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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감촉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평점 :
『시간의 감촉, 은희경』
📌 이런 사람에게 추천해요
1️⃣책을 통해 ‘나이 먹음‘을 간접적으로 느끼며 세월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은 사람들
2️⃣삶이 힘들 때에도 그 시간을 견디는 삶의 태도를 알고 싶은 사람들
3️⃣‘은희경‘이라는 이름에서 설렘을 느끼는 모든 이들
노년의 여성이 주인공인 책은 흔치 않기도 하고 은희경 작가님의 문장들을 워낙 좋아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크게 특별한 사건은 없고 큰 갈등도 없지만 내내 약간의 먹먹함을 안고 읽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글자로 읽으면서 서로 사랑했던 시간, 누군가와의 이별을 겪었던 시간 등을 겪으며 그 때 겪었던 감정들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내 일이었을 때는 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제 3자의 입장에서 관조하는 느낌이랄까.
엄마가 종종 “나이 먹어서 좋을 게 하나 없어.”라는 말을 하신다.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을 때, 내리막길을 걷다가 발목을 삘 때, 체력이 떨어져 오래 걷는 게 힘들어질 때 등등 엄마가 늙는다는 것의 야속함을 느끼실 때가 있는데 이 책이 그런 느낌이다. 담담하고 관조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졌는데, 당사자가 겪는 노화를 내가 겪는 듯한 착각을 하게끔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걸 체감하는 게 가끔은 못내 서러워서 말로 터져나오는 것을 알게 한다.
엄마가 가끔 나이 먹는 게 서럽다고 할 때마다 엄마 말을 들으면서 “그니까~”하며 맞장구를 치다가도 가끔은 ’나이 먹는 건 당연한 건데 어쩔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내가 아닌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어렵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조차도 내가 겪는 일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고, 나도 가족의 일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은 그 간극을 조금이나마 해소시킨다. 노화를 혐오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서글픈 감정을 가끔 입 밖으로 꺼낸 것뿐임을 알게 한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변해가는 육체를 바라보며 노화의 감각을 직면하는 것. 그게 이 책에서 경선과 안나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읽는 내내 좋은 문장들이 많아서 곱씹으며 읽는 모든 순간이 좋았지만 책을 덮으며 좋았던 순간들도, 힘들었던 순간들도 전부 시간이 지나며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까지가 좋았다. 소설책인데도, 문장 하나하나가 철학적인 느낌이 크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세월을 간접적으로 겪게 하면서, 삶이 힘들 때에도 무너지지 않고 견디는 방법을 보여주는 느낌이라 철학책같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이런 일은 겪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때 느꼈던 감정들은 흐릿해져 그 시간이 잘 기억나지 않기도 한다. 그러면서 ’난 그 일을 겪지 않았더라도 지금처럼 살텐데.‘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은 없어진 게 아니다. 그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지금의 ‘나’가 만들어 진 것이다. 나의 일부가 되어 함께 앞으로의 시간을 보내는 내 시간들. 형체를 느낄 수 없지만 과거의 시간이 팔을 어루만지면서 지금 겪는 힘든 시간은 견딜 수 있어, 라며 응원을 보내는 것 같다.
문장을 곱씹으며 천천히 읽고 싶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나가 경선의 속도에 발맞춰 시나브로 걸어가는 것처럼 , 책을 통해 그들의 시간을 함께 읽어나가고 싶어진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겪는 노화를 혐오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는 것 같다. 조용하고 담담한 문장들로 쓰인 책이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다. 은희경 작가님 특유의 담담한 문체가, 조용히 나에게 위로를 보내는 듯 하다. 눅눅한 공기가 가득한 지금, 여름밤의 계절감에 어울리는 책을 읽고 싶다면 ’시간의 감촉’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