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관 살인사건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8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강원주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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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독해력과 속독에 관해서는 자신이 있던 나였다. 여가 시간에는 틈틈이 추리소설을 읽기도 하였기에 별 생각없이 펼쳐들었던 이 책은 나에게 거대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눈은 글씨를 따라가고 있으나 머리가 내용을 미처 받아들이지 못하고 버벅댔다. 당황스러워서 책장을 잠시 덮었던 나는 다른 분들의 서평을 읽고 나서야 이 책의 명성을 알게 되었다.

일본 추리소설 사상 3대 기서(奇書),

추리소설 마니아를 지배하는 책,

추리소설 마니아가 정복해야 할 책

이 책의 배경은 후리야기 성관으로, 흑사병으로 사망한 이들의 시체를 넣어두던 관과 비슷하게 생긴 건물이어서 '흑사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워낙 음산하고 섬뜩하게 생긴 외관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언젠가 저 곳에서 무슨 공포스러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 여겼을 정도였다는데, 아니나다를까 이 곳에서 괴이한 변사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탐정 노리즈미를 비롯한 자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다른 추리소설들처럼 이 책 역시 흐름은 전형적이다. 사건이 일어난 뒤 등장한 명탐정이 현장을 조사하고 증인과 용의자들을 심문해가며, 결국에는 진상을 파헤쳐 하나 둘씩 비밀을 밝혀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특이한 점은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뿐만 아니라, 본인의 지식을 뽐내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학부터 시작하여 점성술, 암호학, 약학 등 미처 모두 다루기도 힘들 방대한 분야의 지식이 읽는 내내 쏟아지듯이 들이친다. 한치의 과장 없이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독자의 마음을 대변하듯 극중 등장인물조차 노리즈미 탐정에게 '그만 좀 하라'고 투덜댈 정도이다.

작가인 오구리 무시타로는 책을 광적으로 수집하는 것이 취미여서,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책 모으다 모두 탕진하였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정도로 책에 대한 집념을 지닌 작가여서 그런지, 그가 이 책 한 권에 담아놓은 온갖 기이한 지식들은 정말 광기가 느껴질 정도로 대단히 많고 깊다. 그 덕에 추리소설로서는 몹시 이례적으로, 장광설을 늘어놓는 탐정이 주인공인 이 책은 완독 포기자가 속출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듯이 장황하게 이어지는 각종 문장들만으로는 내용을 온전하기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며, 작가가 독자의 추리를 돕기 위해 곳곳에 사건의 트릭들을 그림으로 설명해두기도 하였으니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생각해보니 일본 공포게임 중 하나인 '괭이갈매기 울 적에'와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느꼈다. 음산한 배경, 살인에 쓰인 기괴한 트릭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듯한 작중의 공기 같은 것들이 그랬다. 이 유명하고도 난해한 게임을 즐겼던 분들이라면, 이 책에도 역시 도전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또한 추리소설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탐독하며 즐길 만하다. 오랜 독서 중에 만난 하나의 난관이랄까?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고 나면 독서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듯하다.

나는 아리송한 상태로 완독하고 나서야 차라리 처음부터 천천히 음미하며 읽을 걸, 하고 후회했다. 어정쩡하게 완독하는 바람에 결말은 결말대로 알아버렸고 책의 재미도 온전히 느끼지 못한 것 같아서였다. 이 책을 접하시는 전국의 추리소설 마니아분들께서는 부디, 아주 천천히, 이 책을 처음부터 음미하며 읽어주시길. 첫 장을 펼치기 전 완독을 위한 굳은 각오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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