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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7월
평점 :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책 뒷 표지 날개를 보면 정명원 작가의 전 작품인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을 소개하는 문구가 강력하다. 문구를 그대로 인용하자면, 유시민 작가가 윤석열에게 추천하는 단 한 권의 책. ’’사람다운 마음을 가진 검사가 어떻게 일하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사실 이 문구와 유퀴즈에 출연하셨던 경력(?) 때문에 흥미가 가서 서평을 신청하여 읽게 되었다.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은 작가님이 약 20년 동안 근속하고 계시는 검사로 일하시면서 만난 여러 사건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다룬 책이다. 사건을 소개한다기보다, 사건에 얽힌 사람들을 소개하는 느낌으로 신원이 특정되지 않게 쓰시려 고심한 게 보였다. 작가님의 글을 읽다 보면, 누구보다 인간의 바닥까지 볼 수 있는 직업인데도 불구하고 인류애를 잃지 않으신 게 보여서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나도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지만, 여러 인간 군상을 보며 인류애를 잃어가고 있는데 약 20년을 근속하신 작가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려 노력하시는 게 보였다.
작가님의 인류애를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은 책 초반에 있는 ’존속살해예비죄가 품고 있는 세계‘ 에피소드였다. 직계 가족인 아버지 살해미수로 그친 사건인데, 그 사건의 피고인인 아들과 남은 가족들에 쓰신 글을 읽으면서 함께 살아가야 할 가족들까지 고려해서 형을 결정하고 재판을 준비하시는구나를 느꼈다. 읽으면서 당연히 아버지를 살해하려 한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사건 너머 자신을 말려주길 바라는 아들의 마음까지 읽은 뒤 죄명을 바꾸신 부분에서 작가님의 마음이 보였다. 단순히 유죄, 무제로 판결하는 게 아니라 법 너머 사람들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보여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다.
작가님이 에피소드별로 사건을 쓰시는데, 그 사건의 결말은 서술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그러나 사건의 결말은 주제와 관련이 없기에 굳이 적지 않으신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사건들만 적혀 있는 게 아니라, 여성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글도 있어서 좋았다. 가장 딱딱한 체계를 갖췄다는 법조계에서 느꼈을 직장인으로서의 고단함과 여성으로서의 외로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일을 직면하려는 강단이 보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이 선배 여성으로서의 길을 제시한 것 같아 마음에 발자국이 많이 남았다.
사실 검사라는 직업은 우리가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직업이기에 공감할 만한 글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 너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글로 옮긴 거라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비슷한 결로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디즈니플러스에 있는 드라마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제목이 된 책이다. 그 책을 재밌게 읽었다면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또한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 대한 인류애를 충전하고 싶으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