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서 거장의 클래식 5
천쉐 지음, 김태성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절판 후 복간된 첫 소설집이면서, 여성들을 묘사한 것 때문에 금서로 지정되기까지 한 책이라니 너무 흥미로워서 서평단을 신청하게 되었다. 읽기 전, 천쉐 작가님에 대해 찾아보니 대만 최초로 동성혼에 성공한 인물로 사랑과 글쓰기를 동의어라 말하는 분이다. 이런 사람이 쓰는 글은 어떤 글일지 궁금해서 단숨에 읽어 내렸다.

네 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소설집인데, 여성 간의 사랑을 굉장히 에로틱하게 그려낸 작품들이다. 퀴어 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의 사랑을 굉장히 아름답고 애틋하게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전혀 아니다. 여성들의 사랑을 아주 질척하고 성애적인 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들이 사랑을 하다 보면 플라토닉한 사랑을 할 수도 있고, 에로틱한 사랑을 할 수도 있다. 여성 간의 사랑도 이성애자들의 사랑과 다르지 않음을 굉장히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읽으며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퀴어가 꼭 플라토닉할 필요는 없고 사랑을 나눌 때의 모습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줘서 신선했다.

‘악녀서‘에 수록된 네 작품의 여성들은 서로 다른 상처를 안고 있다. 소설이라 해서 동성 간의 사랑이 특별하게 잘 받아들여지는 배경이 아니다. 현실과 비슷하게 동성 간의 사랑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다른 사람과 다른 생각을 하면 배척당하는 사회 안에서, 주인공들은 타인의 시선과 자신으로부터 오는 괴리감 때문에 괴로워하고 상처받는다. 그 상처를 연인을 만나 성교를 하는 과정에서 치유받고 위로받아, 자신의 상처를 직면한다. 어떤 이들은 동성애를 죄악이라 여기며, 터부시한다. 이런 이들이 만연한 사회이기에 악녀서의 주인공들은 여성에게 끌리는 자신을 숨기고 싶어하며 그 애정과 정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랑은 악한 것이 아니며 그들은 단지 사랑을 하고 있는 것 뿐이다. 사랑을 하는 이들이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악녀‘라 부를 수 없다. 이 소설이 30년 전에 쓰였는데 30년 전에는 사회의 시선이 동성애를 죄악으로 여겼다면, 지금의 대만은 동성혼이 합법인 나라다. 30년 후에는 우리 나라도 동성혼이 합법이 될 수도 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느리지만 천천히 긍정적으로 나타나는 만큼, 기대해볼 수도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악녀서‘는 금서로 여겨졌던 소설인 만큼 성교 묘사가 적나라하고 그게 글의 주제를 나타내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들은 그저 사랑을 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사랑을 하는 모든 이가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