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평점 :
《춥고 더운 우리 집》의 저자 공선옥 작가는 집과 주변 공간에 대해 할 이야기가 참 많다.
이 책 1부는 저자가 살며 거쳐간 집들의 변천사로 요약할 수 있겠다. (물론) 행복한 경험도 많았겠지만, 그 집들이 규정하는 본질적인 감정은 슬픔, 부끄러움, 고독, 낙담, 암담함 같은 것들이다. 저자는 다양한 형태의 집, 때로는 집이라 부를 수 없는 작디 작은 방을 옮겨가며 삶을 꾸렸다.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집은 이랬다. 사방이 까맣고, 구렁이가 달걀을 깨물어 먹던 낡은 초가집. 마루와 부엌이 없고, 스케치북만한 창 하나가 유일한 위안이던, 시멘트로 지은 부로꾸집(블록집). 싱크대는 있지만 수도는 설치되지 않고, 비만 오면 아궁이에 물이 가득 차던 또 하나의 부로꾸집. 지긋한 가족과 집을 떠나 독립을 하게 되면 뭐라도 나아지리라 생각하고 거쳐간 집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시의 하숙집, 공장 기숙사, 영구임대아파트, 그리고 원룸. 저자의 몸과 물건을 의탁한 집과 방은 하나같이 슬프거나 힘에 겨워 보였다. 하나의 온전한 주거지로서 저자를 따뜻하게, 안전하게 품어준 집은 없었다. 겨울이면 춥고, 여름이면 덥고, 벌레가 나오거나, 작은 공간에 사람이 너무 많은 식이다. 혹은 소음에 시달리거나, 늘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하거나, 자주 부끄러워해야 하거나, 하는 식이다. 집(방)의 본질적 기능과 역할이 살아가는 것들의 보호처, 안전한 물건보관소, 몸과 마음의 충전소, 그래서 인생의 베이스캠프 같은 것이라 정의해본다면 저자가 거쳐간 장소들은 집이라 부르기 애매하다. 몇 가지가 빠졌거나, 모두 빠졌거나. 해서 중년이 될 때까지 저자가 머물렀던 집과 방들은 결함과 결핍의 결정체이자 결코 아물지 않는 상처 같은 것이다.
2부에서는 인생 중반까지 집으로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부정적 체험을 다 겪은 저자가 나만의 집을 짓는 이야기를 다룬다.
나는 저자가 집에 대한 허기가 있어보였다. 제대로 된 집을 영양분 삼지 못한 채 노마드처럼 여러 곳을 옮겨가며 살아온 삶이 만들어낸 갈증과 배고픔. 운명처럼 덜컥 시골의 땅을 사고,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마음으로 집을 짓는 모습을 보며, 그간의 허기가 이것으로 달래지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내 손으로 창조하는 집이 어디 쉽게 지어지겠는가. 집 짓는 과정은 참으로 고달프다. 설계도를 제작해 시공사를 찾는 건 첫걸음일 뿐이다. 집 뼈대를 만드는 거푸집 공사부터, 철근을 엮고, 위생급수설비를 설치하고(싱크대가 있는데 수도는 없던 저자의 어린 날 집이 생각난다), 전기시설을 깔고, 내외부 인테리어까지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거대 메뚜기떼같은 회의감이 밀려온다. 이런 저런 위기가 있었으나 무사히 집을 준공했다고 저자는 이야기하지만, 책에 담지 못한 속상함과 고단함은 또 다른 책 한 권의 주제가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준공했다고 집 살이가 완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머릿속으로 그렸던 공간은 현실과 한 뼘쯤 어긋나기 때문이다. 설계에 반영 못한 오류, 시공과정의 실수,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 제대로 맞물리지 않는 공간, 온갖 자연 생명체들(Wild Life)의 공습까지, 부술수도, 없던 일로 무를수도 없어서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럴 땐 어쩔 수 없다. 쓸고 닦고 고치고 순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내가 일구는 밭에 마음을 내어주며 동화되는 수 밖에. 내가 아껴서 도저히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이 안전히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된 것을 감사하며 사는 수 밖에. 저자가 했던 그대로 말이다.
3부에서는 새집과 함께 하는 저자의 일상을 다룬다. 3부의 매 꼭지는 잘 만들어진 숏폼 콘텐츠 같다. 매회, 정해진 주인공 없이 다채롭게 바뀌는 에피소드로 풍성하다. 워낙 상황 표현이 뛰어나고 대사도 찰지게 적혀 있어 읽을때마다 그 모든 상황과 풍경이 자동으로 떠올라 자주 피식거렸다. 3부는 《춥고 더운 우리 집》에서 가장 밝고 따뜻한 장이다. 일면식도 없는 나지만 감히 얘기해보자면, 저자의 허기가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어깨 펴고 당당히 자신있게 ‘내집이야’ 말할 수 있는 곳에서, 그 주변의 마을과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상에서 그간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삶의 허기가 조금씩 채워지는 것 같아 덩달아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게임 속 캐릭터가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고 최종 레벨에 올라가듯, 저자는 집과 방들이 뿌려놓은 여러 난관을 뚫고 담양 ‘수북’의 지금의 ‘집’을 ‘쟁취’했다. 《춥고 더운 우리 집》은 집으로 대체한 저자의 인생 고난기다. 힘들었던 그 시절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살고 있던 집이 저자의 사연을 대신 전해준다. 신기하다 여겼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어디에도 ‘자포자기’나 ‘좌절’이라는 단어는 없었다는 것이다. 힘겨움은 있어도 포기는 없었다. 무너질 뻔 했어도 실제 무너지진 않았다. 이런 강인함이 있었기에 ‘수북’의 집과 그곳에서의 일상이 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내!집!’에서 오랫동안 많은 이야기 만들어가시길 바란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