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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 : 숲속에는 축복이 ㅣ 림LIM 젊은 작가 소설집 5
남궁지혜 외 지음, 전승민 해설 / 열림원 / 2025년 3월
평점 :
6명의 젊은 작가들의 단편 소설집인 림 웹진. 받자마자 단숨에 읽어서 2시간 만에 완독했다. 이미 이상 문학상, 현대 문학상을 읽으며 단편소설집이 재밌을 수도 있구나를 느껴 단편소설집 수집에 한창이던 내게 림 웹진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걸어오던 ‘LIM: 숲속에는 축복이’ 서평단을 신청했는데, 감사하게도 선정이 되어 받은 후 2시간만에 완독했다. 개중에는 불호인 작품도 있지만 이건 개인 취향의 문제라 가장 좋았던 작품인 ‘팔뚝의 노릇’을 중심으로 서평을 쓰겠다.
<팔뚝의 노릇>
선양은 후배 제형과 결혼한 기선을 도와, 제형의 서프라이즈 선물로 줄 원목 선반을 조립한다. 팔에 깁스를 한 기선은, 선반 조립을 주도하던 선양이 남편 제형에 대한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자 자신도 이 원목 선반을 사용할 것이라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선양은 중학생 때부터 붙어다니던 시절과 현재 기혼인 기선, 그리고 독립하여 비혼 생활 중인 자신을 떠올린다. 며칠 후, 제형의 SNS에는 아내로부터 선물받았다며 위스키 병을 잔뜩 넣은 원목 선반을 자랑하는 게시글이 올라온다. 얼마 뒤 기선은 깁스를 풀었다며 선양에게 같이 카페를 가자고 권한다. 먼저 도착한 기선을 발견한 선양은, 기선이 제형과 통화하며 짜증내는 걸 발견하고 마음 속으로 또 제형을 못마땅해한다. 선양은 안부 인사를 전하듯 기선에게 잘 지내냐는 말을 하지만 기선은 그 말을 되돌려주며 제형과 자신의 관계, 그리고 선양의 관계를 감싸안는다. 비가 한참동안 와서 데리러 온 제형과 함께 기선은 떠난다. 선양은 비가 멈출 때까지 한참 카페에 앉아 있는다.
서평
여성이라면 한번쯤은 고민해 봤을 주제라 흥미롭게 읽었다. 단짝인 친구가 갑작스레 결혼을 하고 남편과 오붓하게 인생이라는 길을 향해 걷는 걸 보며,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드는 ‘선양’의 마음이 너무나도 이해가 갔다. 내 친구를 데려갔으면 상대가 누구든 당연히 내 친구한테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이 기저에 깔리기 마련이다. 친구가 아까워서 괜히 친구에게 툴툴대는 것도, 그 마음을 친구에게 들켜서 어색해지는 것도 공감이 갔다.
사랑의 형태가 꼭 연애나 결혼 같은 성애적 감정만 있는 건 아니니까. ‘내’ 단짝이라는 같은 성애적 소유욕과 내가 더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데 하는 이유 모를 질투심과 혼자 남겨진 듯한 허망함을 모두 합쳐보면 이것도 사랑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기선은 선택을 했고, 선양은 그런 친구의 선택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설령 후회를 하더라도 그것은 온전히 기선의 몫이므로. 친구들이 하나 둘씩 결혼을 하는 지금, 함께 우산을 쓰며 팔짱을 껴서 부딪히던 나와 친구의 팔뚝이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 나이가 되었다. 친구야. 잘 지내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진심으로 너가 항상 행복하길 바라. 결혼 축하해.
서평단으로 읽은 뒤 가장 좋았던 단편 1개만 소개했지만 다른 단편도 재미있다. 특히 표제작인 ‘숲속에는 축복이’는 표제작인 데는 이유가 있음을 보여주듯, ‘안아키 부모를 둔 자녀의 이야기’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독특한 관점으로 풀어내서 재밌었다. 한 번 소설집을 읽어보고 취향인 작가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을 듯 하다. 또한, 소설집에서 이 단편을 재밌게 읽었다면 최근 출간된 ‘여자의 우정은 첫사랑이다’도 읽어보시는 걸 권한다.
손도 아픈 애가 뭔 서프라이즈를 한다고 고생을 자처하는지. 1층, 2층, 3층, 4층, 5층…… 둘의 보금자리를 손끝으로 세며 선양은 그래도 잘 도와주고 오자고, 잘해 보자고 마음 먹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에도 내장 깊숙이 소화해야만 해낼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선양이 싹싹 비워 먹었다. -p.16/ 남궁지혜, 팔뚝의 노릇
언제부턴가 옅어진 머리색은 조명 아래 있으니 갈색을 띠기도 하고 검붉은 색을 띠기도 했다. 내 흑심은 닳아가고 있구나. 선양이 다 녹은 얼음물을 비웠다. 축축한 목이 간지러웠다.
같이 오래도록 씨발년이 되고 싶었는데. -p.20 /남궁지혜, 팔뚝의 노릇
기선의 말이 맞았다. 여전히 나는 너의 변명이었고 농담이었다. 단지 네가 선택한 건 더 견고해지기 위한 팔뚝의 노릇이었을 텐데. 그거면 되었지. 그런 너에게 우산을 씌워줄 인간이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이 뭐 그렇게 서러운 일이라고 나는, 나는……
선양은 비가 그칠 때까지 한참을 있었다. -p.31 / 남궁지혜, 팔뚝의 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