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의 함정 - 중산층 가정의 위기와 그 대책
엘리자베스 워런, 아멜리아 워런 티아기 지음, 주익종 옮김 / 필맥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맞벌이가 대세다. 내 주위를 둘러봐도 외벌이 가정보다 맞벌이 가정이 더 많다. 나 역시 맞벌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어쩌다 맞벌이가 당연시되는 사회가 되었을까?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외벌이가 대부분이었고 맞벌이는 되려 특별한 경우로 취급받곤 했었는데 말이다. 이 책 <맞벌이의 함정>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한다. 또한 맞벌이 가정이 처한(혹은 처할 수 있는) 여러 위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미국의 이야기다. 그러나 곧 한국의 상황이기도 하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외벌이 가정이 다수였다. 남편은 경제를 책임지고 아내는 살림을 꾸려 나가는 것이 전형적인 가정의 생활패턴이었다. 지금은 반대가 되었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 맞벌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맞벌이를 하지 않고는 더이상 가계를 꾸려나가기 힘들게 되었다. 현 세대는 한 세대 전에 비해 교육수준도 높고 연봉도 많이 받는다. 더군다나 맞벌이로 인해 이중수입이 가능하니 전 세대에 비해 훨씬 풍요로워야 정상이다. 그럼에도 재정파탄으로 내몰리거나 저축을 거의 하지 못하고 빚이 늘어가는 삶에 허덕이는 맞벌이 가정이 많아지고 있다. 흔히 말하듯 이 사회가 과소비, 사치풍조에 물들어 무절제하게 흥청망청 써댄 결과 재정이 엉망이 되어버린 것일까. <맞벌이의 함정>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가계재정이 힘들어진 주 원인은 중산층으로 계속 살고 싶어하는 욕망에 충실하려 애썼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자녀교육문제, 가족안전문제가 있다.

 

  미국의 경우 공립초등학교 수준이 상당히 낮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질 낮고 가난한 아이들이 많이 가는 곳이 공립초등학교다. 심심찮게 총기난사 사고도 일어나곤 한다. 시내 치안도 불안하다. 마음놓고 거리를 활보하기 힘들다. 내 자녀만큼은 그런 불안한 환경속에서 교육시키고 싶지 않다고 판단한 많은 부모들은 형편이 허락하는 한 사립초등학교를 선택한다. 내 가족만큼은 평화로운 공간에서 지내게 하고 싶다는 욕망이 안전한 주거공간을 찾도록 부추긴다. 그렇게 시선을 교외로 이동시킨다. 안전한 사립초등학교, 평화로운 전원주택이 있는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교외에 살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문제는 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공급부족은 필연적으로 가격 상승을 초래한다. 부모들이 교외생활을 선호하게 되자 중산층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교외의 한적하고 안전한 주택가격이 치솟게 되었다. 지속적으로 오르는 주택가격은 급기야 외벌이 가장의 경제력만으로 구입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그에 따라 자연히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게 되었다.(물론 여성 교육수준 향상, 사회인식 변화 등도 한몫 했을 것이다.) 한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좋은 학군을 따라, 생활하기 편한 역세권을 따라 늘어선 아파트 가격은 평범한 가정이 감당하기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마음껏 외식하거나 명품 의류를 사거나, 고급 승용차를 굴리지 않는다. 마음 편하게 국내(외) 여행을 떠나지도 않는다. 한 달동안 결재되어 있는 카드금액 내역을 훑어봐도 딱히 과소비 한 부분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돈이 모이지 않는다. 부부의 공동 경제활동으로 수입이 두배인데도 생활비는 늘 부족하다. 가장 큰 요인은 주택구입(유지) 비용과 자녀교육에 너무 많은 재정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주택, 자녀교육 두가지는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기게 만드는 필수 요소다. 멋진 주변환경에 둘러쌓인 좋은 집에서, 넉넉히 투입된 교육비로 자녀가 부모보다 높은 수준의 삶을 살 가능성을 최대화시키는 것이야 말로 중산층 부부들의 로망 아닐까. 그 로망이 지속되는한, 그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한, 맞벌이 가정의 재정은 늘 위태할 수 밖에 없다. 적고 보니 나도 함정에 빠졌다는 걸 알겠다.

 

  아, 그리고, 제목 <맞벌이의 함정>을, 되려 외벌이 가정이 안전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분들을 위해 한마디 하자면, 외벌이 가정은 아예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외벌이 가정은 굳이 '함정'에 빠질 필요도 없다. 함정에 다가갈 수 조차 없으니 말이다. 맞벌이 부부가 그나마 중산층의 경계에서 버둥거리기라도 하는거라면, 잔인하지만, 외벌이 가정은 그냥 하층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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