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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물에 대하여 - 2022 우수환경도서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나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0년 12월
평점 :
현재 시점에서 미래를 점쳐보자.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마음으로는 유토피아에 한 표 던진다. 눈부신 기술 발전에 따른 과실을 인류가 넉넉히 나누며 무탈한 매일을 보내는 삶. 생각만 해도 오후 햇살 아래 드러누운 나른한 고양이가 된 기분이다. 하지만 이 점괘가, 큰 재산을 판돈으로 걸고 진행하는 도박이라면 마음이 순식간에 바뀐다. 올인해서 디스토피아에 한 표. 필요하다면 손모가지도 하나 추가.
역사에 따르면 1600년대에도 이상기후가 조선을 덮쳐 큰 기근이 들었다는 기록이 있다지만 지금은 이상기후가 일상이 된 시대다. 늘 이상하니까 이상기후라 부르기도 애매하다. 이상이 일상이 되니 이상기후가 정상기후다. 그에 발맞춰 지구환경도 성실히 파괴되고 있다. 하늘이란건 본디 이렇게 적당히 뿌연 것이고, 아무리 깨끗해보여도 냇물이나 계곡물은 마시는 것이 아니다.(이것이야말로 21세기의 상식!) 세상을 공유하던 생물들이 하나씩 소멸해도 딱히 대수롭지 않다. 반딧불이는 멸종된 공룡처럼 되어버렸고, 애국가 속 소나무는 평균기온 상승으로 꾸준히 산에서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다음은 뭘까, 그 다음은, 또 그 다음은? 오염된 지구 환경을 견디지 못하는 생명은 계속 늘어나는데 고양이나 강아지가 전멸하면 모를까, 대다수 생명의 소멸은 내가 알아채지도 못할거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이는 꽤 스산한 일이다.
《시간과 물에 대하여》는 사라진 것들과 사라질 것들에 대해, 인류의 횡포와 부채에 대해, 인류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는 환경파괴로 무너질 세상을 체제 붕괴에 빗대 설명한다. ‘체제가 무너질 때는 단단히 묶여 있던 사슬에서 언어가 풀려나온다. 현실을 담아야 할 언어들이 허공을 떠돌며 더는 아무것도 가리키지 못한다. 교과서는 하룻밤 새 구판이 되며, 정교하기 그지없던 체계가 허물어진다. 문득 올바른 문구를 떠올리기가, 현실에 부합하는 관념을 만들어내기가 힘들어진다.’ 모든 것은 과거의 유물이 되고, 새 세상을 설명할 적확한 언어와 체계는 재구성되지 않은 암울한 미래의 표현이다.
인류가 절대적 악의(惡意)를 품고 지구를 오염시킨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유해지고 싶은 욕망, 별일 있을까라는 무지, 적당한 파괴는 어쩔 수 없다는 합리화, 이런 사고가 뭉쳐져 계속 구르다보니 오늘에 이르지 않았을까? 저자는 말한다. ‘20세기의 주요 이념들은 땅과 자연을 값싸고 무한한 원자재로 간주했다. 인류는 대기가 배출가스를 끊임없이 받아들일 수 있고, 대양이 쉬지 않고 폐기물을 받아들일 수 있고, 대지가 비료만 주면 끝없이 재생할 수 있고, 인간이 점점 많은 공간을 점유하면 동물은 계속해서 딴 데로 이동할 것이라 생각했다.’ 인류는 유한한 공간에서 무한을 가정하며 살아온 것이다. 이유는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먼 미래를 그려내지 못한다. 다음주 날씨조차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는데 10년, 100년 후를 상상하는건 아득한 일이다. 단호한 주장으로도, 암울한 시뮬레이션으로도 쉬이 설득되지 않는다. 오늘 당장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면 대체로 무심할 따름이다. 저자도 비슷한 생각을 내비친다. ‘과학자들은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논쟁하고 추측하면서 미래에 대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슈퍼컴퓨터로 복잡한 모형을 돌려 2050년, 2070년, 2090년에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준다. 우리는 그런 연도에 공감하거나 반응하기가 힘들다. 우리에게 100년은 영원과 같아서 상상을 뛰어넘는다. 100년이 하도 오랜 시간으로 느껴져, 지금의 추세가 계속되면 2100년에 엄청난 재앙이 벌어질 것임을 과학자들이 입증해도 우리는 꿈쩍하지 않는다. 그날이 우리와 상관없다는 듯 어깨만 으쓱할 뿐이다.’
《시간과 물에 대하여》는 저자의 나라, 아름다운 아이슬란드를 주로 다룬다.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여전히 아름다운 나라가 꾸준히 오염되어가는 과정을 적어놓았는데, 아이슬란드에 대한 애정과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안타까움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전해진다. 저자는 변해가는 아이슬란드의 시간을 본인의 가족을 통해 투영해낸다. 어른들의 기억과 빛바랜 사진들, 자녀와의 대화로 풀어내는 아이슬란드의 변화는 증조할머니부터 부모님 세대까지가 추억하는 (깨끗했던) 아이슬란드부터 저자와 자녀가 살아가는 현재의 (환경 파괴중인) 아이슬란드까지 이어진다. 《시간과 물에 대하여》는 환경파괴와 환경보호를 말하는 책이지만 문장이 아름답고 묘사가 뛰어나 우아한 에세이처럼 읽힌다.
우리는 이어져 있다. 시계열로 이어져 있다. 과거가 현재고, 현재는 미래다. 무한의 시간 속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결국 하나의 묶음이다. 저자가 자녀가 시간에 대해 나누는 눈부신 이야기가 있다. “지금 2018년이지? 증조할머니가 1924년에 태어나셨으면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지? (딸: 아흔 넷) 그럼 넌 언제 아흔넷이 될까? (딸: 난 2008년에 태어났으니까 2102년) 어쩌면 네가 지금 여기 앉아 있는 것처럼 2102년에도 너의 열 살배기 증손녀가 찾아와 이 부엌에 함께 앉아 있을지도 몰라. 계산 한 번 더 해볼까? 네 증손녀는 언제 아흔넷이 될까? (딸: 2092년에 태어났으면 2186년!!) 그래. 상상할 수 있겠어? 2008년에 태어난 네가 2186년에도 살아 있을 아이를 알 수도 있다는 거 말이야. 마지막 문제야. 1924년에서 2186년까지 전부 몇 년일까? (딸: 262년) 상상해보렴. 262년이야. 그게 네가 연결된 시간의 길이란다. 넌 이 시간에 걸쳐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는거야. 너의 시간은 네가 알고 사랑하고 너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이야. 네가 알게 될, 네가 사랑할, 네가 빚어낼 누군가의 시간이기도 하고, 너의 맨손으로 262년을 만질 수 있어. 너는 손녀에게 가르칠거야. 2186년의 미래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이것이다. 우리는 200년이 넘는 긴 시간을, 가족으로, 친구로, 동료로 연결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것은 막연히 그려보는 미래가 아닌, 나와 직접 연결된 미래다. 그래서 우린 환경 파괴를 멈추어야 하고, 생명들이 소멸되어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저자는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흥미진진한 시대를 살아가시길”
* 직접 구매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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