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로 읽는 책들에는 사실의 세계만 나왔다. 사실의 세계는 내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게 갈렸다. 나는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읽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었다. 한동안 그런 식으로 책을 읽었더니 읽기의 교정이 필요했다. 좋아서 읽는 일을 안 한 지가 너무 오래된 것이었다. 나는 원래 좋아서 책을 읽은 사람이다. 이 좋다는 것의 의미는 참으로 오묘하다. 재미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재미가 없는데도 좋을 때가 있었다. 수학책도 즐겨 읽는데, 이건 내게 전적으로 무용한 세계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즐거움 때문에 읽는다. 이해하기도 힘들고 지루하며 재미도 없는데도 읽는 게 좋다. 세상에는 이런 종류의 좋음도 있는 것이다. 시를 읽는 즐거움 역시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다른 이유 없이 오직 그 언어만을 순수하게 소비한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훨씬 탐욕적인 독서일지도 모르겠다. 소비할 것은 언어뿐이므로 나는 게걸스럽게 시의 문장들을 받아들인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으로 할애하면 내 인생은 약간 고귀해진다. - 2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