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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피난소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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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어제와 다름없이 떠오른다는 것은 봄과 여름도 작년과 똑같이 돌아온다는 뜻일까.
세상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일까.
이곳의 참상이 어떠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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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키야 미우의 신작, ‘여자들의 피난소’는 대지진을 소재로 한 재난 소설이다. 일본 어딘가의 가상의 장소와 재난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읽다 보면 장면 하나하나가 일본 전체를 흔들었던 ‘동일본 대지진’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에게도 충격적이었던 그 자연재해는 수많은 일본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낫지 않을 생채기를 남겼을 것이다. 자연재해로 인한 재산과 인명 피해에서 오는 고통으로서도, 그리고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듯, 참상 속에서야 드러난 인간의 추악한 본성으로서도.
책장을 넘기자 첫 페이지부터 재난이 시작된다. 흔들리는 땅, 무너지는 건물들, 눈앞에서 시커멓게 다가오는 거대한 해일…. 사람들은 무너진 잔해를 붙잡고 버티며, 물살을 견디며,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지만, 너무나 많은 이들이 죽어 시신 안치소에는 몇백 구의 시체가 쌓이게 된다. 그리고 그 끔찍한 재해로부터 간신히 살아남은 세 명의 주인공인 후쿠코, 나기사, 도오노는 각각 정부가 마련한 피난소에 당도하여 만나게 된다.
후쿠코는 이미 장성한 두 아들을 도쿄로 보내고, 도박 중독에 무능력한 남편을 먹여 살리며 살아가는 중년 여성이다. 나기사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이혼한 탓에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하는, 아들 마사야를 데리고 있는 장년 여성이다. 도오노는 갓난아기의 엄마로, 시아버지와 시아주버니(남편의 형)를 모시고 있으며, 얼굴이 너무 예뻐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젊은 여성이다. ‘여자들의 피난소’라는 제목답게, 나기사의 아들 마사야를 제외하면 주인공이 모두 여성이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모인, 수백 명이 함께 자고 생활하는, 집처럼 편안해야 할 피난소의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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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러분, 잘 들으세요. 우리는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앞으로는 서로 협력해서 생활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모두 한마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따라서 서로 연대하고 친목을 도모합시다. 강한 연대감으로 이 상황을 이겨 나가도록 합시다.”
대체 무슨 말이야. 칸막이 소리는 어디로 가고,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칸막이 따위가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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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소의 대표로 추대된 이는 피난소에 칸막이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 말은, 아침에 눈을 떠서 잠이 들고 난 후까지, 하루종일, 낯선 사람들과 탁 트인 공간에서 자신의 사생활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목욕 시설도 없어 알코올 솜으로 몸을 닦아야 하는데 그마저도 할 수가 없다. 도오노는 늘 불편하게 담요로 몸을 가린 채 아기에게 수유를 해야 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8시가 되면 TV를 강제로 끄는 바람에 뉴스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화장실도 공용으로 사용하는 탓에 도오노가 남자들에게 납치될 뻔하는 일도 일어난다. 긴급 피임약이 필요한 사람은 찾아오라고 말하며, ‘남자들이란 원래 그런 동물이니까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도 여자들이 좀 참아달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에 누구도 제대로 반대하지 못한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나기사는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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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피난소에 온 뒤로 지친 머리 한구석에서 줄곧 무언가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가 이상한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이상하다.
너무나 가혹하게 생활하는 탓에 권리 의식을 야금야금 잃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기를 주장하는 감성이 약해진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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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나기사는 깨닫는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변화의 기점이 된 것은 슬픔이 분노로 변하는 순간이었으며, 그 분노가 에너지원이 되어 온몸에 기력이 넘치게 하였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이 상황을 타개해 보기로 결심하고, 행동에 옮긴다. 그 이후 피난소에는 칸막이가 배부되고, 여러 가지 건의사항이 받아들여지는 등 그나마 피난소의 환경이 나아지게 된다.
이대로 모두 행복하게 재난을 극복해낸다면 좋을 텐데, 뒤이어 이어지는 일들은 더 처참하다. 소설이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분노는 커지고 답답함은 쌓인다. 모든 것이 하나같이 엉망진창이라, 아니, 진짜로 이런 말을 한다고? 진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는 생각이 부글부글 인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너무 심했다고 생각하며 해설을 읽을 때, 실제 동일본 대지진 때의 다양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았다. 재난 의연금과 위로금이 별거 중인 남편에게 지급되는 바람에 지원을 받지 못한 가정폭력 피해자들, 가족적 분위기를 강조한 피난소 대표 탓에 수유할 공간조차 제공받지 못한 아기 엄마들, 아직까지도 본인의 계좌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여성들까지.
일본의 여성 인권이 굉장히 낮은 편이라는 것은 여기저기서 접하여 잘 알고 있었다. 생방송 도중 성추행을 당하고도 도리어 프로그램에서 하차당한 아나운서나, 여성은 멍청해야 매력적이라며 카메라 앞에서 거리낌 없이 말하는 일본인들이 떠올랐다. 작가는 그러한 일본 사회에 이 소설로서 대항하려 하는 것 같았다. 재해로 벌거벗겨진 채 무방비해진 공동체가 배경이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더욱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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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안 났으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 텐데.”
“하지만 피난소에서 생활할 때, 후쿠코 씨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어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인데, 싫어하는 남편과 죽을 때까지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요.”
“그래, 그랬지.”
“인생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건, 지진 해일 피해가 없었어도 누구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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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속의 여성들은 각자가 처해 있는 입장에서 각자의 역할(아내, 엄마, 며느리)을 순종적으로 인내하길 강요받다가, 대지진을 기점으로 인생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다. 극한 상황에서 목숨을 위협받고 나니 하루라도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 속 도오노의 말처럼,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것은 자연재해와 같은 엄청난 사건이 있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당연히 일어난다.
나기사가 그랬듯 분노는 인간에게 에너지를 주며, 그 힘으로 무언가를 바꾸게 한다. 작가는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은, 지금 평범한 시대를 살고 있는, 평생을 그렇게 살 것처럼 불행을 견뎌내고 있는 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언젠가 인생이 끝날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분노하라고, 분노하여 무언가를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갸우뚱하게 하는 대사들이나 불편한 장면들이 있었지만, 소설 마지막에 나오는 작가의 말과 해설을 읽고 일본의 실태를 대응해 보니 수긍이 되었다. 소설 속의 아주 평범한 그녀들이 용기를 내고 분노하여 결국 자신들의 삶을 일궈낸 것처럼, 그녀들과 비슷하게 아주 평범한 누군가들에게 이 소설이 변화를 위한 작은 신호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