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 - 버락 오바마 대통령 회고록 1
버락 H. 오바마 지음, 노승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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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양질의 음식을 충분히 먹을 수 있고 , 아프면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고, 하고자 한다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세상, 그런 곳이 제가 살아가는 세상이길 바랍니다.

- 그럼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게 무엇이든 제 직업입니다.

     

약속의 땅은 자신의 꿈에 대해 위와 같이 답할 사람, 어떻게든 세상을 한 뼘쯤 나아지게 만들고 싶었던 사람, 버락 오바마 전미 대통령의 자서전이다. 이 자서전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태어나 아시아와 하와이 등에서 성장해 세계대통령으로 불리는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첫 임기 3년여를 보낸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자라며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아버지는 그의 인생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인간의 선함이 결국 이긴다고 버락에게 늘 강조하는 분이었다. 하지만 버락은 달랐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데다, 여러 국가에서 성장한 까닭에 항상 떠도는 느낌을 받았던 그는 세상의 불공평함에 대해서도 일찍 깨닫고 있었다. 어머니가 뭐라고 주장하든, 남을 괴롭히고 속이고 잘난 체하는 이들은 승승장구하는 반면 어머니가 보기에 선량하고 예의 바른 이들은 큰 곤욕을 치렀다. 이 모든 경험은 나를 제각각의 방향으로 끌어당겼다.’

     

20대에 들어선 버락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다. 거창하지 않아도, 조금씩 지금 세상을 안전하고, 풍요로운 공간으로 옮겨 놓고 싶어했다. 우리는 잘 안다. 이런 꿈을 꾸는 자에게는 생각보다 세상이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마음 모퉁이에서는 멋지군감탄할 수 있어도 간단한 계산을 통해(세상이 돌아가는 냉정한 규칙을 통해) ‘저건 삽질이야손 쉽게 결론내린다는 것을. 어떤이는 망상이라 비꼬았을 거고, 어떤이는 허풍쟁이라 웃어댔을 것이다. 버락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인상 좀 펴고 살아 버락. 넌 너무 이상주의적이야. 대단한 일이지만, 네 말이 정말로 가능한지 모르겠어.‘ 나는 이런 목소리들에 저항했다. 그들이 옳다는 사실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본으로 대표되는 기업? 아니다. 단 번에 판을 엎어버리는 전쟁? 역시 아니다. 가장 가까운 답은 아마 정치일 것이다. 매일 여당, 야당 편 갈라 치고 받으며, 제 이권만을 위해 아귀다툼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한심한 정치가 가장 쉽고(?) 빠르게 세상을 바꾸는 마법의 도구다. 그러고 보면 버락이 정치에 입문하는 것은 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필연이었을 것이다. 풀뿌리 운동 활동가로 살아가다 숙명처럼 정치에 뛰어든 버락은 일리노이주 상원, 연방 상원을 거쳐 마침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것도 그의 40대를 마무리하기도 전에.

     

정치는 주고 받는 것이다. 약을 얻기 위해 독을 삼키기도 해야 한다. 큰 것을 얻기 위해 다른 큰 것을 내주기도 해야 한다. ‘그러라고 널 위해 운동한 것이 아닌데!!!’ 우리 편한테 흠씬 욕을 얻어먹을 각오도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이로운 법안이 (주고받다보니) 누더기가 되고, (또 주고받다보니) 악법이 계속 생명령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정치다. 일리노이주 상원 시절의 일화에 버락이 겪는 정치의 좋은 예가 나온다. 어느 날 내가 발의한 법안이 불쏘시개로 버려지고 나서 의사당 홀에 서 있는데 사람 좋은 로비스트 하나가 다가와 내게 팔을 둘렀다. “벽에 머리 찧는 짓은 그만둬요 버락. 여기서 살아남는 열쇠는 이것이 비즈니스라는 걸 이해하는 거에요 차를 파는 것처럼요. 길가 세탁소일 수도 있고요. 그 이상이라고 믿기 시작하면 미쳐버릴 거에요”’

     

정치는 돈이다. 정치인으로 세상에 나서기 위해서는 자본력은 필수다. 현재의 미국 정치인은 돈이 없으면 당선 자체가 불가능하다. 선거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대형 쇼라서 감당하지 못하는 자, 입장권조차 살 수 없다. 버락의 언론 컨설턴트가 대놓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당신의 이상주의는 감동적이에요 버락. 하지만 그걸 TV에 내보내서 사람들이 듣게 하려면 500만 달러가 필요하고, 그 돈을 모으지 못하면 기회는 없어요.’ 이렇듯 정치는 돈이면서 또한 미디어 플레이다. (돈과 이슈 선점으로) 미디어를 장악하는자가 선거를 장악한다. 버락의 대통령 선거운동 전 시기만 해도 뉴미디어(SNS)의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아니, 영향력을 중요치 않게 바라봤다. 버락이야말로 거의 최초로 뉴미디어가 가진 힘을 온전히 선거에 쏟아부은 대통령 후보이다. 점선면으로 끝없이 확장하는 뉴미디어는 저인망처럼 미국 사회 곳곳을 휘저어 버락의 호감도와 지지도를 끌어올렸고, 소액 선거자금이 폭발적으로 그의 대선캠프에 몰려오게 만들었다. 그 역시 인정한다. 뉴미디어가 가진 힘이 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흥미로운 것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다. 미디어 플레이, 그 중에서도 뉴미디어 플레이는 결코 한 집단에만 계속 사탕을 건네는 치트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되려 넉넉한 자본력에 인력 동원력을 갖춘 자들(공화당)이 이 기술을 훨씬 더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내가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은 이 뉴미디어 기술이 얼마나 융통성이 큰지, 얼마나 빨리 상업적 이익에 흡수되어 기득권층이 활용할 수 있는지, 사람들을 단합시키는 데뿐 아니라 분열시키는 데도 얼마나 쉽게 악용될 수 있는지, 나를 백악관에 데려다준 바로 이 도구들의 상당수가 어떻게 언젠가 내가 대변하는 모든 것에 맞서 쓰일 수 있는지였다.’

     

9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 마치 잘 만들어진 미국 드라마처럼 넘어간다. 그가 생각하는 인권, 교육, 전쟁, 경제,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세계, 그의 모든 가치가 주제별로 책에 빼곡이 담겨있다. 자본과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단단한 편가르기에(민주당과 공화당, 부자와 빈자, 선진국과 3세계 등) 진저리를 치지만, 선한 한걸음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라는 그의 믿음은 여전히 뿌리 깊은 나무다. 만약, 그의 두 번째 임기까지 포함햇다면 아마 2천페이지는 넘었을 것이지만(혹시 2권이 준비중인가....) 이 책 한권으로도 버락을 읽어내기에는 충분하다. 미국의 일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일이 지구의 일이 된지 오래. 미국의 정치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간접 경험해보기에 이 책만한 것이 없어 보인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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