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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깨달음 - 하버드에서의 출가 그 후 10년
혜민 (慧敏)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5월
평점 :
프롤로그(7쪽)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의 무게 중심은 ‘하버드’가 아니라 젊은 날의 ‘깨달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제를 단 출판사의 고뇌를 이해하기란 우리의 학력지상주의 사회현실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은 결론이다. 비록 하버드대 입학성공기나 아이비리그로 가기 위한 비법(?)들은 없지만, 그보다 더 향기롭고 가치있는 저자의 수행일기가 에세이 형식으로 조용한 울림으로 파고든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에서 종교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 석사를 수학하던 중 출가를 해 승려가 된 저자는 프린스턴 대학원에서 박사공부 중 유학생활의 경험을 포함한 출가 후 10년 동안의 일상과 미 동북부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햄프셔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느낀 소회들을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전하고 있다. 하버드를 통한 최고의 가르침은 친구 존의 보이지 않는 선행을 통한 것이었다는 고백과 함께...
19세기 독일의 저명한 종교학자 막스 뮐러의 “하나만 알고 있다는 것은 그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 것”이라는 말을 인용(206쪽)하면서 폭넓은 사고와 경험을 통한 통찰능력을 강조하고 있으며, 더불어 “영어를 마스터 하는 것은 마치 도(道)를 닦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일본의 스즈키 순류의 말을 인용(20쪽)하면서 하나를 제대로 아는 길도 결코 순탄치 않음을 자신의 ‘경복궁 영어’ 경험을 통해 소개하면서 문화의 이해(19쪽)에 우선적인 방점을 두고 있다.
독종만이 살아 남는 전투적 사회의 현실을 안타까워 하면서,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꿈보다는 지금 당장 실현가능한 주변의 행복에 더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 볼 것을 권하고 있다.(41쪽) 지금 이 순간 주변을 살피면서 조건없이 나누어 줄 때 행복이 바로 나와 같이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런 까닭일까. 저자가 자신의 무의식으로 직감적으로 알아 본 전생의 은인같은 어느 스님과의 만남이라는 인연(32쪽)은...
저자는 겉으로 화려한 장미꽃 같은 사람과 내적으로 굳건한 소나무 같은 사람을 구분하면서(44쪽), 3일을 넘기기 힘든 장미의 화려함보다는 사시사철 변하지 않고 넉넉한 그늘을 제공하는 소나무와 같은 사람이 좋다(47쪽)고 한다. 어찌보면 3일을 꽃피우기 위한 장미의 인욕의 시간과 사시사철 푸르기 위한 소나무의 지계가 어떤 차이를 가지는 것일까 의문이지만, 나 역시 겉으로 화려한 장미보다는 일관된 소나무에 가깝고 싶다는 분별이 있는 것 같아 조심스럽긴 하다.
법화경 비유품의 ‘불타는 아이들’을 거론하며(57쪽) 어른들의 치기어린 어리석음도 경계의 대상이라 하였으며, 이삿짐을 싸는 친구의 ‘트럭 속 10년 인생’과 함께 모든 것은 항상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 시작이 좋은 인연보다는 끝이 좋은 인연이 참으로 좋은 인연이라 하면서 불교의 무시무종(無始無終)을 언급하며 늘 새로운 인연을 위한 아름다운 마무리의 중요성을 또한 강조하고 있다.(66쪽)
중국 유학시절 도난당한 자전거의 원인은 탐심을 자극한 자신에게 있다(72쪽)고 하면서 부실한 열쇠를 탓하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볼 것을 지적한다. 미국 교육의 경쟁력은 공정한 장학금 집행 등 배분적 정의에 비교적 충실하려는 제도와 토론중심과 사고력배양에 초점을 둔 내실있는 교육정책의 결과라고 하면서 다양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풍토를 부러워하고 있다.(110쪽~115쪽)
사랑이란 중생 본래의 성질인 본인 위주의 이기적 마음이 어떤 대상을 통해서 최소화되었을 때 겪게 되는 마음의 상태(125쪽)라고 정의하면서,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존경하는 마음을 더불어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134쪽)고 한다. 어쨌든 사랑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날 문득 손님과 같이 찾아오는 생의 가장 귀중한 선물(127쪽)이라고 아울러 전하고 있다. 사랑도 상대방을 위해 베푸는 마음이 앞서야 하는 지혜를 강조한 뜻이리라.
초등학교시절 어느 선생님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139쪽)을 키워주시고, 믿음과 희망을 가게 한 칭찬 한마디의 힘(141쪽)을 갖게 해주었음을 언급하면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소한 원인으로도 크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전하고 있다. 아울러 심리적으로 매우 민감한 버튼을 누를 때(push the button) 격렬한 반응의 원인은 집착이며, 그 집착의 근원은 공포라고 한다.(221쪽)
세상의 모든 물체는 일정한 진동수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공명의 원칙’을 강조하면서(231쪽),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채우고 완성하는데 보탬이 될 수도 있으며(237쪽), 미리 어떤 선입관을 갖고 일을 행할 때는 ‘아난다의 오류’(241쪽)와 같은 간격이 있을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남과 나의 경계가 사라지고 다른 사람의 공덕이 나의 공덕이 되며, 남이 지은 공덕을 같이 기뻐할 수 있는 보현보살의 수희공덕의 원(242쪽)을 더불어 강조한다.
화엄경에 의하면 ‘회향’이란 “중생들에게 모든 공덕을 돌려 중생들에게 일어날 온갖 나쁜 일의 문을 모두 닫아 버리고 열반에 이르는 바른 길을 활짝 열어 보인다.”는 뜻(251쪽)이라고 하면서, 남을 돕겠다는 마음이 결국은 본인부터 돕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믿음을 강조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는 일은 자신을 살피는 일이며 결국 보살행이란 누구보다 자신을 구제하는 가장 빠른 길임을 거듭 강조하는 의미일 것이리라.
깨달음은 빠를수록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이란 한 생각 깨쳤는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 빠르고 늦는 것은 크게 상관없는 일일 것이리라. 개인적으로는 비록 더 이상 신체적 젊음을 이야기하기에는 늦은 입장이지만, 저자의 소중한 젊은 날의 깨달음의 기록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구도의 고뇌와 환희를 공유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늘 길 위에서 정신적 젊음으로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