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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날들
조 앤 비어드 지음, 장현희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축제의 날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속독하는 속도가 꽤 빠르다고 생각하는데도 절대 빨리 읽을 수 없었다.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으며 읽게 되는 매력이 있어 더디게 읽었는데, 그게 절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김겨울 작가의 추천사대로 ‘버릴 문장이 없다’. ‘축제의 날들’은 에세이와 소설이 혼재된 9편의 단편인데, 읽다 보면 어떤 게 에세이고 어떤 게 소설인지 알 수가 없다. 픽션과 논픽션의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정교하게 쓴 글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셰리’다.
‘셰리’는 암 환자로, 항암 치료가 너무 고통스러워 견디기 어렵다는 사실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털어놓는다. 셰리는 항암 치료를 중단하고 크리스마스는 지난 뒤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 셰리의 딸과 친구, 남편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만 체감은 하지 못한 채로 셰리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한다. 자신의 마지막 장소로 한 호텔을 지정하지만, 호텔에서는 셰리의 숙박을 허용하지 않고 결국 셰리는 케보키언 박사가 진행하는 안락사를 통해 삶을 끝낸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미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죽음이 다가온다는 두려움과 고통밖에 없는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두려움, 그리고 삶이 끝나기 직전의 감정을 이렇게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가 없다. 그리고 오롯이 셰리의 시점으로 진행되다 보니, 셰리의 가족들에게 느끼는 미안하면서도 빨리 끝내고 싶은 미묘한 감정의 묘사가 사람을 자꾸만 울컥하게 만든다. 그 때문에 더더욱 빨리 읽을 수가 없는 것 같다. 작가의 필력이 독자마저도 셰리를 지켜보는 지인으로 만들어서 이 소설의 끝을 보고 싶지 않게 느끼도록 한다. 그럼에도 죽음은 언제나 있기에, 독자는 소설의 끝을 결국은 보게 만들고 셰리의 가족과 함께 눈물짓는다.
죽음이란 무엇이기에, 사람을 이렇게 슬프게 만드는 걸까.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전부 ‘상실’이라는 소재로 쓴 글들이다. 자신의 죽음이기도 하고, 반려묘의 죽음이기도 하며 단절된 관계를 그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독자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가?’
‘삶을 지속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며,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완벽한 답을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정답은 없는 질문이고,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살아가면서 고민을 할 때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것인지 방향성을 생각할 때마다 혼란스럽지 않도록 미리 생각해야 한다. 내가 나의 삶을 정하기 전에 방향성을 잃어버리면, 심연에 빠져 나오지 못할 수도 있기에.
‘축제의 날들’은 현실과 과거의 시점이 뒤섞이기도 하고, 화자의 시선이 아무 곳이나 가는 것을 문장으로 따라가다 보니 내가 무엇을 읽은 것인지 헷갈려서 앞서 읽은 문장들을 다시 읽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렇지만 절대 어려운 책은 아니다.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다 보면 울컥하는 마음과 삶에 대한 고찰을 경험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이 가장 맞닿아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고스란히 내보이면서도, 그 고통과 상실, 슬픔이 눈물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터져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감정들을 처음 느끼게 하는 책이라 재독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듯 하다. 읽을 때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할 것 같아 선선한 가을날 밤에 다시금 읽어보고 싶다. 처음 접해보는 구성을 쓰는 작가라, 아는 맛이 아닌 처음 보는 맛을 접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