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고요한 어둠을 지나 살아보자. 결코 혼자가 아니기에, 함께 살아보자.

말라가의 밤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말라가의 밤

깊고 고요한 어둠을 지나 살아보자. 결코 혼자가 아니기에, 함께 살아보자.

서평에 앞서 자살이라는 트리거 워닝이 있으니, 트라우마가 있으신 분은 서평 읽으시는 데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줄거리

엄마와 동생 은우의 동반 자살 이후, 혼자 남겨진 형우는 트럭에서 살며 전국을 떠돈다. 프리다이빙 선수였던 아빠도 바다에서 목숨을 잃고, 엄마와 은우도 울릉도 가는 배에서 동반 자살을 했기에 형우는 바다를 궁금해한다. 어느 날, 바다에서 프리다이빙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고, 그들을 따라 다니다 프리다이빙을 경험하게 된다. 그 후, 충동적으로 바다에 몸을 던진 형우는 어느 무인도에서 눈을 뜨고 어린 시절의 자신들을 만난다. 아홉 살의 형우, 열 아홉 살의 형우, 스물 아홉 살의 형우와 차례로 만나며 예전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프리다이빙 선수였다는 어머니의 말을 의심하게 된다. 아버지는 어떠한 이유로 목숨을 잃게 된 것일까? 그리고 형우는 다른 가족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읽어보고 직접 그 결말을 알아보시길 바란다.

서평

읽으면서 많이도 울었다. 자살 사별자의 삶을 그린 책은 흔치 않아서 생소하기도 했지만, 덤덤하게 서술된 문체가 오히려 더 서글프게 느껴졌다. 책의 뒷표지에 적힌 추천사 중 ‘너무 슬픈 소설을 읽고 나면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문장이 너무 공감갔다. 어떻게 하면 실례되지 않고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을까, 하는 수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모든 시기의 형우들이 각자가 선택했던 삶을 다시 바라보며, 모든 형우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소설은 형우의 삶만 유달리 애달프게 그리지 않는다. 프리다이빙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짤막하게 소개하면서 너만 그러고 사는 거 아니다라 말한다. 자살 사별자들의 모임인 프리다이빙 모임은 각자가 사별로 인한 슬픔을 어떻게 이겨내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각자의 슬픔으로 불행 배틀하듯 토해내지도 않고, 그냥 같이 살아보자는 말을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온몸으로 말한다. 그러니 살아보자고, 삶의 이유를 찾지 말고, 내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를 찾지 말고 그냥 하루하루 눈뜨면 일어나고 밤이 되면 자고 단순하게 살아보자 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조차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모두가 잘 알기에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보다 함께 있어주는 것으로 그렇게 말을 전한다.

작가의 말에서 이런 문장이 있다. ‘살다가 숨이 쉬어지지 않는 날에는 당신이 당신을 꼭 안아주면 좋겠다. 구와 일구와 이구와 삼구가 서로를 안아주었듯이. 잠시 숨을 참더라도, 결국엔 수면으로 상승해 회복 호흡을 하면 좋겠다.’ 살면서 힘든 날이 있으면 잠시 가라앉아도 된다. 다시 올라오면 되니까. 올라와서 충분회 회복 호흡을 하고 다시 헤엄치면 된다.

인상 깊었던 문장

“우리,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 말자. 결말을 알 수 없는 게 살아 있는 이들의 삶이라면, 결말은 알고 있되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게 스스로 떠난 이들의 삶이니까. 결코 다 알 수 없지……. 죽음의 원인에서 내 탓을 찾지도 말고, 죽음으로 그의 삶을 미화하거나 왜곡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기억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면 한낮에 나가서 나무들 아래 서는 거야. 매일 번지는 징글징글한 초록들, 그 징그러운 생명력. 그런데 나무 아래 서 있으면 그 생명력이 나한테도 스며드는 것 같아서. 살라고, 숨 쉬라고, 나뭇잎들이 사각사각 속삭이는 것 같아서.

추천

소설이지만, 소재가 무거운 만큼 긴 호흡을 가지고 읽는 게 좋은 소설이다. 먹먹한 마음을 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하는 생각으로 쓴 서평인데 그 마음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이 서평을 읽는 사람들이 모두 ‘말라가의 밤’을 읽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