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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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모든 사회적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이를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할 시간을 가지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주인공 ‘장‘은 은행에서 대출 승인 업무를 주로 하는데, 오래된 연인과의 결혼은 무산된 채 신혼집에서 산다. 그러던 중 ‘말뚝들‘이 밀려드는 뉴스 보도가 계속되고, 정부는 말뚝들 근처에 가지 말 것을 종용한다. 어느 날, 장은 ’트렁크에 넣어뒀습니다’라는 쪽지를 받아 자신의 트렁크를 열던 중 그대로 24시간 동안 납치당한다. 돌아온 뒤 장은 친한 동료의 불륜남으로 오해받는 등 사소한 불행을 계속 경험하다가, 자신의 집 거실에 생겨난 말뚝을 발견한다. 장은 그 말뚝을 어디에도 신고하지 않고, 집에 돌아와서 말뚝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일상을 맞이한다. 말뚝들은 해변에서 광장으로, 광장에서 집안으로 점점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말뚝들 때문에 계엄령이 선포된다. 한편, 장의 집에 있는 말뚝이 1호 말뚝임을 눈치챈 사람이 생기고 집에 있는 말뚝을 신고하지 않으면 체포한다는 포고령이 떨어진다. 장은 과연 집에 있는 말뚝을 잘 보내줄 수 있을까?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장의 납치 이유나 말뚝들이 생겨난 원인들이 더이상 궁금하지 않아진다. 말뚝들을 보고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사람들처럼 ‘말뚝들’에 나온 모든 사회적 죽음에 대해 함께 애도하게 된다.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제주항공 참사 등 모든 사회적 재난에 대해서 우리는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내가 겪지도 않은 일을 애도하는 게 유난이다, 그렇게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냐는 등의 주변 반응 때문에 슬퍼하고 애도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러한 우울감을 억누르고 슬픔을 애써 참으려 하며 회피한다. 말뚝들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 생겨났다. 어디에서 나타난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말뚝들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안전 사고로 인해 죽은 사람, 참사로 인해 죽은 사람들, 50만원을 대출받지 못해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사람 등 이미 죽은 사람들이 말뚝들로 나타난다. 말뚝들은 전부 눈을 감고 평온해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이런 말뚝들을 보고 운다.

모든 사회적 재난은 우리 삶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언제든지 내가 당할 수 있는 사고니까, 우리는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 일이 아니니까, 내 주변 사람의 일이 아니니까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이런 참사는 갑자기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필‘ 내가 겪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사고가 일어난 데에는 항상 원인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도 이런 사고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세월 동안 책임지지 않는 참사를 수없이 봤다. 피로 만든 빵, 압사 사고, 안전 사고는 수없이 많이 일어났지만 발뺌하며 사고일 뿐이다는 말로 일축한다. 사고 규명 조사를 확실하게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책임을 묻고 원인을 알아내려 하는 것인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회피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말뚝들’에서 사람들이 말뚝들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지난 참사들을 충분히 애도하고 슬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회피한다고 해서, 덮는다고 해서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충분히 슬펴하고 사고를 직면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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