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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스의 신화 - 교양사상신서 13
알베르 까뮈 지음 / 육문사 / 1990년 11월
평점 :
절판
“그의 운명은 그의 소유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은, 자신의 고통을 응시할 때, 모든 우상들을 침묵케 한다.”(시지프스의 신화, 163쪽)
모든 우상들까지도 침묵케 하는 그 치열한 고통의 응시는 신의 행위인가? 인간의 행위인가? 인간의 행위라면, 누구나 그런 확고부동한 응시가 가능할 것인가?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개인의 운명인가? 새로운‘신을 창조하는 행위’인 것은 아닌가?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에는 인간적인 기원이 있음을 확신하면서, 몹시 보길 원하지만 그 밤엔 끝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눈먼 사람인 그는 여전히 바위를 굴려 올리고 있다. 바위는 여전히 굴러 내리고 있다.”(시지프스의 신화, 164쪽)
그가 갈망하고자 했던 것은‘성실히 반항’하는 인간 승리의 모습이었던가? 비록 어찌할 수없음을 알아차리더라도 그 속에 갇힌 듯 행복하게 체념(?)할 수 밖에 없는 ‘운명 속의 삶’은 결코 알을 깰 수는 없는 것인가? 깨어서는 안되는 것인가? 어느 정도까지만 손상시킬 수 있는 것인가?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나머지 시간의 영역들은 온전할 것인가?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다시 반항하는 것인가? 반항하면 더 행복해지는 것인가? 그냥 반항할 뿐인 ‘삶 자체’인 것인가? 좀 더 나은 방법으로 반항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산 꼭대기를 향한 그 투쟁 자체가 한 인간의 가슴을 채우기에 충분하다.”(시지프스의 신화, 164쪽)
한 인간의 가슴 속에는 산 꼭대기를 향한 그 투쟁말고는 어떤 것도 허용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불필요한 것인가? 투쟁 속의 고통까지도 ‘삶 자체’임을 알아차리라는 뜻인가? 그런 괴로움과 아름다움이 함께 있는 것이 ‘삶’임을 알라는 것인가?
“오늘날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궁극적으로 아름다움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헬레네의 추방,236쪽)
자유를 위해 투쟁하다 좌절한 사람들은 자유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길을 떠난 것인가? 아니면 잃어버린 자유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 것인가? 그들의 길은 어디까지 아름다운 것인가?
“결국 배타적이 되도록 강요하는 것 치고 진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립된 아름다움은 억지 웃음을 웃는 것으로 끝나고, 고독한 정의는 억압으로 끝난다.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한 사람만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에게도,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봉사하지 못하고,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불공평함을 두 번 저지르게 된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고집 때문에 아무것도 더 이상 의문을 일으키지 않고, 모르는 것이 없고, 한가지 일만을 거듭해서 다시 시작하는 것에 온 생애를 기울이게 된다. 그것은 추방의 날들이며, 메마른 삶, 죽은 영혼의 날들이다.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어떤 특별한 은총 ․ 자기 망각, 혹은 고향 땅이 필요하다. 어느 아침, 한 모퉁이를 돌 때, 환희의 이슬방울이 가슴에 떨어졌다가는 이윽고 증발한다. 그러나 그 서늘함은 남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가슴이 언제나 필요로 하는 것이다. 나는 다시 출발해야만 했다.”(티파사로 돌아오다, 242쪽)
공평한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인간은 관계 속에서 정의되어야 하는 것인가? 개인의 고독은 어떤 죄인가? 고향 땅이 없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안식을 구할 것인가? 환희의 이슬방울이 떠나간 자리, 그 서늘함을 맛보기 위해 늘 길 위에 있어야 하는가?
“우리의 광기어린 그 최악의 세월 속에서도 그 하늘의 기억이 결코 나를 떠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고서, 나는 나의 행운을 헤아려 보았다. 결국 내가 절망하지 않도록 막아 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티파사로 돌아오다, 246쪽)
시지프스가 굴러 내려온 돌을 주저없이 다시 밀어 올릴 때에도 그와 같은 행운인 ‘하늘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려오는 길에 그런 하늘을 본 것이었을까? 아무튼 그런 ‘빛’들이,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불행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반항의 의지’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괴로움과 아름다움에 동시에 봉사’(예술가와 그의 시대, 256쪽)하는 예술가들의 위대함으로 인하여‘정글의 미래’는 앞으로도 계속 희망적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