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없는 세상 - 개정판
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 최재천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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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인류세(世)’로 부를 수 있을 만큼 인류는 지구상의 어떤 종보다 지구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이 힘을 통해 지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최근 읽었던 ‘오리진’이라는 책을 통해 오히려 지구가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왔다는 견해를 읽고 놀라웠던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지구의 시간 중 인간이 살고 있는 시간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고, 잠시 머무르는 것일 뿐이라는 말에 큰 공감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인간 없는 세상’은 이런 생각에 더욱 확신을 들게 하는 훌륭한 책이다. 인류는 자신들이 사라진 이후 황폐화된 지구를 떠올리기 쉽지만 지구는 우리의 염려와 달리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지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라질 뿐이라는 사실을 이 책에서 저자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방대한 자료와 실제 지역의 사례 등을 통해 깨닫게 해준다. 더불어 우리로 하여금 죄책감이나 공포에 사로잡혀 환경을 보호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원래 모습에 대한 애착과 열정을 담아 우리에게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이끈다. 과학적이면서도 저자 특유의 재치 넘치고 정감 있는 화법을 통해 친근하고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책은 ‘우리 모두가 느닷없이 사라져 버린 뒤의 세상을 상상해 보자는 것이다.’라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지구에서 현재 상태 그대로 우리 인류만 쏙 빼버린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은 흔히 소설이나 영화 등의 매체에서 흔히 사용되는 소재이지만 사실 지극히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크게 4가지 테마로 진행되는데, 현재의 인류는 이미 고도로 발전된 문명에서 자라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인간 이전의 세상은 어땠을까. 유럽에는 거의 유일하게 남은 원시림을 볼 수 있는 비아워비에자 숲에는 우리가 흔히 관리하는 숲의 모습과는 다른 점을 볼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엔 지저분해보일 수 있지만 생물학적 다양성을 제공하는 수없이 오랜 기간 동안 쌓아온 죽은 것들 덕분이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자연 상태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본다는 건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이 원래 지구의 모습이 아닐까. 인간이 관리하지 않아야 더 ‘자연’스러운 지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개발하고 발명한 것들에 의해 변해버린 자연의 모습에서 생각보다 인간은 빠르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범위까지 지금까지의 자연과 다른 영향을 주고 있고 이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는 것. 자연 상태로의 교류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고 배려 없이 이루어진 생태계의 교류는 고스란히 지구의 자연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우리 인류가 이루어놓은 거대하면서도 찬란한 문명이 사실 인간이 사라지고 나면 꽤나 빠른 시간 안에 사라지고 그 어디에도 우리가 살았다는 흔적이 없어진다는 점이었다. 불가사의라 불릴 만큼 인간의 엄청난 노력과 기술이 투여된 건축물도 대도시의 고층빌딩이나 복잡한 지하철 등도 겨우 1세기만 지나도 대부분이 원래의 지구 자연 상태로 돌아간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잠시 지구에 머무를 뿐인 존재라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지구와 함께 살아가는 생물들을 무시할 수 없으며 우리가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지구에 대한 고마움도 함께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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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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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찾는 건 그 육체가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가장 생생하고 충실하게 기억하는 물건이야.

그게 없으면 살아온 세월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리는 그 무엇,

죽음의 완결을 영원히 저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이지.



  박물관 기사인 주인공은 여지껏 다양한 수장품을 모아 수많은 박물관을 설계하고 개관해왔다. 이번에 그에게 박물관을 세워주기를 부탁한 의뢰인은 어느 거대한 저택에 사는 괴팍한 노파다. 노파가 있는 고즈넉하고 조용한 마을에 도착한 그는 비로소 노파가 자신에게 맡기려고 하는 박물관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침묵 박물관', 마을 사람들의 유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이었다.


  노파는 그에게 자신이 평생을 바쳐 모아 온 물건들을 보여준다. 마을에서 죽은 사람이라면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유품을 수집했다고 한다. 그것도 하나같이 단순한 유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생생하게 상징하는 물건들이다. 아사한 화가가 마지막 힘을 짜내어 핥아먹은 물감, 불법 수술을 해 온 외과 의사의 메스, 사후 화장된 매춘부의 몸 속에서 발견된 피임링…. 모든 유품에는 사연이 담겨있었고, 노파는 그 모든 사연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잠시 혼란스러워했으나 이내 자신의 임무를 받아들인다. 노파의 수양딸인 소녀와 저택의 정원사,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박물관 개관 작업을 시작한다. 수장품을 분류하고 정리하며, 마을에 새로 누군가가 죽으면 노파 대신 유품을 수집하는 일까지, 바쁜 일상을 보내던 중 마을에서 기괴하게 사체를 훼손하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심지어 마을의 광장을 폭파하는 테러까지 일어나 소녀가 다치는 일까지 일어나며, 저택에는 긴장감이 감돌게 된다.


  초반만 해도 고요하면서 온화하게 느껴지던 이 소설은 뒤로 갈수록 그로테스크하고 뒤틀린 분위기를 풍긴다.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드러나고 어딘가 위화감이 들던 마을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충격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 마을의 특산품이자 기념품인, 속이 들여다보이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유리로 만들어진 알 공예품과 같은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침묵 박물관」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유명한 오가와 요코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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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 스케치 핸드북 : 태블릿 드로잉 어반 스케치 핸드북
우마 켈커 지음, 허보미 옮김 / EJONG(이종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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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설명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로 완성되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영감의

커닝페이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블릿 하나만 들고 도시 곳곳을 여행하며 스케치하는 기쁨을 알려줄 한 권의 책, '어반 스케치 핸드북'이다. 남편에게 기념일 선물로 비싼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을 받았는데, 야심차게 프로크리에이트 어플도 깔아놓고서는 삶에 치이며 바쁘다는 핑계로 드로잉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묵혀놓은 아이패드에 대한 아까움만 가득하던 때에 이 명료하고 감각적인 핸드북을 접하게 되었다.


우선 이 핸드북은 이런 분들께 추천하지 않는다.


1. 태블릿 드로잉을 처음 시작했다.

2. 드로잉의 초보적인 단계에서 여러 실제적인 팁을 원한다.

3. 드로잉 어플에 대한 상세한 조작 설명이 필요하다.


이 책은 위의 인용구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입문자들을 위한 설명서가 아니다. 그렇다보니 태블릿을 이제 막 장만한 분들이 연습을 위해 이 책을 보게 된다면 '이걸 보고 드로잉을 바로 하라고?' 하며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태블릿으로 드로잉을 이미 해 본 분들, 나의 드로잉에 좀 더 다양한 기술을 접목해보고 싶은 분들,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드로잉을 참고해 예술적인 아이디어를 얻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작가는 아이패드의 어플인 프로크리에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법을 알려준다. 예를 들면 수면에 반사된 무언가를 표현하는 방법, 텍스처로 물체의 질감을 표현하는 방법 같은 것들이다. 기법을 사용했을 때 어떤 그림이 되는지 알기 쉽도록 실제 여러 드로잉 작가들의 작품을 실어놓은 부분이 좋았다.




아, 이렇게도 그릴 수 있구나! 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드로잉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그만큼 드로잉 작가분들의 예시 자료도 굉장히 풍부하게 실려있다.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어떤 영감을 얻기에는 정말 좋은 책이다. 총 6권의 스케치 핸드북 시리즈 중 이 책이 유일한 태블릿 드로잉 핸드북이던데, 손그림에도 흥미가 있어 나머지 5권의 책에도 어떤 팁들이 숨겨져있을지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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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양의 마음
설재인 지음 / 시공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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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생의 첫 어른이자 가장 큰 어른에게 상처받은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서 치료받아야 하나?

열다섯 살 유주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폭압적인 아버지와 피해의식에 절어있는 어머니, 그리고 넉넉하지 못한 가정환경. 유주는 어릴 적 계곡에서 놀다 물에 빠진 적이 있다. 한 남자가 유주를 구해준 후 돌연사한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유주의 엄마는 뱃속의 아들을 잃었다. 할머니와 엄마는 유주를 종종 ‘동생 잡아먹은 년’이라고 부른다. 아프지 않은데도 유주는 물에 빠진 날 이후로 발뒤꿈치를 절었고, 학교에서의 별명은 절름발이가 되었다.

유주와 같은 학교, 열다섯 살 상미도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독선적인 부모님은 세상이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않다고 여긴다. 부족한 게 없으면 아이가 오만하게 자란다며, 성장과정에는 결핍이 많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상미에게 툭하면 돈 타령을 하며 손찌검을 하고, 쉰내 나는 밥을 먹이거나 굶긴다. 어릴 적 상미는 버스터미널에서 모르는 여자에게 유괴당할 뻔한 적이 있다. 차라리 그 때 그 여자를 따라갔더라면, 하는 후회가 늘 상미를 쫓아다닌다.

서로의 존재도 모르던 두 아이는 여름방학이 시작되며 갈 곳을 잃고, 동네 도서관에서 각자 어떻게든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한 아줌마가 점심을 같이 먹지 않겠냐며 두 아이에게 말을 건다. 유주는 선뜻 아줌마를 따라가고, 얻어먹기 싫었던 자존심 강한 상미는 거절한다. 그러나 아줌마는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나타나 점심을 먹자고 한다. 그렇게 얼떨결에 세 사람은 방학동안 매일 함께 밥을 먹게 되고, 두 아이는 점점 그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저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굶으며 지내던 앤데요.

저분이 점심을 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웃게 해줬다면요.

그러면 누가 진짜로 제 보호자인 거죠?

아줌마, 진영에게도 가슴속 깊은 곳에 역시 유년시절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남아있다. 또한 두 아이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고 알릴 수도 없었던 어떤 비밀 역시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비밀은 누구보다 가까워진 세 사람의 행복한 유대 끝에 결국 잔인하게 밝혀진다. 그리고 세 사람의 마음은 각자의 모양으로 움직이며 상처받고, 용서를 빌고, 차가운 분노로 타오르게 된다.

혈연, 핏줄, 내 새끼.

어떻게 자아를 가진 대상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

핏줄이란 이름의 환상은 굴레를 만드는 것일까.

가족이란 울타리에 속하지 않은 타인은 그저 완벽한 타인일 뿐이라는 인식.

나를 가장 사랑해주어야 할 부모에게 외려 버림받고 아파하며, 나이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늘 마음을 아리게 만든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 상처는 결코 낫지 않으며 오래도록 아이들을 괴롭힐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아이들과, 그런 아이가 자란 진영, 세 인물의 감정을 몹시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회에서 방치된 이들이 보여주는 유대와 치유는 그래서 더 따뜻하고, 상처받은 독자들로 하여금 읽으며 위로받게 만든다.

이야기 속 갈등은 어쩔 도리없이 폭발하고, 그들만의 행복한 시간은 깨어지고 말지만, 그 갈등이 단순히 ‘난 당신을 사랑하고 믿어요!’ 하며 아름답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감명깊다. 현실의 어떤 상처도, 갈등도, 그런 식으로 처리되지 않는다. 누구나 오랫동안 마음껏 앓고 앓은 결과 상처가 옅어지고, 죄책감을 이겨내고, 용서할 결심을 해내는 법이니까. 그런 모습들을 잘 보여주는 맑은 성장소설이어서 참 좋았다.

이 책이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니 놀랍다. 앞으로 설재인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신작을 기다려볼 만한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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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아이도 즐거운 이유식 다이어리
소유진 지음 / 길벗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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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은 아기가 태어나서 젖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하는 '식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들에게 있어서 이유식이란 정말 중요한 듯하다. 더군다나 신생아 때 먹었던 이유식으로 인해 식습관이 결정될 수도 있다고 하니, 이유식에 많은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요즘은 인터넷으로나 집 밖 반찬가게에서나 이유식을 예전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이다. 음식의 질도 괜찮고 집에서 직접 하는 것에 비해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다고 한다. 사실 이유식을 매일 만든다는 것자체가 육아에 있어 큰 부담이다. 게다가 어떤 것을 먹여야 할지, 어떻게 먹여야 할지 분유나 모유보다 훨씬 까다롭게 고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모들이 시판 이유식보다 직접 만든 이유식을 선호하는 이유는, 내 아이의 첫 식사를 내 손으로 함께 준비해주고 싶어서가 아닐까.

이 책은 그런 부모들을 위한 이유식 다이어리이다. 배우 소유진의 이유식 경험이 담긴 책인데, 알고 보니 이미 이유식 레시피 서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다고 한다.



먼저 책에는 이유식에 대한 핵심 정보들이 정리되어있다. 시기별 이유식의 특징, 월령별 식재료, 영양 정보 등 이유식을 준비하며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내용들이다. 특히 숟가락에 담긴 재료의 사진을 보여주거나, '무른 밥 형태', '잔 알갱이가 있는 죽 형태' 등의 표현을 사용해서 이유식의 형태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나타낸 점이 좋았다.



처음 몇 페이지를 제외하고는 이유식 다이어리답게 데일리, 먼슬리 스케줄러로 구성되어있다. 어떤 식단을 먹었고, 섭취량은 얼마인지, 선호도는 어땠는지 등을 꼼꼼하게 체크할 수 있도록 되어있어서 매일매일 식단을 진행해가며 도움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유식 경험이 있는 부모들도, 이유식을 처음 접하는 부모들도 활용하기가 좋다는 것이다. 필수적 이유식 정보와 실용적 다이어리 부분이 잘 구성되어있어 활용도가 높아보인다. 이유식 레시피가 주로 실려있는 '엄마도 아이도 즐거운 이유식' 책과 세트라고 하는데, 두 권을 함께 사용할 때 가장 좋은 효과가 나타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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