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 - 뉴욕의 초정통파 유대인 공동체를 탈출하다
데버라 펠드먼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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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종교가 일종의 허구,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이라는 초월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윈의 진화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은 미생물로 시작해 영겁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환상적인 변이가 반복되어 만들어진 우연의 결정체라고 생각한다.

 

종교의 이름으로 끝없이 자행되는 패악질을 떠올려본다. 대다수 종교는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선한 기운으로 밝히고, 만물의 평화, 행복, 자유를 위해 힘써라 노래하지만 여기에는 괄호 하나가 빠져있다. ‘(내가 믿는 종교가 행하는 신성한 일은 제외하고)’, 라는 암묵적인 괄호.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권 탄압, 자유 침해, 고문, 약탈, 살인, 방화는 역사에서 수도 없이 반복됐다. 괄호의 힘이다. 모든 부조리는 종교의 이름으로, 그 종교가 믿는 신의 말씀으로 정당화된다. 개인의 윤리의식와 도덕심을 강화하고, 거친 세상에서 인간에게 마음의 안식과 평안함을 제공하는 종교의 순기능은 분명하지만, 빛에 대응하는 어둠처럼 악기능도 분명하다.

 

《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는 극단적 유대교 종파(사트마)를 믿는 공동체에서 나고 자란 주인공(데버라 펠드먼)이 공동체 울타리를 걷어 차고 세상밖으로 나오기까지의 일들을 세밀하게 기록해놓은 책이다. 저자는 유대인이다. 히틀러 시대의 노골적인 탄압이 아니더라도 유대인들은 오랜 기간 여러 민족으로부터 배척당하고 탄압당해왔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공동체가 믿는 유대교 사트마 종파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 외부와 소통하는 방법 대신 내부를 결속하고 공동체만으로 삶 전체를 꾸리는 방법을 택했다. 신체와 정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교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트마의 울타리를 건너가는 이들은 이단으로 불렸다. 저자는 공동체 안에서의 일상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우리 집안에서는 가족끼리 포옹이나 키스를 하지 않았다. 서로 칭찬하지도 않았다. 대신 우리는 서로를 면밀히 주시하면서 언제든지 누군가의 영적 결함이나 신체적 결점을 지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큰어머니는 바로 이것이 올바른 측은지심이라고 말했다.’

 

사트마 파는 구성원들의 개인 욕구를 최대한 억누르고, 생활 전반에 유무형의 단단한 벽을 둘러쳐 통제를 가했다. 종교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개인의 육체와 정신을 지배했다. 해도 되는 것보다 하면 안되는 것들로 가득한 교리는 모순이 가득했지만,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 신성에 대한 모독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이디시어로 쓰인 책만 읽기를 바라셨다. 전설적인 차딕이 기도와 신앙의 힘으로 뻔한 기적을 행하는 이야기가 20쪽쯤 이어지다가 촌스러운 삽화가 나오는 책 말이다.’

 

‘과거 유럽에서 할아버지의 가족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았다. 그들은 극단주의자가 아니었다. 나의 조상은 나무 마루에 페르시안 카펫을 깐 집에서 살던 지식인이었고 유럽대륙을 자유롭게 여행했다. 영어로 된 책을 읽거나 붉은색 옷을 입는 것을 금지한 사람도 지금의 렙베이다. 렙베는 우리가 외부와 동화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고립시켰다.’

 

‘할아버지는 영어는 영혼에 스며드는 독약이라고 말씀하셨다. 영어를 읽고 말할 때마다 영혼이 더럽혀져서 더 이상 신성함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신이 허락하신 우리 조상의 언어인 이디시어로만 말해야 한다고 고집하셨다. 하지만 이디시어는 독일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히브리어, 그 밖의 다양한 지역어가 섞인 언어의 잡탕이다. 이 중 대부분은 한 때 영어와 마찬가지로 세속적인 언어였다. 그런 이디시어가 어떻게 갑자기 순수하고 지당한 언어가 되었단 말인가.’

 

놀랍게도(혹은 당연하게도) 여기서도 여성은 훨씬 가혹한 억압의 대상이 된다. 오래된 옷을 입고, 머리는 삭발하고, 생면부지의 사람과 결혼을 하고, (종족보존 및 번영을 위해) 최대한 많은 아이를 낳아야 하는 등이다. 끝도 없는 집안일에 대한 전적인 의무는 덤이다. 저자는 불합리한 규제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억압을 견딜 수 없었고 어린 아이와 함께 그곳에서 빠져나온다.

 

이 책은 2020년 올해의 책이라 불려 마땅한 《배움의 발견》과 많은 부분 닮아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인간을 어디까지 가둬두고 억압할 수 있는지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단단한 자아로 억압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저자들의 용기있는 결단에 있어서도 그렇다. 저자는 필연적으로 울타리를 넘어섰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낯선 시작에 대한 두려움은 생각보다 큰 법이다. 통제와 억압에 맞서 용감히 자신의 선택을 한 저자의 앞날이 어떨지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적어도 그는 자유로울 것이다.(오랜 시간 통제와 억압의 대상이었던 유대인들이, 그들의 공동체 역시 통제와 억압의 방식으로 꾸려나간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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