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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원 - 꿈꿀수록 쓰라린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5월
평점 :
다다시는 여름방학이 끝난 지난 주말에도 집에 오지 않았다.
평범한 가정에서 사춘기를 맞아 요즘 좀 반항적인 아들, 다다시. 친구들과 외박하는 날도 잦아지고 얼굴에 멍까지 들어오더니 급기야 칼까지 사서 숨겨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우리가 바르게 키운 착한 아이이니 조금 지켜보자고 대수롭잖게 여기던 부모에게 닥친 현실은 다다시의 실종이었다. 그것도 살인사건에 연루된 실종사건. 다다시는 살인사건의 가해자로서 도피 중일 수도 있고, 살인사건의 피해자로서 어딘가에 죽어있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어도 끔찍하기만 할 이 사건의 결말을 두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염원이 엇갈린다. 평생 끔찍한 죄인으로 돌팔매질 당하더라도 아들이 살아서 돌아오길 바라는 어머니의 염원, 살인자일 바에야 차라리 떳떳하게 죽어서 돌아오길 바라는 아버지의 염원으로. 다다시는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작은 실마리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사건의 진상을 발견해나가는 일반적인 미스터리와는 달리, 이 소설은 그 어느것도 뚜렷이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실마리들도 명확하지 않다. 수사기밀이라며 입을 닫은 경찰, 인터넷에 떠도는 낭설들,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 기자들의 추측…. 도저히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뿌연 안개 속에서 절박한 마음에 어떤 소식이든 주워들으며 부부는 자신이 염원하는 대로 믿으려 발버둥친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단서들은 사건의 진상을 밝혀주는 장치가 아니다. 아들의 생존을 믿었다가, 아들의 결백을 믿었다가, 절망했다가, 희망을 보았다가, 갈팡질팡하며 요동치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치인 것이다.
슬픔은 사실이 확정된 즈음에 최고조에 달하고 이내 증식을 멈춘다. 슬픔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불안감이다. 가슴속에 똬리를 틀고 마음을 천 갈래 만 갈래 흐트러뜨리는 것은 슬픔의 사실이 베일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때 생기는 불안감이다.
나는 대개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면 셜록 홈즈가 된 것마냥 관망하는 마음으로 팔짱을 끼고 추리를 해가며 읽곤 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나는 홈즈가 될 수 없었다. 다다시의 아버지에 마음에 이입했다가도 어머니의 마음에 공감하며 스스로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내가 부모였다면 아들이 어느 쪽이길 바랐을까? 가해자와 피해자 중 어느 쪽도 섣불리 바라지 못하고 갈등하게 된 것은 아마 이 책의 심리 묘사가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의 독백을 읽는 것만으로도 아버지의 마음을, 어머니의 마음을 구석구석까지 치밀하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자를 이토록 몰입하게 만든 데에는 작가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음을, 책 끝에 실린 작가의 말을 보고 알게 되었다. 그는 '실제 인생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새로운 감정과 만나는 것도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해서, 부부의 복잡한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많이 고뇌했다고 한다. 역시 심리 미스터리의 대가구나, 하고 생각했다.
서평을 읽는 분들에게 스포일러가 될까 봐 결말은 언급할 수 없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결말 후에 완전히 바뀌어버린 부부의 마음도. 그것을 통해 작가가 드러내려고 한 메시지 또한 그랬다. 책 소개를 처음 접하고 책을 읽기 전까지는 과연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단순히 궁금해서 두근거리는 마음이었다가, 읽기 시작하면서는 진심으로 다다시가 가해자이기를, 피해자이기를 함께 바랐다. 그리고 끝내 결말이 난 뒤에도 쉽게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해 왔던 '염원'들을 돌이켜보고 곱씹어보면서 마음이 씁쓸해진다.
한 번 잡자마자 그 자리에서 3시간동안 곧바로 미친듯이 읽어내려간 책이다. 심리 묘사가 뛰어난 책을 좋아한다면 추천.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추천. 그냥 재미있는 책을 좋아한다면 추천.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아도 좋을 것 같다. 다다시가 어느 쪽이길 바랐는지, 왜 그랬는지, 어머니와 아버지 중 어느 쪽에 더 이입할 수 있었는지. 누구에게나 추천해주고픈 인상 깊은 미스터리를 만나 기분이 좋은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