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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집
정보라 지음 / 열림원 / 2025년 5월
평점 :
아이들의 집
국가에서 아이들을 함께 보육하는 게 당연한 시대. 아이들은 부모의 소득이 많건 적건 ‘아이들의 집’에서 지낼 수 있으며, 아이가 원하면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이들의 집’에서 지낼 수 있다. 아이를 키울 집은 무조건 국가에서 제공하며, 무정형은 집이 아이 양육에 적합한지를 조사하는 조사관이다. 어느 날, 무정형은 ‘아이들의 집’에서 가끔 보던 색종이가 죽은 집을 조사하고 그 곳에서 귀신을 본다. 귀신의 정체와 색종이가 죽은 이유는 무엇인지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읽으면서 우리나라 형제의 집 사건이 떠올랐다. 88올림픽 당시, 깨끗한 거리를 만들고 싶어했던 당시 대통령과 사회 문화가 맞물려 거리의 노숙자들과 고아들을 전부 시설에 가둔 사건이다. 시설에 아이를 많이 입소시켜 실적을 올리는 게 중요했던 사람들은, 고아든 아니든 전부 시설로 데려갔다. 거리에 돌아다니던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부모와 생이별하여 해외로 입양되거나 노동력 착취를 당하며 자랐다. 아이들을 사람으로 본 것이 아니라 지원금 받을 머릿수로 본 것이다.
현재의 돌봄 문제와도 많이 닿아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물가는 갈수록 천정부지로 치솟고, 부모는 일하느라 바빠서 아이를 양육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늘봄에 아이를 맡기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외로워진다. 모든 책임을 가정이나 늘봄에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먼저 가정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부모의 양육 시간을 법적으로 보호해주는 제도가 있어야, 직장에서 눈치 보지 않고 제때 퇴근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의 힘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귀가하여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할 수 있는 환경 조선이 우선이다.
아이들은 부모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지 않으면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어른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래서 부모는 그 권리를 휘두르며,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 버려지기 싫으니까. 부모는 아이를 자신의 대용품이나 도구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모든 부모에게는 아이가 있지만, 모든 아이에게는 부모가 있지 않다. 부모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정보라 작가님 특유의 문체와 기묘한 분위기 덕분에 읽는 내내 긴장하며 읽었다. 나는 무정형이 아닌데, 마치 소설 안에서 귀신을 본 것처럼 내내 긴장했다. 또한 작가님의 서술이 참 담백해서 좋았다. 덕분에 상세한 피해자의 고통 묘사와 지나치게 사실적인 학대의 증거에 눈살을 찌뿌리며 읽지 않아도 되어 다행으로 여겼다. 피해자의 고통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으시는 작가님이 참 좋다. 작가님의 모든 글을 좋아하지만, 이 책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이 인상깊었다. 사회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시면서, 그걸 윤리적으로 문제되지 않도록 글을 쓰시는 고민의 흔적이 보여서 작가의 말을 계속 곱씹게 되었다. 6월에 많은 책들을 읽었고, 아직 6월이 많이 남았지만, 감히 이번 달 최고의 도서라 꼽아 본다. 미혼, 기혼 상관없이 세상 모든 분들이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