 도쿠가와는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이미 사람을 볼 줄 알았고, 특히나 어른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무서운 면이 있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지 않고 깊은 눈으로 때를 기다렸다.

사람을 다루는 데 있어 탁월한 재능을 보인 도쿠가와는 손쉽게 자신의 사람들을 늘려 나갔고 점차 위로 올라가지만 일화를 읽다 보면 참 일도 많았다.

원치 않는 악처와의 정략결혼에 이번엔 유부녀와의 결혼까지.
후에는 동맹을 지키기 위해 본처와 가장 아끼던 장남을 살해하기도 한다.

도쿠가와가 75세까지 장수하면서 이룬 업적과 경영 방식, 사람을 다루는 방법 역시 잘 소개가 되어 있다.

친인척이라도 측근에 두지 않았고 정신이 깨어 있는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등용한다.
그럼으로써 안일하던 측근들에게 늘 긴장감과 경쟁심을 심어 주었고, 친구를 두지 않았으며 사람을 믿지 않고 오로지 상황만을 믿고 판단하였다.
그러면서도 자살한 적장의 머리를 정중히 받들어 명복을 비는 모습에서는 적장의 부하들까지 감격하게 하여 결국 그의 사람으로 만든다.
또한 개개인의 쓰임새를 잘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이러다보니 사람이 늘 따를 수밖에.
공격적이고 무자비했던 기존 정권이 도쿠가와에게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나 '언론'을 잘 활용했던 그는 어떻게 하면 민심을 얻을 수 있을지 너무나 잘 알았다.

그는 후계자 역시 장남이 아닌, 자신이 뒤에서 섭정할 수 있는 온화한 아들로 정하였고 실제로도 자신이 지혜를 내리면 그의 아들인 '노부타다'는 실행했다.

이 2대 쇼군인 노부타다의 경영방식도 후에 나오는데 평범한 줄로만 알았던 인물이었는데 강한 부드러움을 타고나 나중에는 아버지보다도 더 추앙받는 쇼군으로 자리매김한다.
아버지에게 없었던 단 한 가지, 사람에 대한 애정이 그에게는 있었기 때문이다.

✏️
이렇게 일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른다.

지금까지도 도쿠가와의 경영방식이 통용되는 것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환경만 달라졌을 뿐 사람을 다루는 것에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운 책 알러지가 있는 나조차도 재밌게 읽은 경영책이니 누구든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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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밤인 세계
하지은 지음 / 황금가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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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얘기하고 시작하자면, 이 책은 내가 읽었던 국내 문학작품 중 거의 베스트다.
첫 충격은 정유정 작가의 작품이 그랬고 이 책 역시 그만한 충격을 내게 주었다.

나의 취향을 완전히 저격한 책.
첫 장부터 무서우리만치 빠져들게 만들었다.

신선하고도 아름다운 문체와 눈 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뛰어난 묘사, 동화스러운 분위기, 신비한 존재들, 무덤덤한 잔인함까지.

📖
이야기는 샴쌍둥이로 태어난 에녹-아길라 남매가 수술대에 오르는 것부터 시작된다.
의사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고 말했고 남작 부부는 좀 더 온전해보이는 에녹(아들)을 살리기로 하고 눈물을 머금으며 아이들을 수술실에 들여보낸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수술은 대성공으로 끝나 아길라(딸) 역시 하반신은 없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는다.

남작 부부는 매우 기뻐했으며 이들 가족은 그렇게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다.
아이들이 일곱 살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신은 왜 하반신이 없는 채로 태어났는지 항상 궁금해하던 아길라에게 한 하녀가 "아가씨는 원래 죽을 운명이었다."고 말해준다.

그 진실을 듣기 위해 찾아간 부모의 방에서 그녀는 둘의 대화를 엿듣게 되고 그제서야 자신이 버려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때부터 아길라는 자신의 몸을 찾기 위해 흑주술에 관한 모든 서적을 섭렵하고 날이 갈수록 사악해져 그녀 곁에 있던 모든 이들이 다치거나 죽어나간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 날, 사랑스러운 남동생 에녹을 불러 "너의 몸은 본디 나의 것이기도 했으며 내가 양보했으니 너 또한 나에게 협조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부모 몰래 보름달이 뜬 겨울의 새벽, 그들은 달빛 아래서 의식을 치른다.

그리고 아길라는 드디어 그토록 갈망하던 다리를 얻게 된다.
남동생인 에녹의 몸에 들어간 채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밝혀진 남매의 출생의 비밀.
왜 그렇게 태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아기를 갖기 위해 그들의 어머니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도.

🏷348p.
무엇보다 큰 문제는 네가 원죄를 짓지 않고 태어났다는 거였지.
밤에 속할 존재라면 누구나 짊어지고 태어나게 되어 있는 그것, 너의 원죄는 그러니까......

형제 살해였다.

너는 너와 함께 잉태된 형제를 어머니의 배 속에서 죽이고 태어날 운명이었지. 네 형제는 오직 그걸 위해 너와 생명을 나누어 가졌을 뿐이다.
그러나 죽은 채 태어났어야 할 그 아기가 살아 태어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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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어야 할 아이가 순수하게 태어나 버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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