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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을 착취하다 - 서민을 위한 대출인가 21세기형 고리대금업인가, 소액 금융의 배신
휴 싱클레어 지음, 이수경.이지연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국가가 만들어지고도 오랜 시간 동안 거래를 통한 이윤창출 행위는 특정 지역 내에서만 가능했다. 우리나라 역시 불과 백 몇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과 일본 정도를 제외한 다른 나라와의 교역은 없었고 대부분 경제행위는 나라 안에서만 일어났다. 여타 나라 역시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다. 지구가 좁다 싶을 정도로 어지럽게 일어나는 각종 경제활동이 시작된 것은 불과 100년이 되지 않는다. 통신, 교통, 과학기술, 인터넷 발전이 결합되면서 나라간, 기업간 거래량과 자본이동 속도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커지고 빨라졌다.

 

  문득, 경제와 자본을 생각한 적 있다. 거창한 건 아니고 돈은 어떤 방법을 통해 제 몸집을 불려나가는지에 대한 아주 단순하고 조잡한 생각이다. 아프리카나 제3세계처럼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지금의 지구촌 경제는 포화상태를 맞이하고 있다. 파이가 급격히 커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저마다 제로섬 게임을 통해 오늘은 얻었다가 내일은 잃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언젠가 지구촌 모든 지역이 온전히 개발 완료되는 순간이 오면 그 때는 어떻게 추가 수익 창출을 이뤄낼 수 있을까. 지구밖에서 거래하지 않는 한 마땅한 탈출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 <빈곤을 착취하다>를 읽고 나니 내가 참 어리석었구나 싶다. 아무리 경제가 포화상태에 놓이더라도 자본 입장에서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은 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놓쳤다. 자본에 대항하기엔 너무 약해 무기력하게 잡아먹힐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냥감 말이다. 대표 사냥감이 빈곤층이다.

 

  방글라데시 경제학자인 무함마드 유누스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소액금융 은행인 그라민은행을 설립해 빈곤을 타파해보려는 노력을 했을 때만 해도 소액금융제도는 하나의 신기원처럼 인식되었다. 실제로 그라민은행을 통해 대출받은 빈곤층들이 가난을 탈출하는 모습을 보고 세계 여러 국가에서 비슷한 모델의 은행을 설립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미소금융이라는 수상쩍은 이름의 소액금융재단이 만들어졌다.(누구를 미소짓게 했는지는 의문이다만.) 소액금융은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처럼 인식되었다. 가난을 극복하게 해줄 복음이었다. 소액금융은 그 자체로 지고의 선(善)이었기에 운영방법에 대한 어떤 의심도 불결한 것이었다. 자본은, 바로 그 지점에서, 소액금융 운영방식의 허술함 속에서 먹이감을 찾아냈다.

 

  소액금융대출을 원하는 자들은 지극히 가난하고, 신용은 불량하며, 담보도 부족해 제도권 금융 대출이 불가능한 사람들이다. 가장 대출이 필요한 자들이 가장 대출받기 어려운 자가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소액금융은행은 이들에게 소액의 대출을 지원한다. 대출자들은 그 돈을 밑천 삼아 빈곤을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한다.(기계를 사고, 물품을 구입하며, 가게를 임대한다.) 그리고 마침내 절대빈곤을 벗어나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만큼의 재무상태를 만든다. 이게 소액금융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이없게도, 소액을 빌려주다보니 빌려간 사람들도 어떻게든 그 빚을 갚는다. 차라리 거액을 빌려갔으면 부도라도 내겠지만 말이다. 소액금융을 이용하는 자들은 가난할 뿐 아니라 사회의 보호망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살아가다보니 억울해도 어디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이들이 태반이다. 이들에게 사채보다 더한 이율로 돈을 빌려주는 곳이 현실의 소액금융은행이다. 50~60%는 기본이고100%넘는 이자를 물리는 은행도 여럿이다. 그 빚을 갚기 위해 초등학생이 학교도 못 가고 밖에서 일을 하고 여자들은 몸을 판다. 심지어 채권추심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이들까지 속출한다. <빈곤을 착취하다>는 그 안타까운 현장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풀어낸다.

 

  선의를 가진 개인이나 단체, 혹은 재단법인은 그들의 자금을 운용할 소액금융펀드를 찾는다. 그렇게 자금을 끌어모은 펀드는 실제 자금을 운영할 소액금융은행을 찾아내 투자한다. 펀드가 투자할 은행을 선정할 때 고려하는 것은 그들의 선한 의도가 아니다. 모든 펀드가 그렇듯, 오로지 수익성이 은행을 선정하는 제1의 근거가 된다. 그럼 수익은 어디서 날까. 비싼 이율로 대출하고, 아주 싼 값으로 예금을 받으며 악착같은 채권 추심으로 채무불이행 대출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거기서 소액금융제도가 가진 취약점이 나타난다. 소액이긴 하나 대출자 규모가 워낙 거대해 소액금융분야는 어느새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해당분야 관련 전공과목까지 생겨날 정도다.(소액금융제도를 원 취지에 맞게 운영해보자는 과목은 절대 아니다. 어떻게 최대의 수익을 뽑아낼 수 있는지 연구하는 과목이다.) 선한의도로 시작했으나 가난한 자들에게 새로운 지옥문을 열어버린 소액금융제도의 어두운 부분을 신랄하게 파헤친 책이 <빈곤을 착취하다>이다.

 

  벼룩의 간을 내어먹는다는 말이 있다. 소액금융은행, 그들의 뒤에 서 있는 펀드와 재단들에 딱 들어맞는 속담이다. 가난한 자들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으로까지 불렸던 제도가 역으로 가난한 자들의 마지막 등골까지 뽑아먹는 아귀였다니, 믿기지 않는다. 자본이 깊숙히 개입하고 있는 한 하나의 제도는 결코 처음의 선한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자본은 하나만 생각한다. 제 스스로의 덩치를 키우는 것. <빈곤을 착취하다>를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정말 소름끼치는 책이다. 소신을 가지고 소액금융 제도가 가지고 있는 모든 악한 면을 신랄하게 파헤쳐 세상에 공개한 내부자인 저자의 용기가 정말 대단하다.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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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2 22: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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