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미에르 피플 -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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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피플


‘서른 번의 힌트‘로 먼저 접해본 장강명 작가님의 글은 단편인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흡인력이 있어 작가님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하니포터 11기로 먼저 만나게 된 ‘뤼미에르 피플‘. 이미 나왔던 책을 약간 다듬어서 나온 개정판으로, 뤼미에르 빌딩의 801호부터 810호 이야기를 다룬 연작소설이다.

801호부터 810호까지의 이야기 중에서 온전한 인간들이 나오는 단편은 거의 없다. 성적인 소재를 사용하거나 논란이 될 만한 표현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기괴하고 찜찜했다. 이 책의 인간군상을 보면 악인이지만 법에 저촉될 정도는 아니면서 주위에 있을 수도 있는 다양한 인간들이 나온다. 그리고 다양한 동물들도 나온다. 다른 책들과 다른 부분이라면 이 동물들의 시점에서 서술된다는 부분이다. ‘807호 피 흘리는 눈‘은 눈에서 피가 난다는 이유로 버림받은 고양이가 길거리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일을 고양이 시점에서 서술하는데, 고양이의 감정이 서술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파양된 뒤 벌어지는 일들을 고양이 시점에서 보면 참 안쓰럽다. 게다가 키우던 반려 고양이를 버린 뒤 새로운 품종묘를 구매하는 데 거리낌 없는 사람이 나오는데, 읽다 보면 인간이 가장 무섭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다.

가장 기괴했던 단편은 ‘808호, 쥐들의 지하 왕국‘이다. 반서반인들이 세상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쥐와 인간의 혼종들이 인간 세상을 돌아다니는 이야기다. 약간의 스포를 하자면 이 키메라들의 어머니는 자신이 낳은 자식과 인간을 잡아먹은 뒤, 출산을 통해 인간에 가까운 혼종을 만드는 게 목표다. 인간을 잡아먹는 장면이나 출산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상상하게 된다. 이 키메라들이 더 끔찍한지, 그들을 멸시하는 인간들이 더 끔찍한지, 애초에 둘 사이에 구분이 존재한 건지.

읽고 나서 이렇게까지 찝찝하고 끝맛이 쓴 책은 처음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나오는 캐릭터들 중 가장 인간답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은 책에서 희망을 말한다. 등장인물들은 어느 누구도 완전한 인간일 수 없고, 동시에 완전한 괴물도 아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정상성에서 한참 벗어난 인물들이다. 박쥐 인간이거나, 갑자기 전신마비가 되어 꼼짝 못하는 일중독자, 돈다발로 맞으면서 빚을 차감하는 체납자 등을 보면 판타지같다가도 어느 순간 현실과 맞닿아 있는 걸 느낀다.

특히 돈다발로 맞으면서 빚을 차감하는 부분을 읽다 보면 나라도 저걸 선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독특한 연출이라 공감할 만한 게, 책이 두 단으로 나뉘어져 서술되어 있는데 빚쟁이 ’정민’과 재벌인 ‘정민‘의 이야기다. 같은 이름이지만 현실은 완전히 다르기에 더 괴리감이 느껴지는 듯 하다. 자본주의의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는 듯 해서, 읽고 난뒤 뒷맛이 가장 씁쓸했던 단편이기도 하다.

읽는 동안 인간은 ꖶዞ 살아가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정상성에서 벗어난 사람은 무시하고 조롱받는 게 당연한 건지, 그 정상성이라는 것은 누가 정하는 건지. 어떤 게 진짜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게 사람다운 건지 등등 생각 근육을 키우는 질문을 하게 되고 나름의 생각을 정립하게 된다. 단순한 소설이지만 그 안에서 수많은 질문을 꺼낼 수 있게 하는 ’뤼미에르 피플’. 10년도 전인 2012년에 이런 생각을 하셨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져서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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