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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이클러 ㅣ 이기원 디스토피아 트릴로지
이기원 지음 / 마인드마크 / 2025년 5월
평점 :
이기원 작가의 디스토피아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프롤로그를 통해 이 소설의 배경을 알 수 있다. 이번 책을 더 잘 이해하려면 앞 두 작품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꼭 읽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보통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작품들과 차별성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인간이 죽고 난 후의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라면 다시 태어나는 환생이나 윤회 같은 사상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이 이야기에서는 책 제목 그대로 '인간의 몸을 재활용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죽음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생체 로봇이 되어버리는 인간의 이야기라니. 도대체 어떻게 풀어나갈지 감이 오지 않았다.
배경은 2120년, 유일하게 살아남은 도시 '서울'. 그곳에서 전국기업인연합(전기련)이 통치권을 가지고 철저한 계급사회를 구성한다. 계급은 영생을 누리는 1구역, 1구역의 보위만을 위한 하층민 2구역으로 나뉜다. 배경이 먼 미래인데 '인간'에 의해 계층이 분리되는 배경인 것이 오히려 새롭고 흥미로웠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2구역의 주민, 에르트직원인 동운이다. 동운이 췌장암 4기임을 알게 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의사는 동운에게 '리사이클러'에 지원하는 것이 어떠냐고 묻는다. 그는 충격을 받는다. 리사이클러라니.
리사이클러는 하층민의 몸을 재활용해 만든 생체 로봇이다. 인간의 외형은 가지고 있지만 뇌 속 칩에 저장된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감정과 의지 없이 명령에만 복종하는.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것. 동운은 리사이클러가 되기는 죽기보다 싫었으므로 자신의 병명을 숨기고 마약성 진통제에 의존한 채 일을 계속해 나간다.
동운이 할당받은 리사이클러 '기한'과의 만남은 동운의 과거를 다시 끄집어내어 괴롭게 만든다. 그럴수록 동운은 '삶'을 간절하게 원하고 인간으로 살고 싶은 갈망이 강해진다.
계층이 나누어진 삶에 저항하는 세력도 등장한다. 기존의 질서에 반항하며 강력하게 도전하는 이들을 말하는 콜필드. 그들은 스스로 '콜필드'라 자칭한다.
사실 배경을 알고 보면 이야기는 어렵지 않고 단순한 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던져지는 질문이 있다. '만약 죽음이 없다면.' 영생을 가지는 1구역 사람들과, 재활용되는 인생의 2구역 사람들.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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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니 책 띠지에 있던 '영상화 확정'이라는 글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이 이야기는 책으로 글로도 다양한 시선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하지만 영상으로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찾아왔다. 그리고 전작들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탄탄한 배경이 있기에 이야기가 확장될 요소들이 많아 보여 더욱 기대가 된다.
인간이 사회 시스템의 소모품으로 전락한 세상의 모습을 보고 싶은, 그리고 SF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재수 옴 붙은 날이지.
끔찍한 꿈에서 본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수 옴 붙은 날이었습니다.
자신을 올려다보며 말했던 기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 그런 날이었겠네! 완전 재수 옴 붙은 날.
- P134
전기련은 리사이클러를 유토피아에서 새로운 삶을 얻은 존재처럼 홍보하곤 했지만 그걸 곧이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노동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정받은 장애인, 시한부 환자, 뇌사자 등을 재료로 삼았다.
‘너의 뼈가 사라져도 채무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전기련의 압박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리사이클러가 되는 것에 동의했다. - P37
"3유닛에 왔다는 게 이것들이군."
…
욕설과 함께 리사이클러의 무릎을 걷어차고 가슴팍에 주먹을 날리는 직원도 있었다.
- P29
"어떤 의미에선 그것도 살아 있는 거잖아요. 죽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겠습니까?" - P27
"우린 통조림이 아니다! 모두 고약한 악몽에서 깨어나라! 탐욕으로 가득한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려와라!"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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