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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평점 :
‘스파이’하면 아무래도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떠오른다. 지적이고 섹시한 매력을 갖춘 남성 요원이 세계 평화라는 거창한 명제 아래서 악당을 물리치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앞에 그려진다. 뭐, 현실에서는 결코 찾아보기 힘든 사람들이지만.
스파이 소설이나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기로 한 이유는 혼불 문학상 수상작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수상작품 중 <비밀정원> <나라 없는 나라> 등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감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작가가 <백수생활백서>로 제30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박주영 작가이기에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15년간의 기억을 잃고 깨어났을 때, 나는 스파이가 되어 있었다!
기억을 잃은 스파이라. 무언가 재미난 이야기가 숨겨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과거의 비밀스러운 사건이 이 소설의 축이 되어 기대했던 스파이 소설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런 내가 기대했던 그런 스파이 소설이 아니다.
스파이 소설이라 그런가? 주인공들이 모두 알파벳 한 글자로 표현된다. 15년간의 기억을 잃은 채 스파이가 된 X, 그에게 다가온 지인이자 연인이자 감시자인 Y, 베스트셀러 작가와는 거리가 먼 무명 소설가이면서 감시의 대상이 된 Z, X와 Y의 보스인 B,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무정부주의자인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쌍둥이 언니의 삶을 살면서 사라진 언니를 찾는 D.
각 사람들의 면면이 전형적인 스파이의 모습은 아니라 순간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감시하며 일하는 걸까? 이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우리가 예상하는 적들을 찾을 수 없다. 그저 지금의 나와 같은 평범한 이들만이 살고 있을 뿐.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알게 모르게 감시를 당하고, 누군가를 감시하며 살아가는 곳이다. 길거리마다 넘쳐나는 CCTV도 그렇고, 차량마다 달려있는 블랙박스도 그렇고.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점차 목적도 잃고 자신도 잃은 채 사라져간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 역시 지금 무언가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목적을 잃은 채 어디에도 가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크게 눈을 뜨고 살펴야겠다.