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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해변의 무무 씨 - 그리고 소설가 조해진의 수요일 ㅣ 다소 시리즈 1
조해진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9월
평점 :
다산북스에서 새로 나온 다소 시리즈는 일반 책보다 다이어리에 가까운 느낌이 들어요. 표지의 사진, 책의 판형, 두께와 PVC 커버에 있는 키링 고리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다이어리 같죠. 책 표지에는 책마다 다른 번호가 찍힌 책갈피가 있어, 따로 책갈피를 챙기지 않아도 돼서 더 편리해요. 책갈피에는 소설 속의 문장을 요일별로 어울리는 문장들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뭔가 서점에서 파는 똑같은 책이지만 나만의 책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더 특별한 기분이 들어요. 게다가 무게까지 가벼워서 이동시간이 긴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가볍게 읽기 좋아요. 그렇지만 가벼운 외형과 달리 ‘여름밤 해변의 무무씨’ 내용은 가볍지 않습니다.
은희는 암이 재발하여 병원에 입원하려 하지만, 키우는 고양이들이 마음에 걸려 대신 집에 살면서 돌봐줄 사람을 구하고 있습니다. 마침 동료인 동준의 지인인 수연이 그 조건을 수락하여 은희의 집에 들어와서 고양이를 돌보기로 하죠. 은희는 병원에 들어가 입원실에서 생활하며 전 집주인이던 무무씨와 집의 고양이들을 그리워합니다. 병동을 빠져나와 정처없이 걷던 은희는 그제서야 수연을 마주치게 됩니다.
책의 등장인물들은 각자 저마다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은희와 무무씨, 그리고 고양이인 양평이와 오모리가 보여주는 사랑, 수연, 동준, 병실 사람들까지. 무무씨와 보낸 시간을 은희 씨가 서술하는데 그 담담함에서 보여지는 사랑과 아픔이 너무 현실적이었어요. 연인을 연인이라 말하지도 못하고, 마지막을 제대로 보내주지도 못한 채 갑작스레 맞이한, 영원한 이별이 너무 아파보였죠. 너무 아파서 오히려 담담해보이는 것 같더라고요.
제목이 왜 ‘여름밤 해변의 무무씨’일까 궁금해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의 제목은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끝나가는 여름밤의 축축하면서도 선선한 그 공기가 담뿍 느껴지는 책이라 페이지를 넘길수록 책을 보내기 아쉬워지더라구요. 결말까지 다 읽은 뒤, 수록된 소설가의 일기를 보면서 내적 친밀감이 한층 향상된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은 뒤 독자의 소감과 완독 날짜, 읽은 이를 기록하는 게 책을 완성시키는 거죠. 소설과 작가의 일기까지 읽은 뒤 독자가 완성시키는 책이라니,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특별한 경험을 해서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여름의 끝자락에 어울리는 책을 읽어서, 이번 여름은 이 책으로 기억될 것 같네요.
열대야를 맞은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갈 곳이 분명해 보이는 그들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한 사람은 나뿐이란 생각이 들자 처음의 호기는 금세 사라지고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p.103
무무씨를 다시 만난다면 나는 말하고 싶었따. 당신이 떠난 뒤 해변이 더 좋아졌다고, 왜냐하면 해변은 바다의 입구이고 바닷속엔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심연이 있으니까. 누구라도 해변을 통해 완전한 절멸이 가능한 심연까지 도달할 수 있을 테니까. -p.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