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의 노래 ㅣ 당그래 젊은 시인선 9
허영선 지음 / 당그래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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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처럼 나의 자유는

허영선 지음/ 청하, 1983년

 

내가 아직 들풀이었을 때

벌판은 쏟아져 강으로 흐르고,

흘러서 나의 자유는

탓할 것 없었네

 

철든 바람과도 입맞추고

목화처럼 번져,

하늘이 강물로 풀려서,

흘러서 돌아오는 강가에 서서

나의 자유는

오랭캐꽃

 

미나리아재비

민들레 씨앗으로 날아오르던

내 살점의 꽃들

 

예감하는

소금기로도 남아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0여년이 지난 시절이었을 거다. 고등학교 시절에 국어과 교생선생님이 추천해주셔서 만나게 된 시인이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 시절의 교생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대학교를 다니시면서 교생실습을 나온 선생님은 여러 가지 의미로 우리의 궁금증과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셨다. 뭐랄까…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담임 선생님과의 간극을 메워주셨다고 할까…

그때의 국어 교생선생님은 자율학습 시간 등을 활용해 우리가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주셨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듯, 첫사랑은 해보셨어요? 첫키스는요?  등의 짖궂은 질문에도 웃으시며 답을 해주시곤 했는데… 무엇보다 그 선생님을 잊을 수 없는 건, 그런 재미있는 얘기뿜남 아니라 가끔씩 좋은 시를 읊어주시기도 하고 감명깊게 읽으신 책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달여 동안의 교생 실습시간에 정말 많은 시와 책들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그 많은 소개 중에 난 무슨 연유에서인지 허영선의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 이란 이 시를 그렇게 좋아했다. 이 시가 너무나 좋아 수첩에 이 시를 베껴 다니며 틈만 나면 보아, 어느 순간에 거의 욀 지경이었다.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도 이 시를 베껴서 보내곤 했다. 

편지라…        지금이야 문자메시지로 빠르게 전송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해, 손으로 글을 써서 보내는 편지가 너무나 낯설겠지만 예전에는 그랬다. 구할 수 있는 문구 중 가장 이쁜 편지지를 골라 나름 예쁘게 꾸며 친구에게 보내는 것이 즐거움이었던 시절. 이모티콘으로 글을 써서 보내는 지금은 절대 느낄 수 없는 느낌.

 

내가 아직 들풀이었을 때

벌판은 쏟아져 강으로 흐르고,

흘러서 나의 자유는

탓할 것 없었네

 

무엇 때문에 이 시가 그토록 내 가슴에 맺혔을까?… 

아마도, 고등학교 교실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있는 현실을, 거부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오히려 영혼이라도 자유로울 수 있길 바랬을까?

어디로 갈지 모르는 흔들리는 청춘이 탓할 것 없을 만큼의 자유로움이 서로 융화되어 완벽을 이루는 그 느낌이 좋았을까?

어쩜 그 완벽함을 이루던 혼연의 느낌도 시간이, 세월이 흐르면 삶의 여러 굴곡을 지나 짭짤한 소금기처럼 느껴지는 신산한 삶이라는 걸 그 나이에 벌써 깨달아서였을까?

도대체 이 시의 어떤 대목이 그렇게도 절절하게 와 닿아서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이 시를 기억하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누구나 그렇듯이 예민하게 보낸 사춘기 시절의 억압(?)과 이유 모를 분노, 또는 서글픔 등의 복합적인 마음이 많이 투영되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사춘기가 나름 무던한 시절이었다고 말하기보다, 친구들과 비교해도 유독 자신의 청춘이 가장 유별났다고, 가장 절망적이었다고, 가장 서러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 시절을 가장 그리워하며 추억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가장 서러웠던 시절이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는 가장 빛났던 청춘이었지 않을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불안함과 서러움과 절망감이 그 시절의 마음 한구석을 또아리 틀고 있었던 것 같다.

아침이 밝아오기 전의 새벽이 가장 어둡듯이, 가장 절망적으로, 저 밑바닥까지 내려가봐야만 다시 비상(飛上)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이유를 알지 못하는 힘듦에 상처받고 괴로워하던 그 시절이, 수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오히려 가장 잊혀지지 않는 빛났던 시절이지 않았을까…

시집을 꺼내 읽은 지가 언제이더라…. 하기야 지금은 시집을 잘 사지 않고, 더구나 시도 잘 읽지 않는데… 새삼스레 옛날 질풍노도의 한 시절, 나의 영혼과 정신의 흔들림을 곁에서  고스란히 지켜본 이 시집을 꺼내 새삼스레 추억에 취해볼꺼나…***

허영선은 1957년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대를 나왔고 1980년 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81년 제주신문사에 입사, 1989년까지 문화부 기자를 지냈다. 1990년 제민일보 창간 멤버로 시작해 문화부장, 편집부국장을 역임했다. 1983년 시집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청하),  2003년 문화칼럼집 <섬, 기억의 바람>을 출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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